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내러티브를 풍성하게 만드는 예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본다'라는 시각적 인식 행위가 어느 틈엔가 너무나 흔한 단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철학에서 예술로 그리고 일상의 삶을 거쳐 다양한 사회적 행위에 이르기 까지, 뭔가 많은 뜻을 함유할 것 같은 이 단어가 가진 매력에 점차 관성이 붙기 시작하며 이제는 그 의미에 대한 진정한 숙고도 없이, 때가 되면 찾아오는 군고구마나 붕어빵처럼 그저 흔해져 버린 체계 속에 묻혀 버린 개념이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톰 포드의 두 번째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는 바로 이런 지점에 관한 고민들이 이미지로 변신하는 과정을 통해 아주 오싹한 스릴러물을 세련된 화면으로 정화시켜 스크린에 올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2017년 개봉했던 이 영화를 현재는 넷플릭스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 영리한 톰 포드
영화는 외형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갤러리 대표와 인생의 실패자로 여겨지는 그녀의 전남편을 대비시키며, 전 남편이 보내온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의 이야기를 따라 우리의 삶에 배신과 복수가 가지고 있는 의미들이 얼마나 상대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알레고리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목인 "야행성 동물들"이 불면증에 시달리는 여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묘사하는 한편 동시에 '보는 행위' 즉 '시각적 인식'이 상황에 따라 상대성을 갖게 된다는 인식의 한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감독의 미학적 욕구는 영화 속에 다양한 예술작품 및 예술 기법들을 은유적 이미지들로 등장시키며, 스토리적으로도 충분히 복잡한 영화의 내러티브에 추상적인 인상을 듬뿍 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영리한'이란 수식어를 제가 붙였을까요?
영화의 바탕이 된 소설 <토니와 수잔>에서 여주인공 수잔의 직업은 영문과 교수입니다. 성공한 중산층의 역할을 화면으로 치환시킨다면 감독은 훨씬 스물스물한 소설 속의 소설(폭력적인)에 집중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톰 포드는 자신의 장기인 스타일을 버리고 싶지 않았겠죠. 그래서 극강의 부를 자랑하는 LA의 부자 갤러리 오너를 등장시킵니다. 부자들이 가질 수 있는 많은 타이틀 중에 특히 갤러리 오너인 것은 그래야만 영화의 내러티브를 미술작품을 통해 풍부하게 꾸며갈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요,
이런 다양한 의도를 가지고 주인공의 배경을 바꾸고 나니, 영화는 다음과 같은 아주 독창적인 하지만 그로테스크한 오프닝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 Junk Culture
히치콕 스타일의 음악에 맞춰 비만의 여성 댄서들이 춤을 추는 장면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오프닝은 슬로 모션으로 비대한 여성의 몸이 출렁거리는 것을 아주 세밀하게 잡아 내고 있습니다. 이 오프닝은 관객에 따라 장면에 대한 반응의 진폭이 상당히 과하게 차이가 날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아니 도대체 왜 저런 몸을 가진 여성들을 전라의 상태로 만들어서 퍼포먼스를 하게 하는 걸까?'
아마도 많은 분들은 이런 질문을 머릿속으로 떠올리셨을 텐데요, 이 씬은 샘 멘데스 감독이 연출한 <아메리칸 뷰티>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아내와 딸에게 인생의 패배자로 여겨지는 주인공 레스터의 판타지 속에 등장하는 아메리칸 뷰티 ,
치어리더인 딸을 보기 위해 아내와 찾아간 농구 경기에서 치어리더들 가운데 가장 중앙에서 미소를 보내 던 딸의 절친 안젤라는 레스터의 머릿속에서 치어리더복을 입은 응원단이 아닌 장미에 뒤덮인 채 중년 남성을 아슬아슬하게 바라보는 섹시한 여성으로 변하고 있는데요, 이렇듯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치어리더의 본질은 자본주의와 남성 위주의 사회 체제 속에서 젊고 아름다운 성적 대상물로 대치(代置)되고 있습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엽기적인 미디어 아트와 더불어 갤러리의 중앙에는 모델을 날 것(?) 그대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톰 포드는 마치 관객들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들이 바라보는 치어리더는 누구인가? 미국을 대표하는 응원과 퍼레이드의 주인공들. 그녀들은 단지 당신들의 판타지 속에 등장하는 성적 대상물일 뿐인 것인가? 그렇다면 세월속에 변해버린 그녀들의 모습을 한번 바라보라. 그녀들이 지닌 인간으로서의 본질은 변한 것이 없는데, 당신들의 판타지속에서는 왜 이전과 다르게 추하게 느껴지는 것인가?"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이 오프닝 장면이 “유럽이 생각하는 미국, 즉 과장되고, 뚱뚱하고, 나이 든 모습을 표현했다" 고 밝히고 있습니다.
성대하게 열린 전시회 오프닝의 축하 파티에서 수잔의 친구 카를로스(마이클 쉰)는 이번 작품들은 현대 문화의 본질인 Junk Culture가 잘 드러난 작품이라며 칭찬을 하지만, 수잔은 "Total Junk(완전한 쓰레기들)"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그녀의 인생에서도 무언가가 빠져있는 것일까요?
