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와 어울리는 와인들을 살펴보고 나니, 햄버거에는 어떤 와인들이 잘 어울릴지 궁금해지는데요
햄버거와 와인은 영화 <SIdeways>에서 아주 난처한 모습으로 등장한 적이 있었죠.
영화의 주인공 Miles가 자신이 애지중지 아껴왔던 Chateau Cheval Blanc 1961 을 로컬 햄버거 레스토랑에서 스티로폼 잔에 따라 마시며 울고 있는 장면입니다.
인생에 좋은 순간이 오면 축하를 하겠노라고 아껴왔던 'Cheval Blanc'을 결국 자신이 사랑하던,
아니 자신이 사랑받고 싶어 했던 모든 대상들이 자신으로부터 등을 돌린다고 생각된 그 순간
아주 처량한 모습으로 홀로 와인을 마시며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영화의 아이러니는, 캘리포니아 와이너리들을 여행하는 내내 Merlot에 대한 저주를 퍼붓고 있는
주인공 Miles가 가장 애지중지 여겼던 와인이 바로 Merlot와 Cabernet Franc이 블렌딩 된
Saint-Emilion 와인이라는 점입니다.
영화에서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와인을 좋아하는 애호가들 대부분도 평생 냄새도 맡아보기 힘든 엄청난 와인을 패스트푸드점의 스티로폼 음료 잔에 따라고 있지만, 그렇다고 햄버거의 맛이 더 좋아지진 않겠죠?
그럼 이제부터 현실적으로 즐길 수 있는 와인 중에 햄버거와 어울릴 만한 와인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Decanter지의 와인 전문가들이 추천한 와인 중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태리 와인입니다.
Barbera d'asti
Asti는 바롤로로 유명한 피에몬테 지방의 와인 산지입니다. 뭔가 발음이 익숙하게 들리지 않으세요?
한국민이 사랑하는 화이트 와인의 산지이죠. Moscato라는 청포도로 만들어지는 Moscato D'asti가 바로 이 지역의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입니다.
이 다스티에서 Barbera라는 적포도 품종으로 만드는 와인이 바로 Barbera D'asti입니다.
영국 현지에서 추천하는 와인은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 같고, 예전 홈플러스에서 영국 Tesco의 PB 와인들을 수입했을 때, Finest 시리즈로 들여온 녀석이 구하기도 쉽고 마시기도 쉬웠는데, 최근에도 판매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바르베라 다스티 와인들은 평균적으로 베리의 느낌이 강하고 바닐라 같은 부드럽고 스위트한 향이 유명하기 때문에 소스가 강한 편인 불고기버거나 새우버거 같은 종류를 제외한다면 버섯이나 치즈가 추가된 햄버거들 하고도 잘 어울릴 듯합니다.
잡지에서 추천하는 주요 팁이 있는데, 오크통 숙성은 피하라고 하네요. 사실 개인적으로 아주 고급 와인이 아닌 경우 오크통 숙성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오크향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바람에 개성이 강하지 않는 포도 품종의 경우 와인 자체가 가져야 하는 풍미가 사라지기 일쑤입니다.
바르베라 다스티가 햄버거와 잘 어울린다면 다음 와인도 햄버거와 잘 어울릴 확률이 높습니다.
Jorio by Umani Ronchi
이 요리오 역시 한국에서 인기가 유독 높았습니다. 바로 <신의 물방울> 덕택이었는데요,
Montepulciano라는 적포도를 이용해 만들어진 와인으로, 이태리 동부 Abruzzo 지역이 산지입니다.
꼭 요리오가 아니더라도 2~3만 원 근처에 구할 수 있는 Montepulciano d'Abruzzo들은 대부분 풍부한 베리향과 적당히 균형 잡힌 산도 등으로 음식과 곁들이기 적합한 하고 그냥 마시기에도 편안합니다.
햄버거뿐 아니라 피자와도 좋고, 물기가 있는 불고기와도 문제가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태리 외에 칠레 와인들 중에서 위의 와인들과 비슷한 성격 (마시기 편하고, 과일향이 주를 이루는)이면서 햄버거와 쉽게 어울릴 만한 와인으로 떠오르는 것들로는
1. Emiliana Coyam
친환경 방식으로 만들어진 에밀리아나의 꼬얌은 일반적인 칠레 와인처럼 단일 품종을 가지고 만든 와인이 아니라, 보르도 방식처럼 여러 가지 품종이 블렌딩 된 와인입니다.
기본적으로는 베리향 위주의 과일향이 강하지만, 미묘한 허브향과 꽃향기들이 섞여서 올라오는 고급스러움이 있습니다. 적절한 산도가 만들어내는 피니쉬 등도 훌륭합니다.
가격대가 있는 만큼 고급스러움이 뿜어져 나오는 와인으로, 고급 수제 버거와 잘 어울리며, 버섯이 들어간 스테이크 등과도 잘 어울리는 와인입니다.
수입 초기에는 칠레 인기 와인인 산페드로의 1865 등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어서 득템 하는 와인이었는데, 가격이 점점 제 자리를 찾아가며, 요즘은 쉽게 마시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2. 디아블로 카베르네 쇼비뇽
많이들 아시는 일종의 칠레산 국민 와인이죠. 백화점 와인코너에 친한 직원이 생기면 원래도 착한 가격의 와인이지만 깜짝 놀랄 가격에 구입도 가능합니다. 저는 와인은 마트보다는 백화점에서 구입하라고 권하는 편인데,
친한 담당 직원이 생기면, 구하기 어려운 와인도 구해주고 또 가격도 마트보다 저렴해지기도 합니다.
이 디아블로는 단일품종으로 만들어져서 편하게 카쇼냐, 메를로냐, 피노누아냐 이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데,
카베르네 쇼비뇽과 샤도네이가 가장 무난한 것 같습니다. 피노누아를 원하시면 좀 더 예산을 높여서 뉴질랜드산으로 가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다양한 버거와 잘 어울리고, 스테이크와도 어울립니다.
레드와인 쪽을 살펴봤는데, 국내에는 영국에는 잘 없는 햄버거들이 많습니다.
불고기버거나 새우버거 같은 종류는 레드보다는 화이트가 좀 더 잘 어울리는데요,
불고기버거는 간장이 베이스가 되는 소스이다 보니, 산도가 높은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이 어울립니다.
Cono sur 20 barrels Sauvignon Blanc
코노 소르의 와인들은 대부분 선택했을 때 후회가 없습니다. 특히 20 barrel 시리즈는 평균 이상의 품질을 보장해 주는데, 한 가지 아쉬움은 국내에서는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유통이 되는 편입니다.
물론 마트에서 가끔 많은 할인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국내 가정의 일반적인 상황을 고려해보면 데일리 와인을 할인을 해준다고 다량으로 구입해서 보관하기 쉽지는 않죠. 화이트 와인임에도 상당히 다양하고 개성 강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쇼비뇽 블랑 특유의 드라이함과 칠레 쇼비뇽 블랑들의 특징인 미네랄 느낌이 많기 때문에 양념이 강하고 물기가 많은 우리의 음식과도 잘 어울리며, 해산물과의 궁합도 적절한 편입니다.
불고기버거, 새우버거, 치킨버거 모두와 다 함께 할 수 있는 와인일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의 피노누와는 가격대를 고려한 칠레 와인 중에선 개인적으로 최고인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던 중에 갑자기 선물 받은 포트 와인이 생각나서 급하게 따서 마시고 있는데, 고급 포트 와인은 처음인데 왜 영국 디캔터가 왜 그렇게 빈티지 포트와인을 칭찬했는지 이해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