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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Jul 07. 2020

Beethoven과 영화들

이열치열이란 말처럼, 기온이 올라가는 계절에 

이상하게 열기가 많이 발산되는 음악들에 손이 가곤 합니다.


갑자기 무슨 충동이 생긴 것인지, 

클래식 음악 전문 스트리밍 앱인 IDAGIO에서 베토벤 현악 4중주와 교향곡들을 

잔뜩 다운로드하여서 듣기 시작했습니다. 


베토벤이 만들어 내는 열기로 이 뜨거운 여름을 이겨보리라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닌데, 

듣다 보니 점점 교향곡에서 협주곡으로 그리고 피아노 소나타로 계속 넘어가게 됩니다.


열심히 듣던 중에, 어떤 선율들이 등장하면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영화의 이미지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현악 4중주 1번> 2악장은

 영화 <The Lobster>에서 여자 주인공을 연기한 레이철 바이스의 

또박또박한 British 영어의 악센트를 떠오르게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sGyErqEIgQ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서 카프카의 소설들을 연상하게 만드는데,


사랑이란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마저 시스템 속에 매몰되며 파괴되어지는 모습과,

이런 사회적 굴레 속의 사랑을 피해 도망친 

그래서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사람들 사이에 

몰래 피어나는 진정한 사랑의 아이러니 때문인 듯 싶습니다.


마치 자신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도 모르고 재판에 넘겨지는 <심판>의 K나 

어느 날 눈을 뜨는 순간 자신이 벌레로 변하게 된 사실을 발견한 <변신>의 잠자처럼 

영화 <더 랍스터>에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주인공들이 

한 호텔에 강제적으로 수용되고 

주어진 며칠 안에 자신의 파트너를 구하라는 강요를 받게 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동물로 변하게 되는데,

이러한 무척이나 비이성적이고 모호한 

영화의 내러티브와 서사구조를 뛰어넘는 

감독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영상이 기억에 남습니다.


정치와 사회가 만들어 낸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사랑'이란 단어를 부정하며 숲으로 들어간 남녀 주인공들은 

사랑을 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사랑에 빠지는 아이러니를 만들게 되고, 

아무도 모르는 그들만의 사랑을 표현하는 몸짓을 만들어 내며 

숲의 삶을 이어가는데


 영화는 이렇듯 사랑이란 단어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관념의 이미지들을

 두 남녀의 기름기 빠진 연기를 통해

독특한 선율의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번 2악장 위로  하나씩 날려 보내고 있습니다.




<교향곡 9번>은 아마도 전 우주에 걸쳐 가장 위대하게 "자유와 우정, 그리고 정의"를 

외치고 있는 곡이 아닐까 싶은데, 스탠리 큐브릭은 이런 상황을 완전 반대로 몰고 갑니다.


그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교향곡 9번>은 

자유와 환희를 외치는 대신,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감독의 의도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억압하는 그러한 시도는 결코 성공되어서도 

그리고 성공할 수도 없다는 것을 반어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vq6sTNna2Fw




2차 대전이 끝난 후 재개된 바이로이트 축제의 첫 곡은 비탄에 빠져있는 유럽인에게 

자유와 우정 그리고 환희를 알리기 위한  <베토벤 교향곡 9번>으로 선곡됩니다.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한 이 공연은 실황 녹음으로 살아남아서 

지금까지도 가장 대표적인 <교향곡 9번> 명음반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dlaOJKfUlY 

  




<교향곡 7번>의 2악장은 4악장이 묘사하고 있는 위대한 승리의 느낌을 배가하기 위한 

극적인 대비를 보여주는 음악이죠. 

슬픔과 비애가 서서히 자라나며 패배의 처절함이 묻어 나오는 이 음악이

영화 <King's Speech>의 가장 하이라이트인

 'Speaking Unto Nations' 장면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나라가 빠진 절체절명의 위기에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줄 연설을 해야 할 국왕,

 그러나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하려고만 하면 말문이 막히는 묘하고 답답한 상황,

많은 노력 끝에 그는 마이크 앞에 서고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그는 결국 연설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9UktXoM6Zw



극적인 환희로 몰고 가는 4악장의 도취도 한번 느껴 보시죠.


<교향곡 7번>이 품고 있는 디오니소스적인 면모를 가장 잘 살리고 있는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LkZvsp62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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