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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Jun 28. 2020

거울아, 거울아! 최악의 미술가는?

시내를 다니는 중에 갑자기 노란색 타공판에 간판을 내건 패스트푸드 매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노브랜드 버거"라는 브랜드인데, 궁금해서 안으로 들어가 세트를 시키면서 내부 인테리어를 둘러보았습니다.


뭔가를 베끼긴 한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습니다.



왜 햄버거에 구멍이 뚫린 걸까요? 



흠 2개의 이미지를 조합해서 생각해 보니, LOVE의 배열구조와 아래 글씨에 달린 shadow스타일이 로버트 인디아나의 LOVE를 차용해서 만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계속 햄버거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거슬립니다. 그리고 위의 이미지 중 첫 번째 LOVE는 밸런타인 데이 행사용으로 만든 한시적인 이미지인데....


그러다가 카운터 위에 놓인 모니터에 광고용으로 만든 것 같은 영상이 흘러가는 것을 보니, 그제야 감이 옵니다. (제가 좀 둔한 편인지)


아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느낌을 가져오려고 했군요.


그래서 Honeycomb 구조물에 노란색을 칠한 외부 인테리어를 사용하고 햄버거와 음료수 컵 그리고 감자튀김의 봉투에 점을 찍어 놓았던가 봅니다. (전 왜 구멍을 뚫어 놓았다고 생각했을까요?)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국내에서는 꽤 유명세를 탔었죠, 국내 유명 그룹사에서 비자금으로 구입했다는 고소를 당하면서 갑자기 미술에 관심 없는 일반인들까지 그 이름을 들먹인 적이 있었는데요, 

입방아에 올랐던 작품은 1964년 작인 <Happy Tears> 였습니다.



1964 Happy tears    96.5 x 96.5 cm



로이 리히텐슈타인 재단에서 운영하는 공식 사이트에서 살펴보니, 본 작품을 위한 study 가 눈에 뜨입니다.


Hair의 색상과 배경색을 두고 노랑과 빨강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이 보이네요. 그리고 파란색을 아주 적게 사용한 것 역시 독특해 보입니다. 헤어에 파랑 줄 하나가 슬며시 들어가 있는 것이 보이긴 하지만 그가 그린 여성의 이미지는 블론드를 연상시키는 노랑이 대부분이죠..


로이 리히텐슈타인에 관한 설명 중에는 "만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라는 평이 많은 데요,

저는 확실하게 이 의견에 반대하는 편입니다.


만화를 예술로 끌어올린 것이 아니라, 그가 미술의 소재중 일부를 만화에서 사용된 이미지를 차용했던 것뿐이죠.  폴 세잔과 르네 마그리트가 사과를 많이 그렸다고 그들이 사과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만화는 만화 자체로서 그 예술성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하고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만화들도 많습니다. 굳이 만화를 예술과 비교해서 저급한 예술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에 가장 큰 특징인 벤 다이 도트의 영향으로 모두 미국 만화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사실 그는 다양한 소재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구하고 있습니다.


아래에서 보시는 작품 <Female Figure>는 쉬르레알리즘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입니다.



Female Figure                    

1977,  Oil and Magna on canvas  152.4 x 137.2 cm


이 작품을 위해 그가 아이디어를 얻은 소스인데요



이 책에 나오는 쉬르레알리즘의 다양한 시각과 표현에서 영감을 얻어 쉬르레알리즘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 해석했다고 합니다.


사실 그가 어디서 작품의 모티브를 가져왔는지도 중요하지만, 그의 그림을 관통하는 가장 구조적인 틀은,

3 원색과 검은색 선입니다. 바로 몬드리안 회화에서 기본 요소로 사용되었던 구조들이죠.








(몬드리안에 관한 이전 글 보시려면 여기를 https://brunch.co.kr/@milanku205/230




현대에 와서는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이지만 처음 대중에게 그의 작품들이 선보이기 시작했던 60년대에는 그의 작품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1964년 1월 31일 LIFE잡지에는 "Is he the worst artist in US?"란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가 실렸는데

 


당시 대중들이 이 작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가늠하게 해 줍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의 재벌이 비자금을 이용해서 샀다는 뉴스부터 또 다른 재벌 그룹의 햄버거 가게 이미지 차용까지 우리의 생활 속 깊은 곳까지 리히텐슈타인이 만들어 낸 꿈과 상상의 세계가 파고들고 있습니다.


리히텐슈타인의 이미지에 대한 패션업계의 사랑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하퍼바자에서 만들어 낸 리히텐슈타인 오마쥬 이미지들은 작가의 특징을 정확하게 발견하고 재 해석해 내고 있습니다.


 


리히텐슈타인의 가장 큰 특징은 이 패션 화보에서 보듯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Color POP-ing 스러움에 있는 것이지, 싸구려 타공판이나 허니콤 패널을 이용해서 구멍을 낸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강렬한 색상과 명쾌한 검은색 라인의 분별이 특징적인 리듬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유명한 라벨의 곡을 연상케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NDwT6SCf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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