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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Mar 17. 2020

영화 <조조래빗>

10살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수상한" 어른들의 세상


영화가 시작하면 보이스카웃스러운 제복의 일부가 화면을 가득 메우기 시작합니다.

나치 독일의 청소년 단체의 복장입니다.

뭔가  그럴싸하게 버클을 딱 하고 채운 후, 옷깃을 여미고  신발을 신고 양말을 끌어올린 후

영화의 주인공 귀염둥이 10살 조조가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Today, You become a man!"


음, 과연 "Man"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리고 왜 "You"일까요?


그리고 등장하는 조조의 상상 속 친구인 아돌프 ( 감독은 <독재자>에서 채플린이

이발사 이미지에서 끌어낸 히틀러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하네요)


이 둘은 오늘 남자가 되어야 하는 조조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큰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뱀 같은 마음, 늑대 같은 육체, 팬더 같은 용기"

그리고  A German Soul"


그런데, 씩씩하게 외치고 있던 귀여운 10살 조조의 표정은

점점 불안해져 갑니다. 그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Adolf, I don't think I can do this"




갑자기 나이키의 슬로건이었던   "Just do it" 이 떠오릅니다.

멋진 스포츠 스타들이 나이키를 신고 연출하던 극적인 장면과 계단만 한층 걸어 올라가도 헉헉 거리는

제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말이죠.


그런 스타들의 영웅적인 모습을 보며, 나도 나이키를 신으면 저들처럼 될 것이라고 생각하던

그 당시 나의 모습에서, 소년의 머릿속 상상의 히틀러가 말하는 

"You can do it"과 나이키의 "Just do it"이 주는 느낌이 묘하게 교차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Man"이 되어야 했고, 아돌프는 왜 "Jojo, Just do it"이라고 밀어붙이고 있는 것일까요?


이 영화에서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인 것 같습니다.


흔히 40대는 불혹의 나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불혹은 "40이 넘으면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중심이 생기는 나이"라는 의미로 공자께서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과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했을 때 자신 있게 나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40대가 얼마나 될까요?


감독은, 한 사회의 근간이 돼야 하는 어른들, 그러니까 Become a man이 된 세대들이

나치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현대를 사는 지금의 성인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를 

 10살 아이의 불안한 눈빛을 통해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Adolf, I don't think I can do this"라고 조조가 거울을 보며 이야기하는 순간

조조 머릿속의 아돌프 히틀러는 어린 조조의 머릿속으로 들어와 그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영화의 지향점인 블랙코미디 스타일입니다.

"무슨 소리? 넌 할 수 있어. 비록 인기도 없고, 비쩍 마르고 10살인데 아직 신발끈도 못 묶지만"


그리고는 "Heil Hitler"를 외치라며, 조조를 흥분시키고 있습니다.


드디어 서서히 달아오르던 조조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잊어버리고,

순진한 10살 남자아이답게 집을 나서며 신이 나서 흥겨운 노래에 맞춰 또래들이 기다리고 있을 유스캠프를 향해 춤을 추며 뛰어가고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감독은 경쾌한 리듬의 "Komm Gib Mir Deine Hand" (비틀스가 독일어로 개작해 부르고 있는 "I want to hold you hand")를 선택하고 있는데, 60년대 '비틀스'가 출연했던

영화 <Hard day's night>의 도입부 느낌을 패러디하고 있습니다.



바로, 60년대 비틀스가 선봉에 서서 만들어낸 British Invasion이란 문화 현상이 순식간에 전 세계를 강타한 모습을 차용해서, 히틀러의 영향력이 얼마나 맹목적으로 독일 내에서 호응을 얻으며 퍼져나갔는지를 풍자하고 있는 것이죠. ( "Komm Gib Mir Deine Hand"는 Come, Give me your hand 

즉, 너의 손을 나에게 내밀어 달라는 의미이니, 나치가 heil Hitler를 손을 뻗치며 외치는 모습까지 

연상되게 하려는 의도였을까요?)


