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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Jan 12. 2019

보물지도를 만들기 위한 과학적 탐구

<전날의 섬>을 추억하며


 학창 시절, 친구들과 '지리는 지리해서 잠을 잘 수밖에 없다'라는 재미없는 아재 개그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지루한(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리 과목을 왜 배워야 했을까요?

우리들  대부분은(필자를 포함해서) 지리가 왜 중요한지, 

심지어는 지리가 무슨 과목인지 에 대한 생각들이 별로 없었을것 같습니다.


그런데 섬나라인 영국에서는 지리 과목이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지리 전공자에 대한 수요도 

꽤 많다고 합니다. 어 의외네 하셨다면, 이런 걸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영국은 바다로 대륙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늘 바다 너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국력을 키우기 위한 교역이나 침략전쟁등을 하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너 먼 대륙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바다를 넘어 익숙치 않은 세계로 진입하려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정보가 필수적입니다. 

그곳까지 가는 경로, 미지의 세계가 가지고 있는 환경, 

이런 것들을 잘 알면 알수록,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이 훨씬 수월해지고,

 그런 실질적인 이유가 이들로 하여금 지리학과 역사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했으며 

그런 종류의 정보를 축척해온 그들의 지식은  영국에게 번영을 약속하는 미래를 향한 핵심이 되버립니다.


그렇게 연구되고 개발된 지리학은 그들이 전세계 표준시의 기준을 잡게 하고, 

머나먼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할 수 있는 든든한 기초가 되었던 것이죠.


 하지만 영국만 지리학에 관심이 높았건 것은 아닙니다.


<대항해 시대>에 접어들며 유럽 각국은 경쟁국에 비해 더 앞선 무기를 갖기를 원했고, 

이런 당시의 흐름에 있어서 첨단기술로 여겨지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지도" 였습니다.



아시아나 중남미에 쳐들어가서 쌓여있는 노다지들을 수탈 한 후,

그들(유럽인)의 관점에 있어, 남겨진 숙제는 과연 이것을 어떻게 안전하게 

유럽으로 가지고 돌아갈까 였을테지요.


예전에 유행했던 노래중에 <독도는 우리 땅>에 이런 가사가 등장합니다.

"동경 132 북위 37" 도대체 이 동경과 북위가 뭐길래 독도에 관한 노래에까지 등장한 것일까요?


이번 편은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전날의 섬>에 대한 오마쥬입니다.

이 책의 내용을 따라 동경과 북위에 관한 숨겨진 비밀들을 찾아 보겠습니다.


 <전날의 섬>은 17세기 이태리의 귀족이 항해에 나섰다가 난파한 배에서 홀로 살아남은 부분에서 이야기 시작니다. 난파한 배는 조류를 따라 이리저리 흐르다가 남태평양 어딘가 섬들이 많은 곳의 주변 산호초에 걸려서 멈춰버리는데요

그렇게 산호초에 얹혀진 배의 위치와 배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의 시야에 들어오는 저 멀리 보이는 (시야에는 들어 오지만 헤엄쳐 가기에는 먼) 섬의 위치 사이에 날짜 변경선이 위치하고  있다는 기묘한 상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설의 화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물리적 공간안에 어제라는 시간과 오늘이란 시간이 다 보이게 된것이죠.


과연 이런 상황에서는 Past와 Present가 무슨 의미일까요? Past에서 시작되서 Present에 완결된 이야기들이 History 라면 이렇게 어제와 오늘을 동시에 바라보는 소설의 화자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과연 History 가 될수있을까요?


과거에 대한 소재를 가지고 역사적 배경에 핵심이 되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fiction임을, 이런 기발한 방식으로 전달하며 독자를 곤경에 빠뜨리고 웃고 있을 에코의 이미지가 머리에 떠 오릅니다.

(에코는 historical fact와 fiction이 섞여버려 독자에게 오류를 전달할수 있다는 이유로 <다빈치 코드> 같은 소설에 대해 강한 비판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 그의 비판에 당신 소설은 다냐고 반박하던 사람들은 아마도 이 소설을 또는  <바우돌리노>를 못 읽어 본것 같습니다)


경도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현대 지리학에서 사용되는 '날짜 변경선'은 사실 에코가 소설에 언급한 시대보다 훨씬 뒤에 정해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소설의 배경이 되는 17세기에도 분명 날짜 변경선은 존재하였고,

(더 이상 시간을 유럽대륙에만 국한할 수 없게 되자 날짜를 변경할 기준점이 필요해 진것이죠) 

재미있게도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필리핀은 유럽 지도에서 종종 아시아의 다른 국가와 다른 날짜에 속한 즉 유럽과 동일한 날짜에 들어 있는 국가로 지도가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날짜변경선은 지도상에 주요한 두 기준점인 위도와 경도 중에 경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노래 가사에 나오던 동경이 바로 경도를 지칭하는 것인데요

위도는 적도를 중심으로 양 극점(남극과 북극)까지의 사이를 0~90도로 나눈 가상의 선이며

경도는 본초 자오선이라 불리는 영국의 그리니치를 지나는 가상의 선을 기준점으로 하여 지구의 둘레를 360도로 나눈 선입니다.


