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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Jun 28. 2020

랜선 미술 애호가들을 위한 ArtBasel - 1


코로나 사태로 인해 Basel에서 열릴 계획이었던 2020년 아트 바젤이 취소가 되면서, ArtBasel에서는

OVR이라는 새로운 온라인 기반의 미술 전시회를 오픈했습니다.


사실 아트  Fair는 기본적으로 콜렉터와 갤러리를 위한 상업적인 행사이기에, 애호가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아니죠. 하지만 이번에는 붐비는 인파에 휩쓸리는 일 없이 덕분에 맛있는 와인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집에서 편안하게 Artbasel을 즐기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상에서 모일 수 없다 보니, 온라인으로 다양한 Conference 등을 개최하고, 여러 미술평론가들과 아트 잡지들이 각각  금년 전시의 하이라이트 등을 앞다퉈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올리는 경쟁이 붙으면서 2020년 전 세계 미술시장에 대한 각자의 다양한 관점들을 살펴볼 수 있어서 그 또한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초-Luxury 시장의 마케팅은 일반적인 상품 소비시장에서 이루어지는 매스마케팅 방법들과는 다른 디마케팅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충성도가 높고 소비여력이 분명한 특정계층만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었는데, 하지만 점차 세대가 바뀌면서 (요즘은 재벌집 자녀들도 인스타에 자신의 집을 공개하는 것을 곧잘 볼 수 있으니)  최근에는 대중에게 다가서려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가고 있는데요


물론 이전에도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시도가 없진 않았습니다.

Pop art의 스타작가들은 마치 셀럽과 같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대중친화적인 모습으로 복제하고 재생산해 내고 있었고 (Pop art의 본질을 현실에서도 행하기 위해서였을까요?)


현재 미술시장을 살펴보더라도 현존 작가 중에 가장 비싼 작품 가격을 기록하고 있는 Jeff Koons 등의 예를 보면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것이 작품 가격 형성에는 훨씬 유리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갤러리들도 모든 대중에게 자신들의 비즈니스가 알려지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으니 차선책으로 선택적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어쨌거나 이런 새로운 트렌드에 맞춰 모습을 바꿔나가던 차에, 코로나라는 쓰나미가 몰아닥치니 아주 자연스럽게  시장의 방향이 대중을 향해 활짝 열리게 됩니다.

이번 아트바젤에서 도입한 OVR - Online Viewing Room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인데요


온라인이라는 장점 덕에 쭉 훑어보면서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쉽게 저장해놓고 다시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하고 있는 등 고객 친화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부분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번 Online viewing room을 통해 제 눈에 띄었던 작품 몇 가지를 몇 편에 걸쳐 소개해 볼까 합니다.



OVR를 보셨다면 이해가 쉬우실 텐데, 처음 갤러리 화면으로 들어가면 갤러리 설명과 함께 작은 이미지들이 사이트의 오른편에 몰려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썸네일보다는 크지만 그렇다고 작품의 느낌이 확 구분될 정도는 아닌데, 그런 정신없는 와중에도 눈길을 잡아끌기 충분한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Bahrain I, 2005

Photography

C-print

5 of 6

300.2 x 217.6 x 6.2 (cm)




처음 받은 인상은 거대한 모래밭을 캔버스 삼아 한붓 그리기를 한 것인가? 같은 느낌이었는데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치 거대한 풍경을 정밀하게 묘사한 하이퍼 리얼리즘 회화 작품 같기도 합니다.


작품의 상세 페이지로 들어가면 확대된 이미지와 작품에 관한 설명들을 볼 수 있는데,

큰 붓에 먹물을 잔뜩 묻혀 일필휘지로 거침없이 그려낸 것 같던 검은색 선들은 확대된 이미지로 보면, 아스팔트 도로인 것이 드러납니다.


이 이미지는 다름 아닌 바레인 F1 경기장을 찍은 사진 작품이었습니다.



사진 좋아하시는 팬들이라면 잘 알고 계실 Andreas Gursky의 작품인데요,


이 작품을 전시한 White Cube는 이 작품에 대하여 a high vantage point에서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을 디지털 합성을 통해 흐르는 듯한 회화적 이미지로 재현해 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일필휘지라고 이야기 한 지점echoing gestural strokes라고 멋지게 집어내고 있네요.


사진작품이고 여러 이미지를 하나로 합쳐서 완성해 낸 것 이외에는 어떤 조작도 없음에도(다시 말해 아주 리얼리티에 충실한 이미지임에도), 제에게는 어떤 의미로는 실제로 인식할 수 있는 인지의 한계를 벗어난 환상 속의 이미지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가 만일 헬리콥터를 타고 저 경기장 위의 상공에 떠 있더라도 제 눈에는 레이싱 트랙의 이미지가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사진의 하단 부분은 마치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지만, 사진의 상단 이미지가 주는 인상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 두 느낌이 한 번에 인식되는 경이로운 시선의 지점이 이 작품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것일까요?


높은 곳에 올라가 고개를 아래로 향하게 한번 바라보고 다시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았을 때 각각 인식되는 2개의 다른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로 합성된 듯한 독특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사진입니다.


