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를 다니는 중에 갑자기 노란색 타공판에 간판을 내건 패스트푸드 매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노브랜드 버거"라는 브랜드인데, 궁금해서 안으로 들어가 세트를 시키면서 내부 인테리어를 둘러보았습니다.
뭔가를 베끼긴 한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습니다.
왜 햄버거에 구멍이 뚫린 걸까요?
흠 2개의 이미지를 조합해서 생각해 보니, LOVE의 배열구조와 아래 글씨에 달린 shadow스타일이 로버트 인디아나의 LOVE를 차용해서 만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계속 햄버거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거슬립니다. 그리고 위의 이미지 중 첫 번째 LOVE는 밸런타인 데이 행사용으로 만든 한시적인 이미지인데....
그러다가 카운터 위에 놓인 모니터에 광고용으로 만든 것 같은 영상이 흘러가는 것을 보니, 그제야 감이 옵니다. (제가 좀 둔한 편인지)
아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느낌을 가져오려고 했군요.
그래서 Honeycomb 구조물에 노란색을 칠한 외부 인테리어를 사용하고 햄버거와 음료수 컵 그리고 감자튀김의 봉투에 점을 찍어 놓았던가 봅니다. (전 왜 구멍을 뚫어 놓았다고 생각했을까요?)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국내에서는 꽤 유명세를 탔었죠, 국내 유명 그룹사에서 비자금으로 구입했다는 고소를 당하면서 갑자기 미술에 관심 없는 일반인들까지 그 이름을 들먹인 적이 있었는데요,
입방아에 올랐던 작품은 1964년 작인 <Happy Tears> 였습니다.
1964 Happy tears 96.5 x 96.5 cm
로이 리히텐슈타인 재단에서 운영하는 공식 사이트에서 살펴보니, 본 작품을 위한 study 가 눈에 뜨입니다.
Hair의 색상과 배경색을 두고 노랑과 빨강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이 보이네요. 그리고 파란색을 아주 적게 사용한 것 역시 독특해 보입니다. 헤어에 파랑 줄 하나가 슬며시 들어가 있는 것이 보이긴 하지만 그가 그린 여성의 이미지는 블론드를 연상시키는 노랑이 대부분이죠..
로이 리히텐슈타인에 관한 설명 중에는 "만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라는 평이 많은 데요,
저는 확실하게 이 의견에 반대하는 편입니다.
만화를 예술로 끌어올린 것이 아니라, 그가 미술의 소재중 일부를 만화에서 사용된 이미지를 차용했던 것뿐이죠. 폴 세잔과 르네 마그리트가 사과를 많이 그렸다고 그들이 사과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만화는 만화 자체로서 그 예술성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하고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만화들도 많습니다. 굳이 만화를 예술과 비교해서 저급한 예술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에 가장 큰 특징인 벤 다이 도트의 영향으로 모두 미국 만화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사실 그는 다양한 소재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구하고 있습니다.
아래에서 보시는 작품 <Female Figure>는 쉬르레알리즘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입니다.
1977, Oil and Magna on canvas 152.4 x 137.2 cm
이 작품을 위해 그가 아이디어를 얻은 소스인데요
이 책에 나오는 쉬르레알리즘의 다양한 시각과 표현에서 영감을 얻어 쉬르레알리즘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 해석했다고 합니다.
사실 그가 어디서 작품의 모티브를 가져왔는지도 중요하지만, 그의 그림을 관통하는 가장 구조적인 틀은,
3 원색과 검은색 선입니다. 바로 몬드리안 회화에서 기본 요소로 사용되었던 구조들이죠.
(몬드리안에 관한 이전 글 보시려면 여기를 https://brunch.co.kr/@milanku205/230
현대에 와서는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이지만 처음 대중에게 그의 작품들이 선보이기 시작했던 60년대에는 그의 작품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1964년 1월 31일 LIFE잡지에는 "Is he the worst artist in US?"란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가 실렸는데
당시 대중들이 이 작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가늠하게 해 줍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의 재벌이 비자금을 이용해서 샀다는 뉴스부터 또 다른 재벌 그룹의 햄버거 가게 이미지 차용까지 우리의 생활 속 깊은 곳까지 리히텐슈타인이 만들어 낸 꿈과 상상의 세계가 파고들고 있습니다.
리히텐슈타인의 이미지에 대한 패션업계의 사랑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하퍼바자에서 만들어 낸 리히텐슈타인 오마쥬 이미지들은 작가의 특징을 정확하게 발견하고 재 해석해 내고 있습니다.
리히텐슈타인의 가장 큰 특징은 이 패션 화보에서 보듯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Color POP-ing 스러움에 있는 것이지, 싸구려 타공판이나 허니콤 패널을 이용해서 구멍을 낸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강렬한 색상과 명쾌한 검은색 라인의 분별이 특징적인 리듬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유명한 라벨의 곡을 연상케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NDwT6SCfk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