야행성 동물은 적은 빛의 양에도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는데, 하지만 그들이 보는 것은 대상의 형체에 국한되어 있으며 대상이 갖는 색채에 대한 구분 능력은 상당히 떨어진다고 합니다. 주인공 수잔은 상업적인 가치가 뛰어난 예술을 찾는 안목은 뛰어나지만, 예술이 가진 예술성 그 자체를 투시하는 능력은 마치 색채를 구분 못하는 야행성 동물처럼 떨어지는 것일까요?
전시장에서 미디어 아트를 바라보는 수잔의 눈은 불면으로 충혈되어 대낮 같은 밝음에 초점을 정확히 맞추지 못하고 눈부셔합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수잔을 '야행성 동물'이라고 부른 전남편의 의도는 잠을 못 자는 수잔의 신경증을 드러내고 싶은 것일까요 아니면 사물의 외형(지위, 부 등으로 보이는 사회적 계급)에는 예민하지만 사물이 가진 본질 (인간성) 등에는 취약한 그녀의 약한 시력을 암시하는 것일까요? 또는 그 모두일까요?
- 기호로 사용된 아트 작품과 아트 기법들
카메라는 전시회 오프닝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수잔의 차를 따라 움직이며 수잔의 현재 상황과 심리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 Reflection
빛이 반사돼서 만들어진 이미지(잔영)는 미술에서 종종 사회와 시대를 비추는 간접적인 표현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어지럽게 이어지는 도시의 심야 도로 위 불빛
수잔의 거대한 저택 현관은 미러링 처리가 된 스테인리스 재질의 모던한 출입구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왠지 그와 같은 부의 상징에 반사된 불빛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눈을 가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적은 빛에 익숙한 야행성 동물들의 눈이 강한 빛에 취약하듯 수잔 역시 이 상황이 익숙지 않습니다.
톰 포드는 주인공의 시선이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따라가는 장면들을 통해 관객 또한 주인공의 시선과 동일한 시각적 경험을 맞보게 하고 있는데, 반사된 빛에 눈부셔하는 그녀의 모습은 영화가 앞으로 보여줄 수잔의 캐릭터에 대한 간접적인 묘사입니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자신이 사랑한다고 믿었던 것을 버리고 물질적인 부를 선택하는 그녀는 결국 형태만 구분할 뿐 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야행성 동물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2. 가장 비싼 작가
반사된 헤드라이트에 초점을 잃은 시선이 어두운 저택의 내부를 흩고 지나갑니다.
수영장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이 조각 작품은 바로 현존 작가 중 가장 비싼 작품값을 기록하고 있는 제프 쿤스의 <Balloon Dog>입니다.
<Balloon Dog>는 2013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5천8백만 불(한화 약 630억)에 낙찰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프 쿤스는 이렇듯 비싸기도 하지만 추상적인 형태를 지닌 많은 현대미술작품에 비해 풍선아트에서 영감을 받은 형태의 강아지, 토끼 모양을 갖추고 있어서 대중적인 인지도도 꽤 높은 편이니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상징하기에는 아주 좋은 예인 것 같습니다.
3. 개념미술
톰 포드는 패션시장에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을 선호했던 디자이너입니다. 그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던 기간 동안 보여준 이미지들은 이런 그의 모습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는데요
구찌가 젊음과 성적인 매력을 활용한다는 점을 이처럼 분명하게 보여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톰 포드의 취향은 기호나 문자 등의 표현양식을 통해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 내용과 제작 이념을 전면에 보여주는 개념미술과 딱 들어맞을 것 같은데요 이번 영화에서도 중요한 복선으로 개념미술 작품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복수를 뜻하는 Revenge의 글자가 마치 눈물을 흘리듯 번져 내리고 있는 작품을 바라보는 장면입니다. 과연 무엇에 대한 그리고 누구를 향한 Revenge가 될까요?
이 영화는 이렇듯 감독의 취향을 반영한 독특하고 그로테스크한 화면 구성을 통해 세련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동시에 이런 이미지들이 간혹 너무 정적으로 흐르는 문제도 생겨납니다. 하지만 수잔의 머릿속에서 상상되는 전남편의 소설 내용이 가져오는 긴장감이 현실 속의 장면에서 생겨나는 정적인 느낌을 상쇄해주는 좋은 균형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소설 속 장면의 잔혹스러운 면을 정화하기 위해 오히려 더 정적인 이미지들을 사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번째 작품이었던 <싱글맨>에서는 건축을 전공한 자신의 경력을 바탕으로 아주 감성적인 화면을 보여주곤 했었는데요, 이번 <녹터널 애니멀스>에서는 그런 감성적이고 세련된 화면 구성에 더해 아주 영리하게 다양한 기호들을 삽입시켜서 영화의 내러티브를 치밀하게 완성시켜 나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다음 영화에서는 어떤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를 화면에 그려낼 지 사뭇 기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