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동안 뮤지컬 영화 <캣츠>를 2번이나 연달아 보게 되었습니다.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워낙 예고편부터 악평이 많았고, 영화 출시 후 평점 사이트들의 평가도 유래 없이 박했으며, 그러다 보니 흥행에도 정말 실패한 영화를 왜? 하고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더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킹스 스피치>와 <레 미제라블> 그리고 <데니쉬 걸>등을 연출한 톰 후퍼가 감독을 맡은 <캣츠>는 어떤 의미에서는 일반적인 평가처럼 전혀 볼 필요 없는 재미없는 뮤지컬 영화이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저처럼 선입견에 이 영화의 즐거움을 놓칠뻔한 사람들에게는) 꼭 봐야 할 그것도 몇 번을 다시 보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워낙 유명한 뮤지컬이었기에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이 많은 <캣츠> 팬들을 설레게 만들었겠지만, 냉정하게 판단해 보면 <캣츠>는 비슷한 무게를 가진 여타 뮤지컬 작품들과 비교하면 드라마적인 요소가 많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처음부터 원작 등이 가진 탄탄한 서사구조를 바탕으로 선율을 붙여나간 다른 유명 뮤지컬 작품들과 달리, 이 <캣츠>는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자신이 좋아했던 T.S. Eliot의 시를 가지고 만들어 본 노래들을 보고 기획이 시작되어 스토리가 만들어지며 뮤지컬 작업이 시작되었으니 스토리의 전개를 바탕으로 음악적인 감동을 더해주는 일반적인 뮤지컬 성공 사례와는 거리가 좀 멀었던 것이죠. 그렇다 보니 영화로 바뀌었을 때 실제 공연장에서 느끼던 감동 (전체적인 공연의 수준이 떨어지더라도 실황에서 보면 그 감동이 화면으로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르죠)을 전달하지 못한다면 영화적 즐거움을 따로 찾기가 쉽지 않은 태생적 약점을 내포한 뮤지컬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안타깝게도 영화는 무대 위의 감동을 화면으로 전환하는 데 실패하고 흥행에서의 대참사뿐 아니라 영화평에 있어서도 더 이상 나쁠 수 없는 나락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캣츠를 연출한 톰 후퍼는 그의 이전 뮤지컬 영화인 <레 미제라블>에서는 원작에 바탕을 둔 탄탄한 스토리를 영화적 내러티브로 완벽하게 옮기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 영화는 대성공을 거두지만 뮤지컬에 있어서 일부 세부적인 요소들 (주연들의 보컬 퀄리티 등)에 관해서는 비판이 있어 왔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번 <캣츠>에서는 각 장면 장면의 음악과 시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좀 더 디테일하게 드러내는 데 연출력을 집중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들이 뮤지컬 <캣츠>를 좋아하는 전 세계 많은 캣츠 팬들에게 반감을 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다양한 이유로 악평들을 쏟아내지만 그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보면 대략 이런 부분들이 가장 반감을 사고 있는 것 같은데, 대부분 실황 공연장에서 많은 인기를 끄는 캐릭터는 럼텀터거(엘비스 스타일의 매력적인 엉덩이춤을 선보이는)인데 영화에서는 시대에 맞게 힙합 스타일로 변화시키면서 원 무대에서 보여주던 효과만큼의 반응을 못 끌어내는 것 같고, 런던의 로열 발레단 수석 무용수를 캐스팅한 까닭에 그녀에 맞는 새로운 노래도 만들어 넣고, 극의 진행을 이끌어 나가는 주연처럼 내세우고 있는데 원체 영화의 서사가 약하다 보니, 귀여운 아기 고양이 같은 이 새로운 역할 역시 관객들에게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하는 듯합니다. 또 영화의 흥행을 위해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제임스 코돈과 테일러 스위프트 등을 출연시키는 데, 그들이 출연하는 장면이 전체 흐름을 끊어먹어서 빠른 템포로 다양한 볼거리를 전해주며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던 무대와 달리 영화에서는 스토리 진행이 너무 느려지는 느낌을 주곤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무대와 달리 영화를 통해서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들 역시 적지 않은데,
이 뮤지컬에 담긴 로이드 웨버의 음악을 살펴보면, 뮤지컬 역사에서 중요한 지점들을 창조해 낸 다양한 요소들 (카바레 스타일, 할리우드 황금기의 뮤지컬들이 선보이 던 탭댄스와 군무들)과 또 이 뮤지컬이 작곡될 당시 대중음악을 선도하던 댄스곡 기반의 팝뮤직적 요소들, 그리고 일반적으로 당시까지 뮤지컬에서 잘 사용되지 않던 클래식 음악의 요소들( 푸치니를 닮은 선율과 발레 선율)을 적절히 섞고 있는 특징을 찾을 수 있는데, 이런 각 요소들이 무대에서는 공간의 제약 때문에 제한적으로 표현되었다면 그런 한계에서 자유로운 영화에서는 음악에 맞는 최적화된 배경을 삽입하고 이를 통해 노래의 가사로 사용되고 있는 T.S. 엘리엇의 시에 대한 감상을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부분이 실제 무대에서 <캣츠>를 여러 번 보았음에도 언어적인 장벽과 실황을 보게 될 경우 각 장면의 모든 디테일을 챙길 수 없었던 물리적 한계 등으로 전체적인 이해에 아쉬움이 남은 사람들에게(저를 포함해서) 아주 좋은 참고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주디 덴치가 맡은 '듀터로너미'의 대사 부분이 아주 새롭게 다가왔는데, '듀터로너미'는 뮤지컬에서는 보통 남성이 담당하는 역이지만 영화에서는 주디 덴치가 맡아서 뮤지컬의 베이스가 되고 있는 T.S. 엘리엇의 시집 <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의 첫 번째 시와 마지막 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튜터로너미'는 극 중에서는 젤리클 고양이들 중 가장 원로로 많은 고양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고, 극의 중심이 되는 노래 경연에서 심사위원을 맡고 있기도 하는데, 이 듀터로너미가 시집의 서두와 말미에 나와서 시작과 끝을 서로 연결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The Naming of Cats"와 "The Ad-dressing of Cats"를 노래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던 것이죠.
서두가 많이 길었는데, 다음 편에서는 '듀터로노미'의 노래에 담긴 의미 즉 자신의 대자들에게 써준 편지에 이 동화 같은 시들을 담아 보낸 T.S. 엘리엇의 마음속에 과연 어떤 생각들이 들어있었는지를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