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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Apr 26. 2020

생각의 실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들

트위터를 보는 중에 재미있는 공모전 광고를 발견했습니다.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


슈퍼와 마이너리티가 결합된 히어로가 과연 가능한가, 있으면 재미있겠는데? 하고 생각하던 중, 제임스 맥어보이가 주연으로 나왔던 <Wanted>란 영화가 머릿속에 떠오르네요.




소심한 성격에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맥어보이, 조금만 흥분하면 공황 증세가 생겨서 안정제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그의 찌질한 일상이 어느 날 나타난 정체불명의 여인 (안젤리나 졸리)으로 인해, 슈퍼 히어로 같은 킬러의 삶으로 극적인 변모를 하게 됩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모는 스포츠카의 옆자리에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앉아 있던 맥어보이가 경찰차 위로 날아가는 장면에서 "I~ a~m, so~~rr~y"라고 슬로우 모션으로 내뱉던 대사가 기억에 생생한데요

https://www.youtube.com/watch?v=B0cuLHkQDcA&list=PL15EB9FC6B1975C5F&index=4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특수 암살조직은 방직공장의 직조기에서 나오는 암호를 해독해서 자신들이 암살해야 할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독특한 아이디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요, 사실 이 부분이 아주 재미있는 메타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고대 서양에는 '생각은 실이며, 이야기꾼은 실타래를 돌려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지만 진정한 스토리텔러인 시인은 방직공처럼 이야기의 실들을 날줄과 씨줄로 엮어서 멋진 원단을 짜고 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 The elements of typographic style - by Robert Bringhurst)


Text란 단어의 어원도 라틴어 직조된 옷감이라는 의미를 지닌 "Textus"에서 왔다고 하죠.

글(문장)이라는 것이 결국 단어들의 다양한 수직적 수평적 교차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가진 문장으로 탈바꿈한다고 본다면, 아주 적절하게 그 의미가 발전되어 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술에서는 작품이 포함하고 있는 내러티브를 문자를 통해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conceptual art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작가들은 이런 방식이 아닌, 위에서 언급한 것 같이 text란 단어가 가진 본래의 어원적인 의미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진작가인 박승훈과 설치미술가인 서도호가 저에게는 그런 의미로 해석되는 작가들입니다.


Textus 082-1 2011 박승훈


박승훈 작가는 젊은 사진작가입니다. (이제는 중견이라고 불러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16mm 카메라를 이용해 동일한 대상을 다양한 시간대에 걸쳐서 촬영을 한 후, 그 네거티브 필름을 마치 직조를 하듯이 가로와 세로로 엮은 후, 그 이미지를 다시 카메라로 촬영해 냅니다.

하나의 대상물을 그 대상물과 관련된 다양한 시공간적 의미를 지닌 순간의 모습을 세분화하고, 그것들을 다시 연결시키는 작업을 통해 대상물이 가지고 있는 시간에 대한 연속적인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고 있는 것이죠.


작가는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었지만, 저에게는 수학적 미분과 적분에 대한 개념을 이미지에 적용한 듯한 아주 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치 24대의 카메라를 동일한 간격으로 설치해서 최초로 말의 움직임을 촬영했던 영국의 사진작가 에드워드 메이브릿지의 작품처럼 말이죠.


  


박승훈 작가의 최초 작품들은 움직이는 차속에서 서울의 야경을 찍어서 다시 재현해내고 있었는데, 점차 정지된 공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내러티브를 가지게 되는 이미지를 한 장에 응축적으로 담아내기 시작합니다.


아래의 Better view Firenze, 2011년이 좀 더 최초의 시도와 유사한 작품입니다.

 



서도호 작가는 Leeum에서 전시를 하며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많이 높였던 작가인데요, 이후 국립 현대 미술관이 지금의 자리에 재개관할 당시에도 특별 전시를 하며 많은 분들이 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집속의 집> 


자신이 살았던 미국과 한국 집의 외형을 망사 원단을 이용해 세밀하게 재현해내고 있는데, 두 공간에 각기 담겨 있는 내러티브를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물리적 하드웨어를 통해서 형상화해내고 있습니다. 작가에게는 향수와 연결이라는 것이 중요한 이미지였다고 하죠.


안과 밖이 투영되는 물리적 공간의 모습 속에서 나의 개인적인 공간은 어떠한 형태를 가지고 어떠한 이야기를 가지고 나를 둘러싸고 있을까가 궁금해졌던 아주 재미있는 경험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여러 가지 상징 중에 의복은 아주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의복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오랜 역사 동안 만들어 온 textile과 인간의 우수성을 표현해 주는 독특한 도구인 text가 완성되어 온 과정에 '실'이라는 공통 재료가 사용되었다는 점 신기하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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