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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May 12. 2020

<탄호이저> 중 <저녁별의 노래>

오페라와 연극 같은 극예술들은 숙명적으로 시간과 공간에 의한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창작자들이 남겨놓은 것은 희곡과 악보라는 단지 종이 위에 적힌 기호일 뿐인데, 이 기호에서 출발하여, 극을 재현해야 하는 일은 그 행위가 발생하는 시점의 관객들과 소통을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19세기 말 코펜하겐의 관객들에게 보이는 '노라'와  21세기 서울의 관객들에게 보이는 '노라'를 동일한 성격과 이미지로 재현 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피터 브룩이 말했듯이 극예술은  끊임없이 변해나가야 하며, 새로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저녁별의 노래>를 중심으로 오페라의 해석이 어떻게 변하는지 간단하게 살펴볼까 하는데요,

바그너의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의미와 역사적 의미를 바탕으로 그의 작품들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듯싶습니다.


특히 그의 예술성의 한축은 독일어를 중심으로 한 문학적 그리고 문화적 성취에 있기에 독일 문화와 독일문학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논하기 쉽지 않습니다. 바그너의 예술에 영감을 받은 그의 추종자들이 '니체' '토마스 만'에서 '구스타프 클림트'까지 음악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문화의 다방면에서 등장하는 것을 보면 바그너에 관해서는 무엇인가를 '좋아한다'가 아니라 '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일반 애호가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듯 보입니다.


(1962년 바이로이트 실황 음반 표지)



<탄호이저>는 바그너의 중기 작품으로 그가 창안한 <음악극>의 형식이 완성되기 전, 기존의 오페라 작법에 가깝게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그래서 그나마 우리가 '아리아'라고 부르고 있는 형태의 노래들이 등장하고 있고, 그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곡 중 하나가 바로 오늘 살펴보려고 하는 <저녁별의 노래>입니다.


주인공 탄호이저와 그를 사랑하는 그렇기에 기꺼이 탄호이저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엘리자베트 그리고 엘리자베트를 사랑하는 볼프람을 중심으로 사랑 희생 그리고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막에서 볼프람이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엘리자베트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는 노래가 바로 이 <저녁별의 노래> 인데요,


바그너의 오페라에서는 일반적인 오페라에 비해 오케스트라의 비중이 상당히 높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작곡가 스스로가 모든 대본을 쓰고 있는 만큼 극의 서사가 무척이나 중요한데요, 이런 점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3명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감상하고 비교해 볼까 합니다.


먼저 제일 처음 들어보실 가수는 토마스 콰스 토프입니다.

오늘 고른 세 개의 녹음 중 유일하게 오페라 실황이 아니며,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바그너 음악 축제)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베를린 도이취 오퍼 오케스트라와 함께 반주를 하고 있습니다.


이 녹음을 제일 먼저 고른 이유는 <저녁별의 노래>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해석을 보여주고 있어서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SxmCXqr0jQ


Wagner: Tannhäuser / Act 3 - Wie Todesahnung... O du mein holder Abendstern (Wolfram) · Thomas Quasthoff · Orchester der Deutschen Oper Berlin · Christian Thielemann

2002


시기적으로도 2002년 녹음이라 한 두 세대 이전의 감성이 묻어납니다.

지휘를 맡은 틸레만은 독일 낭만주의적 감성에 묻혀있는 느낌이 좀 강한 지휘자인데요, 이번 녹음의 반주에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본다면 약간은 감성에 묻혀 질질 끌리고 있는 부분들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에 연주되던 느린 템포에서 벗어나 바그너의 관현악의 생동감을 잘 느끼게 해주고 있으며, 보컬을 위한 레코딩의 반주여서 그런지 오케스트라가 가수를 지배하려는 시도도 전혀 없고, 무난하게 반주를 해내고 있습니다.


노래를 부르고 있는 베이스-바리톤 토마스 콰스토프는  실질적으로 오페라 무대에 오르기 힘든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베이스나 바리톤은 테너에 비해 낮은 주파수의 음역을 가지고 있기에 키가 큰 경우가 많고, 테너는 높은 주파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상대적으로 키가 작고 몸이 뚱뚱하다는 선입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샘플을 하나 보여드릴게요. 비제의 <진주조개 잡이>에 나오는 유명한 이중창이죠.

테너와 바리톤이 부르는 독특한 조합의 이중창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tLrPVkfCIQ


알라냐와 테어펠의 키 차이 보이시죠!

 


저도 이런 선입견에서 크게 예외는 아니었는데, 토마스 콰스토프를 보는 순간 그 선입견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키는커녕 정상적인 성장조차 못한 몸으로 이렇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기적을 행하는 가수인 것 같습니다.


목소리질이 아주 어둡거나 무겁거나 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풍부한 성량과 부드러운 발성을 하고 있어서 어려운 아리아임에도 안정적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럼 첫 번째 가수의 노래를 기준 삼아서 다음 가수들의 노래를 비교해 보죠. 