혹시 이 대가의 작품 가격이 궁금하신가요? 갤러리 측에서 제시한 가격은 무려 1,750,000 USD

(약 21억 원)입니다. 6장의 에디션 중 5번째 작품이니 다 합치면 얼마야? 또는 첫 번째 에디션은 그럼 얼마야 비싼 걸까 하실 텐데요, 이 작품 이전 에디션은 MOMA와 TATE London등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을 만들어 낸 작가 Andreas Gursky는 독일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 출신이며, 현재는 모교의 교수로 재직 중인데요, 현대 미술계에서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의 위세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역대 최고가 사진작품 리스트를 뽑아 보면, 리스트의 가장 상단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5위까지의 리스트에 끊임없이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작가인데요


가장 궁금해하실 이 작가가 기록한 역대 최고가 사진 작품은 4.3M USD (약 52억 원)에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되었던 <Rhein 2>입니다.




막상 이미지를 보고 나서는, 음 이게 뭐지?라고 당황해하시는 분들 많으실 것 같습니다.


어떤 미술작품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거대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 작품들은 모니터에 떠 있는 이미지만 보았을 때는 원 작품이 품고 있는 힘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이 이미지를 통해서 작품의 사이즈 감을 간접적으로라도 느끼실 수 있을 텐데


이 작품의 크기는 350cm x 200cm입니다. 대략 77인치 TV의 화면 크기가 170cm * 95cm 정도이니, 약 300인치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 음! 여전히 상상이 안 가긴 마찬가지인가요? 300인치는 77인치 화면 4장이 합쳐진 크기입니다)


작가는 사진을 찍은 후 사진기의 렌즈에 포함되어 있던 산책하는 사람들이라던지, 자전거를 타는 사람 그리고 돌아다니는 강아지들 이런 모든 이미지를 삭제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것처럼 순수한 풍경 이미지만을 남겨 놓습니다.


다시 한번 원본 이미지를 천천히 보신 후 평론가들의  작품 평을 읽어 보시죠.


 " a great deal of confidence in its effectiveness and potential for creating atmospheric, hyper-real scenarios that in turn teach us to see - and read - the world around us anew." - Guardian


Newyork Times에서는 자신들의 견해는 밝히지 않고 옥션하우스 크리스티의 견해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a dramatic and profound reflection on human existence and our relationship to nature on the cusp of the 21st century"


그리고 작가 스스로가 밝히고 있는 작품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for me it is an allegorical picture about the meaning of life and how things are."


지금보다 종교의 권위가 더 높았던 70년대까지만 해도 'Meaning of Life'는 종교 이외의 지점에서는 금기어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영국의 재기 발랄한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톤이 <Meaning of Life>라는 블랙 코미디 영화를 내놓기 전까지 말이죠.


종교가 심어놓았던 환상이 깨어지고 나면서 사람들은 점차 이 말이 가진 그 핵심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고, 이런 움직임이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환경 즉 사회 속 관계, 그리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균형과 조화 등에 대해 다양한 질문과 해답을 내놓게 만드는 흐름 속이었던 90년대 후반,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Meaning of Life'라는 부제 아닌 부제를 붙이고 있습니다.


자, 이제 사진을 다시 보시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저는 어떤 느낌이 드냐고요?


저에게 드는 느낌은 두 가지인데 바로 '절대적인 고요'와 '무한한 거대함'입니다.


여기서 고요함이란 나의 본질을 가장 근원으로 되돌려 놓는, 다시 말해 정신적 육체적 상태를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는 정신의 상태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무 소리도 없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자극하는 소음이 전혀 없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만 들리는 한적한 바닷가에서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면, 비록 음악 소리가 들리더라도 저에게는 고요함으로 느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고요함을  명상이나 종교 등에서 경험하는 것과 같이, 정신이 내면으로 편안하고 깊게 가라앉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음향적 환경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고요한 산중 선사에 울려 퍼지는 정갈한 목탁소리는 저에게는 고요함으로 인식 될 것입니다. 



그리고 거대함이란 물리적으로 시각이 인지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공간에서 받을 수 있는 초월적 느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은 반사된 빛이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을 뇌에서 인식하는 것인데, 이렇게 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는 어떠한 감각은 오직 정신세계에서만 가능할 테죠.


현실세계의 물리법칙 하에서는 아마도 불가능한 이런 거대함에 대한 개념은 역시 종교나 철학적인 관점에서 정신 수양 등을 통해 우리의 정신력과 사고력이 발달한다면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해탈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제가 생각하는 거대함을 가장 잘 묘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놓고 다시 한번 <Rhein 2>를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면, 내가 바라보는 대상인 자연과 관찰자인 나 사이에 아무런 방해물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현실 세계에서는 내 눈만을 통해서는 볼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서는 확장된 공간을 한 번에 바라볼 수 있다는 독특함이 나의 사고를 사로잡기 시작합니다. 


이렇듯 사고가 하나의 깊이로 집중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주변의 소음이 귀를 통해 뇌로 전달되는 통로가 막혀버리고 내가 떠올리는 것 이외에는 어떤 소리도 느껴지지 않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어쩌면 이런 놀라운 고요함과 거대함은 이미지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소리로도 경험할 수 있을 듯 한데,

바로 이 음악을 통해서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인 <파르지팔>의 전주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xsbQ-_iroM  


쇼펜하우어와 동양사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후 완성된 곡으로, 거대한 구조를 가진 오케스트라곡이지만 아주 고요하고 장엄한 느낌을 주는 곡입니다.





고요함과 거대함은 또 이런 이미지를 가진 영화의 한 장면도 떠오르게 하는데요 




자연이 만들어내고 있는 거대한 장엄함 앞에서 창조의 위대함을 칭송하고 있는 웨이랜드 회장의 거실이야말로 <Rhein II>를 위한 딱 맞는 공간일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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