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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Jul 17. 2020

코로나 시대의 언택트 미술 시장

<Show must go on>


코로나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2020년 6월 말 세계적인 경매회사인 소더비에서는 새로운 미술 경매 시장의 방향을 제시할 빅 이벤트가 열렸는데, 메이저 업체에 의한 미술 경매가 최초로 실시간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소더비의 런던 Headquarter를 중심으로 뉴욕, 파리, 홍콩 경매소를 연결해 4원 생중계 방식으로 이루어진 이번 경매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시장을 대비하기 위해 경매회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선정한 스타 상품들 덕택에 기대 이상의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코로나 유행 이후, 세상의 많은 것들이 바뀌어 나가는 것처럼 미술시장도 변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것인데,


갑자기 이 부분에서 퀸의 노래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Show must go on>


https://www.youtube.com/watch?v=ExdEr67-JPw

영화 <무랑루즈> Jim Broadbent와 Nicole Kidman


총 낙찰금액이 363.2 million USD에 달했다고 하며, 이날 경매에서 최고가로 낙찰된 작품은 현대 미술 시장에서 최고의 스타 작가로 인정받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1981년작 <Triptych Inspired by the Oresteia of Aeschylus>였습니다.



Francis Bacon,Triptych Inspired by the Oresteia of Aeschylus, 1981


그리스 비극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이 작품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데, 우선 작품의 소재가 되고 있는 아이스퀼로스의 희극에 관해 먼저 살펴볼까 합니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아이스퀼로스의 희곡으로 트로이 전쟁을 이끌었던 그리스 총사령관이자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논과 그의 집안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가족 간의 복수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3부작은, 트로이 전쟁을 위해 딸 이피게니아를 희생시킨 남편 아가멤논과 딸에 대한 복수를 위해 남편을 살해하는 부인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이야기를 담은 1부 <아가멤논>과 이 비극의 씨앗이 가족 간의 복수로 이어져 엄마를 살해하는 딸 엘렉트라와 아들 오레스테스를 둘러싼 2부 <제주를 받치는 여인들-코이포로이>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을 종결하는 아들 오레스테스에 대한 아테네의 배심원들이 중심이 되는 재판 내용을 담고 있는 3부 <자비로운 여신들-에우메니데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와 2부에서는 복수와 정의 실현이라는 문제를 개인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었다면 3부에서는 신들이 개입해서 재판이 개시되고 진행되다가 아테네의 민주적인 배심원 재판을 통해 무죄를 선고하는, 즉 법에 의한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아테네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정당성 선포와 같은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몇 년전 국립극장에서 공연했던 중국 4대 비극으로 알려진 <조 씨 고아> 역시 위의 그리스 비극과 유사한 끝없이 피를 부르는 복수의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중국의 비극은, 끝없이 반복되는 복수의 과정에 등장하는 고전적 계급 체제하에서 필수적 인간상인 충성, 의리 그리고 희생 등을 통해 다자간의 관계에서 한쪽 편만의 정의를 구현해나가는 모습을 주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면, 그리스의 비극은 시민 체제(정치 시스템)를 통해 저주와 복수의 지속적인 굴레를 끊고자 하는 개인의 문제에 관한 국가의 개입에, 즉 객관적인 판단에 관한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이 그리스 비극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프란시스 베이컨을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로 끌어올린 그의 대표작 1944년의 <Three Studis for Figures at the base of a Crucifixion> 역시 이 3부작에 등장하는 복수의 여신들을 소재로 완성이 되고 있습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비극의 전체 스토리나 비극이 지향하고 있는 주제를 그림을 통해 재현하고 있다기보다는 비극이 가지고 있는 비극성의 본질인 폭력이라는 비이성적 인간 행위들을 통해 발생하는 심리적인 상황들, 다시 말해서  개별 주체들이 폭력적 상황을 통해 느끼게 되는 분노와 좌절 등의 심리 상태를 시각화하고 있습니다.


작가 스스로가 밝힌 그림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은데


"to create images of the sensations that some of the episodes created inside me … an image of the effect that was produced inside me."


이렇듯 작가가 삶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고통의 경험들이 그리스 비극이 만들어낸 불씨로 인해 거대한 빛과 열의 태양처럼 재탄생하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요?


<오레스테이아 3부작>에 등장하는 코러스의 다음과 같은 부분이 이 비극을 읽고 난 프란시스 베이컨의 심리적 상태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 위대한 예술품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 과정에 대한 좋은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깨우침엔 반드시 고통이 따르는 법이니,

심지어 우리가 잠들어 있을 때조차도

잊을 수 없는 고통이, 우리 가슴속으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져 내리네.

그리고 지혜란

우리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원하지 않아도

신들의 위대한 은총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네"





미술뿐 아니라 음악에 있어서도 이 비극의 중심이 되는 전설에 기반을 둔 작품들이 많은데,


우선 글룩의 오페라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가 있습니다.


