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조영남' 사기 사건이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막을 내렸습니다.
예술을 법으로 재단을 하려 했다는 검찰의 기소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 듯싶습니다.
하지만 오랜 예술의 역사 속에 많은 미술작가들이 관행적으로 조수를 두고 있었기에 이번 경우도 문제가 없다는 조영남 씨 측 논리의 도덕성에 대해서는 모든 분들의 의견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듯싶은데요
'그럴 수도 있지'라는 의견과 '그게 말이되?'라는 의견 충돌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인데요,
사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서구의 오랜 예술 전통에서는 조수라는 관행은 당연하다'라고 주장하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가 어려운 것이 서구의 미술계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물론 당연히 조수가 필요하다고 인정받는 작업들도 많이 있습니다. 뛰어난 건축가이자 조각가들인 르네상스 시대의 장인들의 경우 당연히 조수가 필요했을 테고, 퍼포먼스를 하는 작가의 경우에도 조수들이 반드시 필요하겠죠. 작가 이불이 초기에는 자신의 몸을 이용해 다양한 퍼포먼스를 벌였는데, 이런 행위들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이런 경우 어느 누구도 작품에 관한 작가의 독창성이나 작품의 예술적 가치 등에 토를 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조수의 존재에 대해서 작가 스스로가 공공연하게 떠들어 대면서, 아예 확실하게 미술계의 도장을 받는 것이죠. ( 하지만 이 경우에는 해당 작품들의 작품성 및 가치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서전에서 조수의 존재를 그것도 이름까지 밝혀버렸던 Damien Hirst가 첫 번째 일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Snapchat과 협업을 하는 바람에 미술에 관심 없는 젊은 친구들이 오히려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사실 포름알데히드로 가득 찬 수조에 죽은 상어를 집어넣은 작품을 통해서 일약 세계적 스타가 된 작가이죠.
사실 이런 정도의 작품이라면 그가 작업에 조수를 참여시켰다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독창성은 누가 봐도 아이디어에 있는 것이 분명하고, 또한 이런 거대한 작업을 혼자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될 테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가 자랑스럽게 조수의 존재를 알렸던 작품이 바로 이런 종류의 회화였던 것입니다.
그는 이 작품처럼 캔버스에 다양한 색상의 도트를 그린 작품을 꽤 많이 내놓고 있는데, 이 작품에 조수를 고용한 이유는 작품 제작 속도를 높여서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맨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이 작품의 진정한 예술성은, 아마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싼 자신의 작품을 많이 만들어 판매하기 위해서라고 당당히 밝히는 그 행위 자체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떡해 보면, 예술 시장, 특히 아트마켓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일침을 날리면서 동시에 돈도 벌어 들이는 것이 아닐까 싶은 거죠.
'싸구려 플라스틱 변기'를 가져다가 예술이라고 퉁친 사람도 있는데 나는 이만하면 양반이지 하면서 예술시장이라는 허울 속에서 극한의 허영을 드러내는 일부 컬렉터 행태를 풍자한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작가는?
그렇다면 장인정신과 독창성이라는 미술 작품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데미언 허스트의 생각에 동의하시나요?
동의하시는 분들도 계실 테고 아마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분들도 많으실 텐데, 동의하지 못하시는 분들에게는 든든한 후원군이 있습니다.
미술계에서 인기로 보나 가격으로 보나 데미언 허스트에 밀리지 않는 데이비드 호크니 옹이 직접적으로 데미언 허스트를 공격합니다.
그는 ' 로얄 아카데미 오브 아트'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회 포스터에 이런 문구를 집어넣었습니다.
"All the works here were made by the artist himself, personally." (The Guardian 2012. Jan 3)
아 물론 데이비드 호크니 옹도 어시스트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위의 문구를 사용한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에는 조수들의 도움을 전혀 안 받았나 봅니다.
금년 아트 바젤에 나온 데이비드 호크니의 초상화 작품입니다.
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부분 누군지 알아 차리 셨을 겁니다.
애드 시런은 이 초상화에 대한 인터뷰에서 "나의 출생지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고향과 동일하기 때문에 나는 어려서부터 호크니의 작품을 많이 보고 자라서 무척 익숙한 작가다. 그리고 이 작품을 위해 작가와 직접 대면을 했고 몇 시간 동안 포즈를 취하게 한 후 호크니가 직접 그림을 그렸다"라고 증언을 한 적이 있으니 이 작품 역시 "Made by the artist himself"인 게 증명되었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미술계에서는 브리티쉬 팝 아트의 범주로 분류하곤 하는데, 이 팝 아트의 대부격인 앤디 워홀은 아예 대놓고 Factory란 표현을 쓰기까지 했죠. 그 역시 당당하게 조수의 존재를 밝혔던 거장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그의 영향 때문인지 생존 작가 중 최고가를 차지하고 있는 제프 쿤스도 당당히 자신의 Factory 존재 여부를 세상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귀여운 스테인리스 풍선 토끼가 바로 전설의 주인공입니다.
물론 제프 쿤스는 자신의 작품 가치에 대해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끊임없이 립서비스를 날립니다.
"자신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실에서 보낸다. 모든 작품의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자신의 감수를 받아서 제작된다 " 등등 말이죠.
어쨌건 데미언 허스트나 제프 쿤스는 당당하게 본인들의 작품은 자신의 손이 아닌 조수의 손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밝히고 있으며, 수많은 논란이 있긴 하지만 그들 작품의 엄청난 가격표가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은 바로 두 작가가 맞다고 인정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생존 작가 최고가 기록 보유자 두 명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상위 3명 중 한 명인 나머지 한분은 어떨까요?
나머지 한 자리를 차지한 작가는 다름 아닌 독일의 게르하르트 리히터인데요, 이 작가 역시 조수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대가의 조수였던 Andreas Schoen을 통해 우리는 리히터의 그림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금년 초에 개봉했던 영화 <작가 미상>에 나오는 그림들을 바로 이 Andreas Schoen이 그렸기 때문이죠.
영화를 보신 분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리히터 풍의 작품을 통해서 아마도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초기 작품들에 대해 좀 더 많은 이해를 하실 수 있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 영화 작가 미상에 관한 지난 글 보기 https://brunch.co.kr/@milanku205/353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조수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2012년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 필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사실 리히터나 호크니의 조수들은 좀 더 대가에게 예술을 배우고자 하는 문하생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와 조수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해드렸는데, 만약 여러분 스스로가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하고 계신다든지 또는 한번 고민을 해보고 싶으시다면 이 질문을 본인에게 던져 보시죠.
"만일 여러분이 어떤 작품의 구입을 앞두고 있는데, 그 작품의 완성이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작가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도 여전히 그 작품을 구입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정답은 이 질문에 대한 여러분 내면의 솔직한 목소리에 담겨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