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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Jan 17. 2021

퀸인 줄 알았는데 오페라가 왜 나와?

퀸 <It's a hard life> 

2021년의 시작과 함께 몰려든 한파 때문에 코로나로 움츠러든 몸과 마음이 더 뻣뻣하게 굳어지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게으름을 잔뜩 부리고 싶은 일요일 오전, 방 안의 공기마저 차갑게 식히고 있는 날씨를 핑계 삼아 휴대폰을 꼼지락거리며, 좀 더 누워있어야 할 이유를 찾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퀸의 멜로디들이 저도 모르게 떠오릅니다. 


유튜브로 퀸의 음악 중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Another one bites the dust>를 검색해서 듣기 시작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Y0WxgSXdEE    


신나는 댄스풍의 이 노래는 퀸의 베이시스트인 존 디콘이 쓴 때문인지, 리드미컬한 베이스 라인이 오프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트감 넘치는 리듬이 이불속에 누워있는 제 몸에 조금씩 활기를 불어넣어주는지, 저도 모르게 발가락들이 드럼 소리를 따라 꼼지락 거리고 있네요.


유튜브가 으래 그렇듯이 곡이 끝나자마자 또 다른 퀸의 노래를 자동으로 띄워 주는데, <Somebody to love> <Bohemian Rhapsody> <I want it all>에서 <I was born to love you> 등을 지나며 귀에 익숙한 곡들이 연속으로 흘러나오는데 갑자기 낯선 노래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It's a hard life>  


https://www.youtube.com/watch?v=J0astd-Rh_Q



최근의 세태를 묘사하는 듯한 노래의 제목 덕분에 제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이 곡을 플레이하자 색다른 스타일의 뮤직 비디오가 전개되면서, 곡의 첫머리부터 저를 깜짝 놀라게 합니다. 


어라! <팔리아치>가 여기서 왜 나와? 


첫 소절 

"I don't want my freedom

There's no reason for living with a broken heart"까지가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팔리아치>에 나오는 주인공 팔리아치의 아리아 "Vesti la giubba" 중에

"Ridi, Pagliaccio, sul tuo amore infranto!" (Laugh, clown, at your broken love!) 부분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습니다.


<팔리아치>는 19세기 후반 시작된 베리스모 오페라 (사실주의 오페라)의 대표 작품입니다. 베리스모 오페라는 이전 낭만주의 시대가 역사적인 주제나 신화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던 것과 달리 동시대의 사실적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 이 <팔리아치>는 유랑극단의 단장이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랑을 약속하는 광경을 목격하고서도 광대 분장을 하고 코미디를 연기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을 소재로 펼쳐지는 오페라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aFK-DbPSNY

(약 2:00경부터)

카레라스는 노래가 묘사해야 하는 감정과 상황의 서사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 냅니다. 동시대의 경쟁자인 파바로티나 도밍고에 비해 목소리가 가진 물리적인 크기나 특징이 부족한 반면 호흡 등의 기술적인 부분은 훨씬 뛰어나기 때문에, 이 아리아에서도 각 프레이즈의 끝 부분에서 호흡을 유지하며 다음 프레이즈로 감정이 자연스럽게 전달되게 하는 카레라스의 해석은 단연 압도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hxonfpfuTY

(1:43경부터)


가장 낭만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도밍고는 이 프랑코 제피렐리가 연출한 영화판 <팔리아치>에서 노래가 담고 있는 감정의 기복을 격정적으로 드러내 보입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너무 감정에 휩싸인 모습이라 노래를 통한 서사 전달이 불명확해지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0PMq4XGtZ4

(1:58경부터)


가장 명징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볼륨감이나 고음처리에 뛰어난 파바로티는 오페라 무대보다는 콘서트에 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 아리아에서도 중요한 감정들이 한 호흡에 잡혀서 연결된 프레이즈로 전달되어야 하는 순간에 그가 내뱉는 거친 날숨들은 음악의 흐름을 딱딱 끊어지게 만들어 버려서,  오페라가 내포하는 드라마의 전달이 불가능해집니다.  물론 <쓰리 테너 콘서트> 같은 무대에서 그가 만들어 내는 맑고 고운 하지만 강렬한 목소리는 그 모든 것을 용서하게 만들죠.  




이렇듯 오페라 <팔리아치>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온 퀸의 <It's a hard life>는 뮤직비디오까지 마치 오페라 속의 한 장면처럼 꾸미고 있는데요, 우리 삶이 가지는 이중적인 모습 (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는 듯한 주인공이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하는 것과 같은)을 화려한 가면 속에 울고 있는 광대의 절망적인 심정으로 치환해낸 독특한 노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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