아버지 아가멤논에 의해 희생양으로 선택된 이피게니아의 이야기를 담은 오페라입니다.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로 완성 글룩 음악의 양식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아버지 아가멤논에 의해 제물로 희생될 운명이었던 이피게니아는 디아나 여신의 도움을 통해 타우리스로 와서 여신의 신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다시 남동생이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는 비극적인 꿈을 꾸고, 한편 신탁에 의해 타우리스까지 오게 된 남동생 오레스테스는 타우리스에서 생포되어 디아나 여신의 제물로 바쳐질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이렇듯 비극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운명적으로 재회하게 된 남매가 결국 서로의 정체를 알게 되고, 이피게니아는 동생의 행동을 사랑으로 용서하며, 여신들의 도움으로 오레스테스는 죄를 사함 받고  그들은 함께 고향으로 향하게 됩니다.


오페라의 1막 시작 부분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fkf1Tesj2I


글룩은 또한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아>도 작곡을 해서  이 전설 또는 신화에 바탕을 둔 2편의 오페라를 남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비극에 바탕을 둔 오페라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은  R.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엘렉트라>는 소포클레스의 동명 비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오레스테이아 3부작>과 동일한 신화 내지 전설을 바탕으로 쓰인 비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기 어린 인간 행동의 폭력성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거칠고 거대한 관현악이 특징적인 오페라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q1qfG0r4LE


이야기는 왕비인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남편인 아가멤논을 죽이고 난 이후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복수를 위해 온갖 수모를 견디고 있는 엘렉트라와 여동생 크리소테미스 그리고 엄마인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등장해서 서로 간의 원한과 고통 분노 그리고 두려움과 복수에 대한 암시들이 진행되다가, 무대에서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내려가며 동시에 오레스테가 나그네의 모습으로 등장해서 엘렉트라와 재회를 하며, 끝내 복수를 하고 마는 부분까지 단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복잡한 심리묘사가 음악적으로 독특하게 (거대하고 폭력적인 불협화음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을 단막의 구성 속에서 점차 발전시켜나가며 클라이맥스를 이루게 하는 구조적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입니다.  공연 전 부분 동안 무대에 등장해서 지속적으로 노래를 해야 하는 엘렉트라 역을 맡은 여가수에 의해 공연의 성공이 좌우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소프라노들에게는 쉽지 않은 오페라인 탓에 인기나 인지도에 비해서 실제 실황 공연이 많지는 않습니다.


  살로메와 더불어 리하르트 바그너의 영향이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며, 이 작품보다  2년 정도 늦게 등장하는 유쾌하고 가벼운 관현악이 주를 이루는, 작곡가 본인의 또 다른 오페라 <장미의 기사>와 비교해 보면 음악적 양식의 거리감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D7abQTy71I









이렇듯 그리스 비극들은 많은 미술 작품과 오페라 등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재미있게도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 역시 그리스 비극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영화 <킬링 디어>입니다.



<더 랍스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리스 출신의 요리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같은 그리스 출신의 각본가인 에프티미스 필리푸(더 랍스터에서도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와 공동 대본 작업을 통해 탄생시킨 영화로,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과 동일한 신화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아>에서 영감을 받아서 기획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열린 결말과 비논리적인 캐릭터 성격으로 인해 해석의 갈래 역시 상당히 다양한 편이죠.


보는 관점에 따라서 영화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하게 될 텐데, 많은 경우 이 영화를 전작 랍스터에서 처럼 시스템 속에 함몰되어 가는 가족이라는 구조, 그 중심에 존재한다고 믿었던 사랑이라는 핵심이 사라진 이후 가족이라는 시스템을 유지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희생과 그 근간에 놓여 있는 이기심을 중심으로 살펴보거나 또는  인간이 삶 속에서 저지르고 있는 죄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벌  또는 사함에 관한 선악의 균형 등을 중심으로 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관점에서 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지만, 그렇다면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아>가 등장할 여지가 많이 좁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단순하게, 계급의 구조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서로 간의 이해상충에 관한 다시 말해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큰 비극을 탄생시키고 있는지에 관한 거대한 알레고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가족 안에 벌어지는 일이지만 이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기호들을 확장시켜 나간다면, 현재 사회가 안고 있는 정치적 모순, 사회적 모순 이런 다양한 부분에 대입이 가능한 그런 이야기인 것이죠.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란 가면을 쓰고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력을 둘러싼 비합리적 판단과 행위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비극적 결과 등이 영화가 보여주는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사건의 진행과 그로 인한 결론들을 복사 확대 재생하고 있는 모습들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변화되는 사회적 이슈에서 시작하다 보니 그리스 비극의 현대적 재해석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모든 행위나 사고들의 핵심에 놓여 있는 정수들은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변함에도 불구하고  그 근본 원리에 있어서는 시공을 뛰어넘는 근원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그 근원이 무엇인지를 찾고 고민해 보는 것이야말로, 코로나 이후에 새롭게 변화할 사회의 모습에 대처하기 위한 가장 기본 처방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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