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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Feb 22. 2020

Ignorance

영화 <Birdman> 그리고 밀란쿤데라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덕분에 넷플릭스에 좋은 영화들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그 덕에 어느 날 갑자기 존재를 감추었던 <Birdman>을 또 볼 기회를 가졌는데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21그램>과 <바벨> 덕에 독특한 시각을 가진 그러나 크게 재미있지는 않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처음 <버드맨>을 볼때는 그가 감독한 영화라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보게 되었던 영화 였습니다. 



아카데미 수상작에 대한 특별한 감흥도 없는 편이라, 이 영화가 어떤 상을 탔었는지도 상관없었고, 단지 배우인 "마이클 키튼" 때문에 선택을 했었는데, 처음 대학을 가서 "영화"를 좋아한다고 차마 말하기가 두려웠던 (헐리우드 키드 스타일은 아니었던 까닭에 고등학교 시절, 영화광인 몇몇 지인들처럼 어른들의 눈을 피해가며 극장을 쏘다니던 적도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도 무대위에서 펼쳐지는 연극 또는 오페라 같은 장르를 좀더 좋아했기에) 소심한 필자에게 <비틀쥬스> <배트맨> <퍼시픽 하이츠> 로 3연타석 홈런을 쳐낸 배우가 바로 "마이클 키튼"이었습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배트맨>과 <비틀주스>의 주인공이였던 "마이클 키튼"이 그의 과거 영화들을 통해 연기해낸 캐릭터의 이미지들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복제하고 변형하고 있습니다. "배트맨"과 "브루스웨인" 이라는 두가지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 문제를 목소리의 톤을 구분해서 대사처리를 하는 방법을 통해 해결했던 마이클 키튼의 아이디어를 <버드맨>에서도 그대로 차용하여 나의 내적자아와 현실 속의 나를 구분하고 있으며,  <비틀쥬스>에서 보여주던 초현실적인 악동 이미지 역시 영화에 잘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뻔한 패러디물의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영화가 가진 무거운 주제때문에 

영화가 산으로 갈수도 있을 상황을 빠른 전개와 적절한 음악의 사용 그리고 쉬르레알리즘적인 장면처리를 통해 블랙코미디로 보여지게 만들어, 무거움과 가벼움이 상충하며 영화를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게 길 가운데쪽으로 서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영화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기 위해서는 이 영화의 제목을 한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는데,

< Birdman or 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라는 숨겨진 긴 제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드러나 있지 않은 제목을 통해 감독은 자신이 설정한 주인공 캐릭터에 대한 힌트를 던지고 있는데요


ignorance에 대한 힌트는 "말란 쿤데라"의 소설 <향수>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말로는 <향수>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소설의 원제목은 <Ignorance> 인 이 소설에서,

"밀란 쿤데라"는 "향수"와 "무지" 사이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풀어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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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로 귀환은 노스토스 nostos 이다.  그리스어로 (알고스 algos >는 괴로움을 뜻한다. 노스토스와 알고스의 합성어인 〈노스탈지〉 즉 항수란 돌아가고자 하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서 비롯된 괴로움이다.

(중략)

그러나 이들은 거대한 개념의 공간적 축소에 지나지 않는다.

(중략) 

체코어로 표현된 가장 감동적인 사랑의 문장은 〈나는 너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인데, 이는 〈나는 너의 부재로 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다〉는 뜻이다. 