이렇듯 영화는  Absurdity와 surrealism적인 요소를 초반부와 중간부로 넘어가는 지점까지

지속적으로 사용해 가며, 블랙코미디적인 느낌을 주도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토끼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려놓고 차마 하지 못하는 순진한 조조를 겁쟁이 래빗이라고 부르는 

장면에 등장한 '아돌프'덕(?)에 흥분한 조조가 훈련 캠프에서 교관이 들고 있던 수류탄을 낚아채서 앞으로 던지다가 나무에 부딪혀 되돌아온 수류탄이 터지는 장면은 황당한 만화영화 장면을 연상케 하죠.


이런 모습은 조조가 자신의 집 벽 속에 숨어 있던 유태인 소녀 '엘사'를 만나는 순간까지 이어집니다.

갑자기 벽의 틈을 발견하고 숨겨진 공간을 찾아낸 조조, 하지만 난데없이 나타난 소녀에게 겁을 먹고 도망치다가 잡히고 마는데요, "누구세요?"라고 물어보는 조조에게 엘사는 유태인 "A Jew"라고 대답하며,

이에 깜짝 놀란 조조가 "Gesundheit"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립니다.


Gesundheit는 독일어로 '건강'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영어를 사용하는 영어권 사회에서

재채기를 하는 사람에게 "God bless you"라고 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용되는 외래어가 되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 유태인이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 조조는 그 단어들이 마치 자신에게 

감기를 옮게 하는 바이러스라도 되는 것처럼 반응하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아돌프와 조조가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로 끌고 가던 영화에서 

조조 엄마(스칼렛 요한슨 분)와 엘사의 등장을 기점으로 전체 서사 구조가 묘하게 틀어집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보여주던 감동적인 드라마 요소가 끼어들기 시작하죠.





그러면서 영화는 조금씩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흔들림 탓에 영화는 중반부 이후 엘사와 조조 사이의 관계 형성과 그들에게 찾아오는 

위기감을 자연스럽게 끌어내지 못하며, 초반에 재치 있게 보여주던 풍자도 조금씩 무뎌져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춤이라는 독특한 재료를 통해, 영화의 내러티브가 두 갈래로 나눠지는 문제점을 

적절하게 봉합해 내며, 재미있는 영화로 끝을 내고 있습니다.




시작 부분에 등장하는 신나는 리듬의 "Komm Gib Mir Deine Hand" (비틀스가 독일어로 개작해 부르고 있는 "I want to hold you hand")를 통해 우리의 감정을 조조의 리드믹컬 한 막춤 동작과 함께 한껏 

흥분으로 끌어올렸다가, 중간부에 등장하는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엄마와 아들 사이의 춤을 통해 

"뭘까?" 하는 궁금함을 유발시키고, 마지막 엔딩에서 조조와 엘사의 차분하지만 

조금씩 자신들의 상황과 감정에 대한 깨달음을 느끼게 해주는 춤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이렇듯 영화 만들기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전체적으로 조조를 비롯한 출연진의 뛰어난 연기와 일단 드라마로 방향을 틀어버린 후에

훈훈한 감동을 만들어 나가는 감독의 감각 덕분에 충분히 볼 만한 가치를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엔딩을 춤으로 끝내는 것은 유태인 출신인 감독이 만들어 낸 좋은 타협점인 것 같습니다.

