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이자 터너상 수상 예술가의 Tate 프로젝트
어느덧 또 1년이 흘러 며칠 후면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열립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아주 기다려지는 순간이죠.
지금부터 6년 전 제86회 아카데미 작품상은 <노예 12년>이라는 영화에게 돌아갔습니다.
매년 그렇지만 이 86회 작품상 후보들은 그야말로 쟁쟁한 영화들이었습니다.
아메리칸 허슬 - 데이빗 O. 러셀
네브래스카 - 알렉산더 페인
캡틴 필립스 - 폴 그린그래스
필로미나의 기적 - 스티븐 프리어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 장 마크 발레
그래비티 - 알폰소 쿠아론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 마틴 스코세이지
허 - 스파이크 존즈
네브래스카와 캡틴 필립스는 아쉽게도 아직까지 못 보고 있지만 나머지 영화들은 다 개인적으로도 꽤 만족스럽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작품상을 탄 <노예 12년>은 <shame>의"Steve Mcqueen"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입니다.
자유인으로 태어난 아프리칸-아메리칸 (흑인) 주인공이 사기꾼에게 당해서 풀려날 때까지 12년간을 노예로 살게 되는 내용입니다.
영국 출신인 스티브 맥퀸 감독은 영화감독이기 이전에 미술을 전공한 작가로 영국의 최고 미술가에게 주어지는 Turner상을 수상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디테일이 상당히 정확하고 사진을 전공한 덕분에 장면들의 구성이나 색감 그리고 주인공들의 표정 포착 등이 상당히 뛰어납니다.
사실 이러한 재능은 전작인 <Shame>에서 훨씬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파스밴더와 캐리 멀리건이 연인은 아니고 남매입니다. 도시가 만들어 내는 소외와 상실감 등이 정제된 화면으로 잘 표현된 수작입니다.
다시 <노예 12년>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근거로 한 <회고록> 형식의 문학작품에 바탕을 둔 영화이지만 단순히 미국의 흑인 역사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보편적인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 및 역사적 문제에 대한 사고방식과 인식을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에 관해서 사실 상당히 흥미로운 이슈가 있습니다. 계급과 인종을 둘러싼 차별에 관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배급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차별이 발생합니다.
이태리에서 제작된 영화 포스터입니다.
오리지널 포스터와 한번 비교해 볼까요?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치웨텔 에지오포가 숨 가쁜 표정으로 정신없이 뛰어가고 있습니다.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모습입니다.
사진작가인 감독의 감각이 아주 돋보이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흑인 주인공의 모습이 위에서 보신 이태리 포스터에서는 아래에 깔리고 유명한 백인 배우가 주역인 것처럼 포스터에 등장합니다. 파스밴더는 그래도 영화의 주요 조연인데, 브래드 피트는 정말 심했습니다.
많은 논란 끝에 이태리 배급사 측의 마케팅 담당이 공식 석상에서 사과를 합니다.
한국 포스터입니다.
포스터만 보면 두 명의 백인과 한 명의 흑인이 이끌어 나가는 영화처럼 보입니다. 원 포스터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얼굴에서는 12년이라는 시간의 의미가 앞을 보고 달려가는 초조한 표정을 통해 읽혔지만 한국 포스터에서는 그저 암담해하는 불쌍한 느낌이 강조된 (측은지심을 유발하는 것이 마케팅에 도움이 되겠지요) 주인공의 얼굴이 아래에 깔리고 그 위로 2명의 유명 백인 배우가 마치 주연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우리도 흑인만큼이나 차별을 받고 있는 아시아 국가이다 보니 우리나라 포스터는 세계의 이목을 끌지는 않았지만, 네이버나 다음의 영화평에 차별과 노예제도 등에 대한 강한 비판이 상당히 주류를 이뤘던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 스스로가 이 포스터에 대해서는 아무 문제의식을 못 느꼈다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외치고 있는 평등과 정의 역시 이런 모습은 아닐까 씁쓸해집니다.
69년생으로 봉준호 감독과 동감이네요.
본인 스스로가 영국에서 흑인으로 태어나 많은 차별 속에서 자라 난 탓인지, 인간성에 관한 본질에 관심이 많고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노력을 단순히 눈에 보이는 프로파갠다가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평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 재능 있는 미술가이자 감독이 이번에는 영화가 아닌 참여미술을 통해 다시 한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Tate와 공동기획 작업인 Year 3 프로젝트입니다.
런던의 Year 3 (7~8세) 학생들을 학교별로 찾아가서 Tate의 사진작가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이 모든 사진을 Tate에 모아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런던 전역의 지하철역이나 길가의 빌보드에도 찍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학생 전원이 휠체어에 앉은 채 사진을 찍은 장애우 학교, 종교가 확실히 드러나는 교복을 입고 아시아계 학생들, 아주 고급스러운 사립학교 교복의 학생들과 그 반대의 모습으로 찍힌 학생들까지, 계급과 계층 그리고 인종과 관계없이 런던의 모든 (물론 참여 의사를 밝힌) Year 3를 찍은 이 전시는 현재 런던 Tate에서 진행 중입니다.
스티브 맥퀸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우리의 미래에 대해 보다 확실한 이미지를 가질 필요가 있고, 무엇이 진정 우리의 미래인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미래는 현재에서 출발하며, 이 어린이들의 현재는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 될 것이라 믿고 있는 그리고 그 신념에 동의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우리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