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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Aug 22. 2020

위대한 20세기 지휘자들 - 4

현역 지휘자 100명이 뽑은 BBC Music 기사인 "나에게 가장 영감을 준 지휘자들" 4번째  편입니다.


독창적인 음악 해석과 유연한 지휘 폼을 통해 동료나 후배들에게 영감을 준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고, 젊은 지휘자들의 멘토 역할을 많이 했던 번스타인이 젊은 소장파들의 응원에 힘입어 2번째로 많은 지지를 얻고 있었는데 이번 편에서는 그럼 이들 뒤를 이어 3번째로 많은 지지를 받은 지휘자는 누구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암 투병을 이겨내고 루체른 페스티벌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린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지휘자이기도 하고, 클라이버와 번스타인은 실제 연주회장에서 만난 경험이 없지만 아바도는 베를린 필과의 정기연주회를 베를린에서 본 기억도 있습니다.


제가 본 연주는 실황 녹음 음반으로 출시되기도 한 슈만의 <괴테 파우스트의 장면으로부터>입니다.



곡의 난이도는 높고 대중적인 인기는 낮은 편이라 많이 연주되는 곡은 아닙니다. 위의 커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10명의 독창자가 필요한데 테어펠이 맡은 파우스트 역을 제외하면 독창자들의 역할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가장 전성기의 아바도와 베를린 필 그리고 DG를 꺾고 새로운 스타 지휘자와 계약에 성공한 당시 Sony의 전폭적인 투자가 없었다면 성사되기 힘든 기획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연주를 마치고 청중들의 박수를 받는 동안 아바도의 태도가 아마도 그의 진정한 모습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지 않나 싶은데, 엄청난 거구인 테어펠 뒤에 서서 테어펠이 열광적인 박수를 받는 내내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마치 자신의 아들을 보는 것처럼 대견해하는 진심 어린 거장의 모습은 클래식 음악이 연주되는 무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아바도가 많은 지휘자들의 지지를 받은 이유 역시 바로 이런 그의 인간미 넘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밀라노의 명문 음악가 출신으로 밀라노 음악원을 마치고 빈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지휘 수업을 받기 시작한 그는 일찍 거장들의 눈에 들게 됩니다. 1965년 베를린에서 카라얀의 주목을 받고 이듬해인 1966년 잘츠부르크 음악회에서 빈필과 함께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을 연주합니다. 그리고 2년 뒤 잘츠부르크에서 롯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프리미어 공연을 담당하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이듬해인 1969년 라 스칼라를 시작으로 70년대  London Symphony Orchestra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이후 많은 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빈 국립오페라의 음악감독 그리고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를 거쳐 암 투병을 거치고 루체른에 안착하게 될 때까지 20세기의 어느 지휘자보다 다양하고 에너지 넘치는 활동을 펼쳐온 지휘자입니다. 젊은 음악가들을 모아서 새로운 오케스트라를 조직하는 등 후진 양성에도 많은 힘을 쏟았고, 루이지 노노, 리게티, 베버른, 쇤베르크 등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새로운 음악어법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잊힌 곡들인 슈베르트의 <피에라브라스> 무소르그스키의 <호반시치나> 롯시니의 <렝스의 이상한 여행> 등을 재발굴하는 역량을 보여주었던 그는 이런 열정적인 행동과 달리 상당히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빈에서 만난 지휘 공부를 하던 한국 학생으로부터 그의 리허설 참가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리허설 내내 오케스트라를 향해 별 말이 없이 조용히 부분 부분 연습을 해나가며, 자신의 어시스트들에게 각 부분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는 등 기존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들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에 많이 놀랐었는데, 팬들의 사인 요청 등은 아주 잘 들어주는 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그의 얼굴이 등장하는 엽서를 사서 사인을 하나 받아서 간직하고 있었는데 꼼꼼치 못한 성격 탓에 어디 숨어 있는지 도저히 찾지를 못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지적인 느낌이 강한 지휘자이지만 이태리 출신인 본능은 어디 가는 게 아니니 로시니 등 경쾌한 리듬감이 요구되는 음악에 탁월한 편이며, 


https://www.youtube.com/watch?v=pxOUaXTAbIU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구성을 선호하는 덕에 모차르트의 음악에도 아주 훌륭한 해석을 보여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J0hogH5wgw


하지만 그가 가진 장점들이 가장 잘 드러나는 음악은 말러라고 생각되는 데, 탁월한 템포에 대한 감각을 바탕으로 말러 음악 속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성격과 다채로운 요소들을 잘 펼쳐내고 있습니다.


많은 평론가들은 그가 지휘한 몇 번의 3번과 9번 등을 많이 꼽는데, 그 역시 뛰어난 연주이지만 젊은 시절의 녹음인 70년대 빈필 그리고 프리데리카 폰 슈타테와 함께 연주한 <교향곡 4번>이 제가 가장 아끼는 아바도의 말러 음반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HYdlFPd_u0  


솔직히 연주의 수준이나 음악적 해석 이런 이유보다는 제가 제일 처음 듣게 된 아바도가 지휘한 말러 음악인 점이라는 감정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지만, 말러의 <교향곡 4번> 음반 중에는 아직도 최고의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바도를 선택한 주요 지휘자들을 살펴보면,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가 푸르트벵글러, 카라얀과 함께 아바도를 꼽았고, 리카르도 샤이가 클라이버, 토스카니니와 함께 그리고 파비오 비온디가 가디너 등과 아바도를 선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쉬케나지는 뭔가 자기보다 위 또는 동세대의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를 그냥 뽑은 것 아닌 가 싶고, 리카르도 샤이는 아바도와의 관계 (루체른을 이어받았죠)가 이유일 텐데 파비오 비온디는 색 다르게 다가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LP7c0o1Xq0


자신의 연주 스타일은 아주 개성 강한 그래서 기존의 해석과 완연히 다른 색다른 음악을 보여주는 비온디가 일견으로 봤을 때 가장 중성적인 음악적 지향점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아바도와 가디너를 좋아한다는 것을 보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나와 다른 지향점을 가진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바도는 악보 없이 암보로 지휘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데, 이에 대해서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 I feel more secure without a score. Communication with the orchestra is easier"


교향악단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그의 이런 모습이 아마도 베를린 필 단원들이 카라얀 사후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아바도를 자신들의 상임지휘자로 뽑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새로운 시대의 리더의 덕목으로 그 중요성이 점차 높아진 "Communication"에 대한 그의 이런 이해가 결국 그가 음악계에 있어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 개척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핵심 요소 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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