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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Jun 17. 2020

아름다움은 진정 외형이 아닌 내면에 있을까?

북커버 디자인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라는 영어의 유명한 관용구가 있습니다.


겉모습 만으로 그 내면을 판단하지 말라는 이 문구 속에 책(Book)이 사용된 것이 참 재미있는데요,

BBC Culture에 책 커버 디자인에 대한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책에서 커버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분석 기사였는데,

소개된 대부분의 책이 우리 현실과는 차이가 있는지라, 이리저리 흩어 보는데

Anthony Burgess의 <시계태엽 오렌지> 표지 디자인이 눈에 들어옵니다.


David Pelham이 디자인한 1972년 판의 표지인데, 찾아보니 디자이너는 책 표지 디자인으로 아주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팝아트 작품을 연상케 하는 표지는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고 있고, 시계태엽 모양의 외눈이 아주 그로테스크하고 기계적인 느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미지를 통해 영화에 등장한 주인공들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초판 출판 당시의 표지 디자인을 찾아보니,



이 뛰어난 소설이 SF라는 장르에 속한 작품이라는 기본적인 정보 전달 조차 잘 안 되는 느낌입니다.

뭐 어떤 의미에서는 상처 받은 주인공의 자아를 드러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이기도 하지만 72년판이 보여주는 명확함이 워낙에 뛰어난 것 같습니다.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국내의 책 표지 역사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부터 입니다.


서재 어딘가에 박혀 있을 80년대 후반 출간된 이 책을 찾을 길이 없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중고 서적 판매하는 곳에 다행히 한 권이 올라와 있습니다. 

 


아마도 80년대 후반 처음 번역돼서 출판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89년에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프라하의 봄>으로 개봉된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책을 샀는데, 손바닥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당시로는 충격적으로 예쁜(?) 커버 디자인을 한 이 책을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80년대 후반에는 대학교 로고가 인쇄된 투명 파일을 들고 다니는 것이 유행했던 적이 있는데, 이 책을 그 파일 안에 넣고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이 일종의 패션 아이템으로 당시 많은 여대생들이 따라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혹자들은 책은 읽는 것이지 장신구가 아니라고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유명 브랜드의 테이크 아웃 커피까지 패션 아이템처럼 들고 다니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오히려 단순한 외형만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중요성을 상당히 잘 보여주고 있었던 패션 심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요즘 사람들이 보여주는 고가의 차를 타면 또는 고가의 핸드백을 들면,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것으로 여겨질 거라는 아무 철학도 담기지 않은 행동에 비해 당시 여대생들이 밀란 쿤데라를 좋아한다는 sign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고 싶어 했던 지적 허영심은 훨씬 고귀해 보입니다.


이후 민음사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다양한 커버를 시도하고 있는데,


세계문학전집에서 사용된 아래의 커버는 해외에서 출판되었던 커버 디자인에 사용된 작품을 재활용한 것입니다.



프랑스 아방가르드 작가인 Francis Picabia의 작품입니다.

뭔가 큐비즘과 초현실주의가 약간 뒤섞인 느낌의 위 표지에서는 3쌍의 눈으로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이 3쌍의 눈은 끊임없이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아 나서는 사비네의 가벼움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운명에 나타난 연속적인 우연의 신호를 운명이라고 읽어버린 탓에 끊임없이 자신을 둘러싼 삶의 현실을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테레사의 무거움을 드러내는 것일까요?




이후 밀란 쿤데라 전집을 내면서 민음사는 전집 디자인에 통일성을 주기 위해서 인지 각 책의 표지에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을 한 점씩 매칭하고 있는데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Man in a bowler hat>이 배정되었습니다.


초기에 이 작품이 인기를 끌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담고 있던 '민주주의 또는 민주화 운동'이라는 코드가 당시 한국사회의 지성인과 대학인 사이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인식되었던 탓인지라, 이런 이미지가 최근까지도 유지되었던 것이 아마도 위의 표지가 탄생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소설에서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 중절모와 달리 그림 속 Bolwer Hat은 뭔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우리의 생활과는 동떨어진 소재들이라, 한국에서 이 모자 모델의 외형 차이로 기인하는 기호적인 의미에 차이를 느낄 경우는 없을 것이고, 비둘기의 상징이 평화와 자유이니 르네 마그리트의 이 작품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배정된 것은 쉽게 예상이 가능한 듯싶습니다.   




작가 본인이 직접 그렸다는 그림을 표지로 쓴 가장 최근 판입니다.

그가 소설에서 보여주는 글의 이미지와 직접 그린 강아지 그림 사이에 전혀 상관관계가 느껴지질 않습니다.


영화에 등장했던 강아지 하고는 좀 닮은 것 같은가요?



<안나 카레니나>를 좋아해서 극 중 강아지 이름을 '카레닌'이라고 지었다고 하는데,

<안나 카레니나>의 오프닝인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문구의 의미가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는 줄리엣 비노쉬의 얼굴 속에 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16번 op. 135>가 주요한 모티브로 등장합니다. 4악장에 베토벤이 달아 놓은 주석인  "Es muss sein-It must be" 때문인데요, 우연의 연속을 필연으로 읽고 있는 (아니면 읽고 싶은 것일까요?) 보편적인 인간의 운명론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무거움'을 상징하는 도구의 하나로 사용되고 있죠.


https://www.youtube.com/watch?v=4GmF1RdcRdg 


재미있게도 영화에서는 밀란 쿤데라의 동향 음악가인 야나첵의 음악을 자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야나첵 현악 4중주 2번 4악장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ayR9IDRNr8



야나첵의 이 현악 4중주 2번은 작곡가에 의해 "Intimate Letters"라는 부제가 달립니다, 그가 오랜 기간 우정과 사랑(정신적인 사랑이라고 주장는)을 나눈 그 보다 38살 연인 한 유부녀와의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에서 영감을 받아서 작곡되었다고 합니다.


과연 이들의 사랑 또는 우정은 스스로에게 '삶의 무거움'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들의 정신을 공기처럼 가볍게 들어 올려 삶의 무게를 잊게 만드는 색다른 생의 원동력이었을까요.


  이 글을  쓰면서 제목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야나첵의 음악을 통해 드는 생각은, 이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단순히 그저 외양이냐 아니면 내면이냐 이렇게 단순하게 가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주체의 인식과 사고에 따라 상대적이 될 수밖에 없지 않나 라는 결론을 내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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