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훈수의 왕 Mar 10. 2020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넷플릭스에 지브리 스튜디오의 여러 작품들이 올라왔습니다.

요즘 상황 때문에 넷플릭스에서 영화 찾아보는 것이 가장 큰 낙이 되고 있는데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주말 순위 4위에 오르는 덕에 리스트의 맨 앞을 차지하며 눈을 잡아끌었습니다.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밝힌 적이 있습니다.

감독의 친한 친구가 스튜디오를 놀러 오면서 종종 그의 10살짜리 딸을 데리고 왔다는데,

10살 여자아이들에게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잘 없다는 사실에 

10살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주인공 '센'이 벌이는 모든 모험은 감독의 생각으로는 10살 여자아이가 충분히 감당할 만한 

난이도를 가진 것으로만 구성했다고 하네요.




영화는 사실 분명하게 10살 어린이를 목표로 만들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가장 큰 증거로는 영화의 윤리적인 밸런스가 선과 악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영화에서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위기 상황들이 닥쳐올 때

그것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는 모습(최선을 다해 열심히 - 물론 상당히 과거적인 아이디어이지만

현대적 기준으로 보아도 가장 공평하다고 생각되는 방법임에는 틀림없는)을 통해

어린 소녀가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해 나가는 훈훈함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른의 입장에서는 왜 아이들이 우리가 불러도 대답도 잘 안 할까 하며 

답답해 하지만 ( 차를 타고 이사를 가는 첫 장면에서 부모의 부름에 치히로는 2번 만에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고 있죠)


사실 아이들이 우리를 부르고 있을 때, 우리 역시 그들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 아무도 없는 상점에서 쌓여있는 음식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엄마 아빠에게 치히로는 안된다고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이 늘 그렇듯이 아이의 말은 무시되고, 스스로의 탐욕에 사로잡혀서 

엄마 아빠는 돼지로 변하게 되죠)


이런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간 대화 단절의 원인이 무엇인지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이후 치히로는 유바마라는 마녀를 만나 오기노 치히로(荻野千尋)란 4글자로 이루어진 한자 이름에서 3글자를 제외하고 센(千)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게 되고, 그녀를 기다리는 새로운 모험을 향해 나아갑니다.




감독은 이전의 많은 소설 등에서 사용된 그래서 이제는 어느 정도 상용화된 구조를 통해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토끼굴을 통해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게 되고

<나니아 연대기>에서는 옷장을 통해 나니아로 들어가게 되는 것처럼

<센과 치히로>에서는 바람이 안으로 불고 있는 터널을 지나면서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게 되죠.


새로운 세계를 홀로 맞서게 되는 센은 하나하나 삶의 지혜를 배워 나갑니다.


이 세계에 살아 남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며, 그 생존을 위한 첫발을

딛게 되는 곳이 건물 외벽의 낡은 계단입니다.

겁에 질려 한 발씩 내리며 지하실까지 어떻게 내려가나 하던 걱정스러운

얼굴의 10대 소녀는 발이 미끄러지며 본의 아니게 계단을 쏜살같이 뛰어내려

가게 되는데요, 일단 발을 디딘 이상 센은 겁내지 않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계단을 끝까지 무사히 내려갑니다.


그녀 앞에 닥친 일에 겁먹지 않고 용기를 갖고 당당히 대면해서 하나하나 삶의 지혜를 

배우는 만큼 성숙해져 가는 주인공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하실에 내려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가 검댕이들이 나르고 있던 석탄을 대신 들고 가마에 넣어 주고 있는데

숯댕이 할아버지가 한마디 건넵니다.



--------------------------------------------

숯댕이 할아버지: 이 꼬맹이들아 다시 먼지 덩어리로 돌아가고 싶어?

너도 괜히 도와줘서 말이야. 다른 사람의 일을 뺏으면 안 되지.

-----------------------------------------------


그리고 유바바를 만나러 가기 위해 숯가마를 떠나는 순간에도

--------------------------------------------

린: .... 너. 네라든가 신세 졌습니다 같은 말 못 해?


린: 너 할아버지한테 감사인사했어? 신세 졌잖아.

--------------------------------------------



우연곡절 끝에 유바바의 방문 앞에 서 있습니다.

--------------------------------------------

유바바: 노크도 할 줄 모르니?

 


예전에 이런 제목이 책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습니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내 것이 아니면 가져가지 말라""공정하게 행동하라"와 같은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익히 알아온

사람이 사는 기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센과 치히로>에서도 감독은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배워야 할, 그러니까 한 명의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알아야 할 중요한 것들은 대단한 책에 나오는 지식이 아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몫을 다하고, 내가 속한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을 존중하고, 다양한 관계를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예의범절들을 익히는 것이라는 아주 단순하지만 핵심적인

포인트를 집어 주고 있는 것이죠.



어른이 된 우리들은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어른이 가르쳐서 아이들이 배운다고 생각했겠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 속에서, 서로 부딪히며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고,

그런 경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질서와 규율 등을 통해 자신이 속한 사회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

무엇이 최선인가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습니다.


센은 이런 과정 속에서 한 명 한 명의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이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통해 '강의 신'(오물의 신으로 모두들 오해하고 있던)으로 부터 중요한 선물도 받게 되고, 

자신을 도와준 유카에게 느낀 우정(사랑?)을 위해 유카의 잘못을 대신 사과하기 위한

또 다른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가 성장하는 순간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요,

예전에는 아이가 혼자서 할아버지 할머니 댁을 찾아가기 시작하면 많은 어른들이

"그 녀석 다 컸구나"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도 이런 정서를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바로 이렇게 센이 자신만의 새로운 여행을 감수하겠다는 모습에서 그는 철부지 10대 소녀가

완전한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을 완성했다고 그려내고 있으니까요.


여행을 떠나겠다는 결정을 한 이후 센은 훨씬 더 자신감 있고 책임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런 증거로 센은 여러 친구들을 그녀의 여행에 동행시키고 있습니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노스탤지어"란 단어를 써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모두들 잃어버린 경험이 있기에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존재하며,

이런 경험은 연령과 상관없이 있기 때문에 어린 소녀도 나이 든 성인도 

노스탤지어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결국은 이 노스탤지어를 느낀다는 것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감독이 이야기하고 있는 포인트는

"잃어버린 것에 원망과 되찾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다면 아직 철이 덜 든 것일 테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그것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장을 나타내는 징표가 될 것이다"라는 것일 것 같습니다.


 마녀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 마녀의 대사 또한 성장의 증거에 대한 암시를 하고 있습니다

"널 도와주고 싶지만 나에게는 어떻게 해줄 수 있는 힘이 없어. 이 세계의 규칙이지.

부모님의 일도. 남자 친구 용의 일도. 네가 하는 수밖에 없어"


영화 속에서는 상상의 세계에 통하는 법칙 인량 나오지만, 사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입니다.


10대 소녀를 위해 만들었다고 하지만, 나이만 먹은 철부지 어른의

방황하고 외로운 영혼에 큰 위안이 되는 "치킨 수프"같은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혹시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영화의 결론은 그냥 남겨 두도록 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스티브 맥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