(중략)

 이렇듯 어원상으로 볼 때 향수는 무지의 상태에서 비롯된 고통으로 나타난다. 너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네가 어찌 되었는가를 알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 고통

(중략)

과거나 잃어버린 유년기 또는 첫사랑에 대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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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자신이 처한 상황(자유로운 삶을 찾아 프랑스로 망명을 해야만 했던 망명객의 위치와 망명객에 관한 주변인들의 인식)에 대한 작가의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Ignorance"란 단어에 대한 밀란 쿤데라의 해석은 영화 <Birdman>에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이 보여 주고자 하는 "상실" 및 "이룰수 없는 욕망의 허상에 관한 본질"의 의미와 상당히 유사 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리건은 <버드맨>이라는 영화로 영화계의 대스타가 되었지만, 늘 그가 이루고자 했던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지 못한 부재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속 연극계의 스타 "마이크"는 "리건"이 애지중지 여기는 냅킨에 쓰여진 메모에 대해 현실적이고 시니컬한 해석을 보여주고, 이는 결국 "리건"이 스스로가 알지 못하는 즉 "무지"라는 철학적 Label에  관한 (이 영화에서 관념이나 추론에 관한 해석의 본질에 있어서 Labeling에 관한 감독의 비판적 시각이 고스란히 들어납니다) 구체적인 예로, "리건"의 막연하고 추상적인 소망 (본질에 대한 부재와 그 부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무지의 상태에 대한 고통)이 "리건"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상실감"과 이룰 수 없는 소망에 대한 "절망"등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관한 아주 뜨끔한 진실을 블랙코미디 형태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영화를 아직 안보셨다면 반드시 봐야 할 별 5개 짜리 영화로 추천해 드립니다.


이 영화는 특히 음악적 요소인 리듬과 감성을 아주 잘 이용하고 있는데, 스토리의 빠른 전개가 필요한 시점에서는 영화의 내러티브를 재즈 드럼의 리듬을 통해 진행 시키고 있고, 과거에 대한 향수에 빠지는 장면에서는

말러와 차이코프스키를 이용해 관객의 감정적 리듬을 적절하게 고조시키고 진정시키는 세련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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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리건"이 점차 자신의 망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하는 부분에서 나오는 장면 하나가 기억에 남는데요, "리건"은 연극의 중간 휴식부분에 분장실로 찾아 온 전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리건 - 내가 그때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당신과 아이와 함께 있었어야 해. 그랬다면 우리 모두가 그 순간을 함꼐 할수 있었을텐데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을 남기기 위해 사진기를 들고 출산의 순간을 찍었던 리건이 아내에게 그때의 회한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장면을 사진을 찍고 있을 떄 우리는 그 순간에 동참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될것 입니다

하지만 감독은 사진을 찍는 행위와, 사진의 대상들이 행하고 있는 행위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 시켜 주며, 이러한 인식은 "데이비드 호크니"나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사진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 사진과 현실사이의 갭 - 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중에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그만 글을 닫으시라고 권해 드리며, 영화를 보신 분들은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같이 한번 생각해 보시는건 어떨까 싶습니다.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내 안의 또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과연 "내 안의 목소리는 나의 다른 자아일까요? 아니면 끊임없이 내 주위를 맴돌며 나에게 이야기를 하는 모든 타인들의 환상의 총체일까요? 그들의 의지에 따라 우리는 수동적으로 우리의 삶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런 환영이 들린다는 주인공의 의심에 내적 자아의 목소리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것은 너의 진정한 자아가 아니야, 그 말에 따를 필요가 없어, 우리가 너의 곁에 있잖아"


영화는 무엇이 과연 진정한 본질일고 나의 진정한 모습일까를 끊임없이 물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나의 내적자아가 외치고 있는 진심에 대해서 확신 할수 있는가? 

입장을 바꿔 당신이 누군가에게 그들의 본질에 관한 말을 해주고 있을때, 당신은 얼마나 진정으로 그들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그저 뭔가 좋은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는 당신의 윤리적인 판단 역시 타인의 의지에 따라 길들여진 당신 삶의 방식에 따라, 의무적으로 매너리즘에 빠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타인들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말할 때 과연 우리는 그들의 진심을 어떻게 분리 구분할 수 있을까?


영화 <버드맨>은 타성에 젖어 있던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고, 내 삶의 본질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던지게 하고 있는 영화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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