사실 영화의 바탕이 되고 있는 원작 소설 <Caging Skies>의 정확히 중간 부분에서 영화가 끝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렇다 보니, 영화의 결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영화의 서사를 이어가는 도구가 블랙코미디와 드라마로 나눠지는 

바람에 영화의 스탠스가 약간 어정쩡한 상태여서, 블랙코미디 스타일로 Anti-hate라는 감독이 의도한

풍자극으로 결말을 내야 할지, 또는 중반부 이후 등장하기 시작하는 훈훈한 감동 드라마 모드를 지속해서

눈물 나는 감동 스토리로 닫힌 결말을 내야 할지가 애매모호한데

(더군다나 눈물 나는 감동적 결말은 이미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사용된 방법이기도 해서) 

감독은 대사 없이 보이는 엔딩 장면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춤을 통해,

관객들에게 자신들이 느끼는(또는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의 결론을 맺게 하는 자유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관객의 감정선을 영화의 중간부 이후와 이어지게 해서,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유도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이 춤 장면은 여러 가지 의미들로 읽혀질 수 있는데,


첫째로 유태인들에게 춤이 상징하는 의미입니다.

유태인들은 역사적으로 자유와 화합의 순간에 춤을 춰 왔다고 하네요.

도시에 총성이 멈추고 이제 그들을 괴롭히던 나치가 사라진 그 순간

독일인인 조조와 유태인인 엘자 사이에는 그들 사이를 방해하던 체제의 억압이 사라지고 

'자유'라는 새로운 출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순진한 (사실 무지했던) 세상의 무지를 이용해 세상을 지배하려던 독재의

위협을 , 10살 소년의 무지함이 점차 엘사와의 대화를 통해, 맹목과 오류에서

벗어나며, 진정한 Man으로서 참된 지성을 갖춤으로써 벗어나게 된다는 유태인 감독의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영화 서사 구조의 논리를 빼버리고 감정에 호소해서 뭔가 희망적인 

느낌으로  영화를 마무리할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방법은 유명한 코디미 그룹 "몬티 파이톤"의 <라이프 오프 브라이언>에서 이미 사용되었던 

방법인데, 메시아와 한날한시에 같은 동네에서 태어난 주인공 '브라이언'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메시아'로 오인을 받으며 힘든 삶을 살다가 결국은 예수처럼 십자형을 받게 됩니다.



십자가에 매달려서 본인은 아무 죄가 없다며 소리치는 주인공, 과연 영화는 어떻게 끝을 내야 할까요.

영화 전체에 걸쳐 철학적 주제를 던지며, 많은 것을 풍자하고 뒤틀었던 이 재기 발랄한 코미디 그룹이

선택한 방법은 휘파람을 불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


https://www.youtube.com/watch?v=WoaktW-Lu38


아주 단순한 멜로디와 선한 인간의 감정에 호소하는 가사를 통해 관객들은

영화 전체에 깔려있는 뒤틀린 코미디를 파악하기 위해 바짝 긴장하고 있던

그들의 날카로워진 신경을 이 휘파람에 실어 멀리 보내버리며,

모두들 훈훈하게 극장 문을 나서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감독은 자신의 영화 속에, 다양한 패러디와 풍자 그리고 드라마를 집어넣으려고 시도했고

절반은 성공을 절반은 실패를 거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 비평가들의 낮은 점수처럼 볼만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있으며 (주인공 조조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조조의 상대역을 맡은 토마신 맥킨지, 엄마로 나온 스칼렛 요한슨 그리고 독일 나치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던, 샘 록웰과 레벨 윌슨까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춤을 통해 영화의 시작과 전개 그리고 마무리를 해내고 있는 감독의 재치도 엿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극장을 찾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후라도 기회가 생긴다면, 

기회가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조조라는 이름의 비밀을 하나 알려 드리면,

Masculine과 Feminine 적인 느낌을 다 담고 있는 이름이어서,  미국에서는 여아의 이름으로 인식되는 반면, 다른 영어권 국가에서는 남아 여아에게 다 붙이는 이름이라고 하네요.


Joseph을 종종 Jojo라고 줄여서 쓰기도 한다고 하며, 2008년 Behindname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Jojo란 이름은 modern,   youthful,  informal,  strange 그리고  comedic  이란 느낌을 

연상시킨다고 합니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주인공 Johannes를 줄여서 조조라고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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