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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Apr 14. 2020

<이웃집에 신이 산다>




영화는 이 세상을 창조한 신에게 딸이 있다면 (아들의 존재는 특정 종교하에서는 확실하니까) 이라는 하나의 재미있는 상상과 그리고 그 신이 자신의 딸과 아내와 함께 현대의 브뤼셀에 산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또 다른 상상을 가지고 만들어 낸 재미있는 수작입니다.


개봉 당시에도 아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는데, 넷플릭스에 신규 등록된 것을 보고 서둘러 다시 본 영화입니다. 


어떻게 보면, 신격을 파괴하려는 무신론적인 음모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비록 무신론자라고 밝히고는 있지만 감독이 비판하려고 하는 것은, 몬티 파이톤의 재치 넘치는 영화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 이래 늘 그래 왔듯이, 신이라는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는 종교 내부의 사람들과 그 이야기를 믿고 따르고 있는 척하고 있는 세상의 오만과 편견에 관한 것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신은 엉망진창이긴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사실 이번 영화에서 이런 종교적인 문제는 훨씬 부차적입니다. 

오히려 영화는 절대권력, 권위, 불평등, 그리고 소외받는 자 이런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기 위해서 종교와 성서라는 도구를 사용하고 있는 듯합니다. 


종교 역시 가톨릭(또는 기독교)이 선택된 이유는 감독이 유럽 사람이라 어려서부터 가톨릭 문화에 접해있었다는 역사적 이유 때문에 종교의 구조적인 부분을 가톨릭에서 따올 뿐이지, 그 이외에는 크게 특정 종교에 대한 관계가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신은 권위를 내세우는 과거의 가부장적인 아버지입니다. 세상을 만들긴 했지만 모형 기차를 만들어서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정도의 목적 이상은 없어 보입니다. 자신이 만든 세상 속 사람들을 골탕 먹이는 게 유일한 취미인 듯 보이죠. 


이런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기로 작정한 신의 딸인 '에아'는 엄마 아빠 몰래, 집 나간 오빠 (예수)에게 의논을 하고, 세상으로 내려가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대형사고를 치고 떠나는데, 바로 아빠가 창조하고 관리해온 인간들의 예정된 수명을 해킹해서 휴대폰 문자로 보내버립니다.


나에게 남은 날을 알게 된 우리들은 과연 어떤 남은 여생을 위해 어떤 삶을 선택하게 될까요?

여러분은 죽기 전에 무슨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이 질문이 바로 이 영화가 던지고 있는 중요한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영화는 정해진 결론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권위와 불평등 그리고 소외에 반대편에 서있는 다양한 인간상을 6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우화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요,


이 6명을 에아의 사도라고 지칭하고, 에아와 그녀의 사도들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태도를 '새로운 성서'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렇다면 신의 딸은 아들과 달리 어떤 기적을 행할 수 있을까요? 또는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세상에 내려왔을까요?




감독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분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화를 들어주는 능력"


이런 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에아만이 들을 수 있는 음악에 있습니다. 이 어린 소녀는 모든 사람의 내부에 담겨 있다는 마음이 들려주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입으로 하는 말뿐 아니라, 마음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까지 전부 들을 수 있는, 아니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녀(또는 그)가 바로 우리에게 진정한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다시 말해서, 신의 아들이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세상에 내려왔었다면 (좋게 말하면 능동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자기 중심적인) 영화 속에 존재하는 신의 딸은 우리 인간들의 마음 속 소리를 들어주기 위해 즉 우리를 이해해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내려온 것이죠. (그렇습니다. 누가 우리를 사랑해달라고 했나요? 우리 모두는 그저 서로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떼쓰고 있을 뿐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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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사도들은, 헨델, 라모, 퍼셀과 같은 바로크의 거장에서부터 (독일, 프랑스, 영국 이렇게 사이좋게 한 명씩 고르고 있습니다) 슈베르트, 서커스 음악 그리고 샤를 트레네의 <바다>까지 다양한 음악을 가슴속에 품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외모에도 항상 슬픔이 담겨있는 오렐리가 담고 있는 헨델의 <울게 하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lpno5nqMc-Y


모험을 꿈꿨지만 의미 없는 일에 시간만을 낭비하며 살아왔던 장 끌로드에게 들리는 라모의 <새들이 부르는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7LC0pTOQA4I


9살 소년은 바닷가 캠핑장에서 보게 된 소녀에게 사랑이 빠지지만 그것이 성적인 것이라는 오해를 하며 평생을 포르노에 중독되었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마크의 마음속 장벽을 보여주는 퍼셀의 <오 고독>

https://www.youtube.com/watch?v=7CWPpf1xDFA


어떤 애정도 느끼지 못하는 그래서 총을 사서 누군가를 쏘고 싶은 프랑소아가 느끼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현악 4중주 2악장

https://www.youtube.com/watch?v=7daW-UBBdKs


남편에게 못 받은 사랑을 고릴라에게서 찾은 마틴의 서커스 음악과 

바다를 꿈꾸는 소년 윌리를 위한 샤를 트레네의 <바다>까지

https://www.youtube.com/watch?v=PXQh9jTwwoA


영화의 서사 전개에 맞춰진 음악들은 아주 직설적으로 의미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람들은 자신만의 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좋은 향이든, 나쁜 향이든


남녀노소 그리고 빈부와 직업 등에 상관없이 인간은 다 각자 스스로만의 모습을 담고 있는 고유한 존재이다 라는 어떻게 보면 구태의연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음악과 향기를 이용해 직접적으로(소리와 향이라는 기호를 이용하지만 돌려서 암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음과 후각을 자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거슬리거나 유치하지 않게 느껴지는 점이 이 영화가 가진 가장 뛰어난 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에게는 무척 유쾌하고 기분이 전환되는 영화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불편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영화일 텐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바로 에아의 아빠와 같은 권위적이며 전지전능함의 자기기만에 빠져있는 부류일 것입니다.


영화는 주인공들 사이에 엮이는 관계들을 하나하나 풀어 나가며, 마지막으로 시한부 삶을 바다가에서 마감하고 싶어 하는 윌리를 위해 모두가 바닷가에 모이는 장면을 만들어 내는데요, 과연 에아가 만들어낸 모든 문제의 시작은 어떻게 해결될까요?


블랙 코미디로 시작해서 꽃으로 수놓아진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내용을 다 알게 된 후에 다시 보아도 여전히 웃음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즐거운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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