그런데 왜 위도와 경도에서 단위가 각도를 의미하는 "도"가 사용될까요?



그림에서 보시는 것처럼 위도와 경도는 지표면의 특정 위치를 표시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위도는 적도가 지구를 가르는 면을 기준면으로 거기서 위로 몇도 또는 아래로 몇도에 놓여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고 경도는 위에서 언급한 분초자오선이 지구를 수직으로 자른면을 기준으로 얼마나 회전한 지점인지를 시하는 것입니다.


 위도는 고대부터 하늘의 별자리 관측등을 통해 어느 정도 정확한 관측이 가능했지만 경도는 과거의 기술로는 측정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에코는 이런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유럽 각국이 해양 진출을 위한 경쟁을 하면서 어떻게 지도를 발전시켰는지, 그에 따르는 다양한 철학과 문화에 대한 영향 등까지 세세한 묘사를 통해 소설을 끌고 나갑니다.


 지루한 과목이라 지도를 많이 보지 못한 저에게 좀 황당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사회과 부도에 나오는 세계지도는 항상 아래의 이미지처럼 태평양을 가운데로 하여 좌측 끝에 아프리카 그리고 우측에 아메리카 대륙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세계를 이런 선입견으로 (평면적으로) 생각해 온 제가 초등학생 시절 <뿌리>라는 노예제도와 관련된 미국 드라마 시리즈를 보면서 품었던 의문은 어떻게 좌측의 끝에 있는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잡아서 우측의 끝에 있는 미국까지 배에 태우고 갔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구를 둥근 구라고 이해했다면, 그러니까 평면 지도가 아닌 지구본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가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가까운 사이라는 걸 쉽게 알아챘을텐덴 말입니다.


 이런저런 지리와 지도에 대한 얘기를 한 이유는 경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유럽 각 국가는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부의 원천을 찾아서 아시아와 아메리카로의 항로를 개척하기 시작합니다. 위도야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별의 위치 등을 기반으로 측정해서 상당히 정확히 알 수 있었지만, 자전하고 있는 지구의 경도를 알아내는 건 그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설 속에 나오는 에피소드 등을 보면, 쌍둥이 개를 가지고, 한 마리는 런던탑에 그리고 한 마리는 탐사선에 태운 후, 매시간 런던에서 런던탑에 가둔 개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쌍둥이는 무엇인가 텔레파시 같은 게 통해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그것을 느낄 거라는 황당한 중세의 미신을 이용해 경도를 찾는 과학자의 얘기들은 정말 신기했습니다. 항상 사실이 소설보다 더 극적인 법인 것 같습니다.


 캐리비언의 해적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모든 해적은 보물섬 지도를 놓고 엄청난 다툼을 벌이는 데요, 

정확한 해도야 말로 당시 유럽 국가들에겐 엄청난 보물을 실어 올 수 있는 보물섬 지도와 동일했던 것입니다.


 이런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이유를 바탕으로 엄청나게 경도를 찾는 시도들이 생기고, 

급기야 영국 왕립 지리 협회에서 경도를 찾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한테 어마 어마 하게 많은 돈을 

주겠다고 현상금까지 걸게 됩니다.


 자 그럼 과연 이 경도를 찾는 방법을 고안한 사람은 어떤 과학자였을까요?


 정답은 영국의 뛰어난 목수였습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했던 갈릴레오도 실패하고, 핼리혜성을 예언한 에드먼드 핼리도 실패한 경도를 찾는 방법을 제시한 사람은 과학자가 아닌 목수였던 것입니다. 그가 찾은 방법은 정확한 시계와 동일한 속도로 나아가는 배가 있다면, 매 시간마다 배가 나아간 지점들을 연결해서 경도로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것이었고, 그는 배에서 생기는 다양한 상황 변수에도 정확히 시간을 알아낼 수 있는 추시계를 개발합니다. (배의 속도를 knot라고 하는 것도 여기서 시작된 개념입니다. 일정한 거리를 알기 위해선 거리를 측정할 기준이 있어야 하고 이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 일정한 길이로 매듭을 묶은 긴 줄이 사용되면서 일정  시간 사이에 몇 매듭(knot)를 전진했는가로 배의 속도를 측정하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H1 by John Harrison


그럼 이 목수가 어마어마한 상금을 받았을까요? 아닙니다. 영국 왕립 학회는 이 목수가 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발견을 인정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겨 버리고 말게 됩니다.


 세상을 바꾸는, 경계를 무너뜨리는 아이디어와 시도는 귀족이나 학벌이 좋은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발명왕 에디슨도 정규 학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며, 이 와 같은 예는 수도 없이 찾을 수 있습니다.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기존의 시스템에 묻혀 있지 않은 도전 정식과 창의력으로 무장한 요크셔의 목수 'John Harrison' 이야말로 경계를 무너뜨리는 숨어 있는 작은 거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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