두 번째는 크리스티안 게르하허입니다. 독일 바리톤으로는 상당히 밝은 음색을 가지고 있는 편으로  음질로만 보면 오래전 헤르만 프라이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르는 창법 즉 스타일이 프라이하고는 많은 차이가 있는데요,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의 2017년 실황 장면입니다. 지휘는 현재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인 키릴 페트렌코입니다. (오페라를 통해 많은 재능을 발휘했던 지휘자였고, 현재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의 음악감독도 맡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WXUmia7FUw

TANNHÄUSER Conductor: Kirill Petrenko Production: Romeo Castellucci with Christian Gerhaher (Wolfram von Eschenbach) Bayerisches Staatsorchester Recorded on 9 July 2017 for STAATSOPER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극이 가지는 중요성이 상당히 크다는 이야기를 서두에서 했는데요, 이 공연에서 게르하허가 보여주는 해석은 극에 비중을 훨씬 많이 두고 있습니다. 노래를 부른다기보다는 관현악 반주에 맞춰서 서사시를 낭독하는 듯한 느낌을 주려는 의도가 다분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들었던 연주보다 관현악이 훨씬 주도적으로 음악을 이끌고 나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다시 말해 가수는 시를 낭독하고 음악은 오케스트라가 장악하고 있는 것이죠. 1분 15초 경부터 등장하는 현의 현란한 색채가 페트렌코의 특징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니체가 찬양했던 그리스 비극이 가지고 있던 서양 극 예술의 원형을 재현하고 있는 바그너의 음악극이 가지고 있는 특징, 즉 일반적인 오페라보다 운문이 지배하는 서사극의 형태가 훨씬 강한 모습에 초점을 두고 만들어 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호불호를 떠나 바그너를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라는 새로운 시도가 신선합니다.


여기서만 보면 게르하허가 밝은 음색의 미성인 바리톤이라는 말이 밑기지 않으실 텐데, 그가 부른 겨울 나그네를 한번 들어 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DE9OSAWp_k4 

일반적인 바리톤들의 해석보다 훨씬 최근 테너들이 부르는 방식에 가까워 보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딕션 부분이 특정 발음들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모습이어서 약간은 불만입니다.

독일어를 모르니, 가수가 그렇게 해석해야 하는 정확한 의도를 이해할 수 없기에 더 답답해지나 봅니다.



마지막으로는 스웨덴 출신의 페터 마테이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의 동작을 눈여겨보시길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8yYSMOt-0Y


STAATSKAPELLE BERLIN  STAATSOPERNCHOR Conductor DANIEL BARENBOIM Stage direction & choreography SASHA WALTZ

Wolfram von Eschenbach PETER MATTEI


베를린은 동 서독으로 나누어져 있던 역사로 인해, 대표 오페라하우스도 두 군데입니다. 그중 구 동독 지역에 있던 슈타츠오퍼 운터 린덴이 오랜 기간 오페라하우스를 이끌어 온 다니엘 바렌보임 덕분에 현재는 베를린을 대표하는 오페라 하우스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이 2014년 공연은 안무가의 연출로 많은 관심을 끌었던 공연입니다. 그래서인지, 마테이의 발성이나 창법은 오히려 게르하허에 비해 전통적인 스타일에 훨씬 가깝지만 춤을 추는 듯이 리듬을 타며 몸의 선을 그려내는 그의 동작이 특이합니다. 그리고 몸짓이 보여주어야 하는 이미지 표현 때문인지 노래의 템포가 조금은 색다른데요, 좋게 말해면 플렉시블하고 반대로 이야기하면 성악적으로는 균형을 약간 잃고 있는 느낌이 생깁니다.

연출을 중심으로 극이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 강한데, 그렇다 보니 바렌보임이 만들어 내는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도 페트렌코와 비교했을 때 주도권을 놓고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두 공연 다 공연 당시 참신한 연출로 현지 언론의 많은 호평을 받았었고, 몇 년이 지난 지금 보더라도 시간적인 퇴색 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살아있는 무대극'의 좋은 예 들인 것 같습니다. 


두 개의 실황 공연 중에 아리아 장면을 보면, 20세기 후반에 광풍처럼 밀어닥치던 초현실주의나 표현주의적 연출의 잔재가 약간은 남아 있어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훨씬 더 현대적인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는 시도만큼이나 원래 극 예술의 전통적 요소들인 음악적 리듬이 아닌 시적 리듬을 통해 극의 서사를 이끌고 나간다든지, 율동이 포함된 연기를 보여주는 부분들이 등장하는 것이 참신해 보입니다.

결국 역사는 순환한다는 이야기가 오페라와 같은 극예술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것일까요?


마지막으로 처음 이미지를 보여 드렸던 1962년 바이로이트 실황 녹음 전곡과 <저녁별의 노래> 가사를 감상해 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2KzuYh0Ckfk

거의 50년이 흐르고 있지만 아직도 음반 평론가들의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연주입니다. <저녁별의 노래>는 약 2:23:00 경에 나옵니다.





Wie Todesahnung, Dämm'rung deckt die Lande,

umhüllt das Tal mit schwärzlichem Gewande;

der Seele, die nach jenen Höh'n verlangt,

vor ihrem Flug durch Nacht und Grausen bangt!


Da scheinest du, o lieblichster der Sterne,

dein sanftes Licht entsendest du der Ferne,

die nächt'ge Dämmrung teilt dein lieber Strahl,

und freundlich zeigst du den Weg aus dem Tal.


O du mein holder Abendstern,

wohl grüßt' ich immer dich so gern;

vom Herzen, das sie nie verriet,

grüße sie wenn sie vorbei dir zieht,


wenn sie entschwebt dem Tal der Erden,

ein sel'ger Engel dort zu werden!



죽음의 예감처럼 황혼이 땅을 덮고

골짜기를 검은빛이 감싼다.

아득히 높은 곳을 향하는 그녀의 영혼에게도

밤을 가로지르는 길은 두렵다.


여러 별들 중 가장 아름다운 별이여, 빛을 내서

아늑한 그 불을 저 멀리 보내어,

부드러운 빛이 밤의 어두움을 헤치듯

당신은 친절하게 골짜기를 나가는 길을 알려 주시오.



오 나의 사랑스러운 저녁별이여,

나는 항상 너를 행복하게 반기고 있는데,

그녀가 결코 배반하지 않을 마음은

너를 지나치는 그녀에게 안녕을 남겨주기를


아득히 높은 곳에서 천사가 되기 위해

그녀가 이 땅의 골짜기에서 날아오를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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