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훈수의 왕 Feb 08. 2021

판타스티코! 꾀 많은 여우 아저씨

웨스 앤더슨의 재치 넘치는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는 로알드 달이 쓴 어린이 동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색다른 유머와 환상이 가득한 매력적인 캐릭터를  탄생시키고 있습니다.


2009년에 등장한 영화이니 이미 꽤 시간이 흘렀건만 2021년에 보더라도 세월의 자취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웨스 앤더슨식 유머를 만들어 내는 과정과 아이디어를 유쾌하게 감상할 수 있는 아주 멋진 영화입니다.


로알드 달의 원작 동화를 읽은 분이라면 원작의 캐릭터들에 대한 생각은 영화를 보는 동안 잠시 접어서 머릿속 깊은 곳에 잘 숨겨두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로알드 달의 소설들이 흔히 기존 사회구조에 얽힌 전통적인 관념의 선악 구분을 해체하고 아이들 같은 순진하고 신선한 시선으로(그래서 오히려 어른의 시각에서는 잔혹하고 비윤리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제안해 내고 있다면 이 웨스 앤더슨은 보편적인 인간들이 삶의 여정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상투적인 장면마다 무의식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아마도 사회적 정치적 학습으로 인해) 태도에 대한 독특한 시선을 통해 색다른 유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화에 등장하는 미스터 폭스는 소설 속의 가정적이고 책임감 있는 하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가장의 이미지가 아닌 낭만적이고 즉흥적이며 본능에 충실한 유쾌한 주인공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구성도 현실감 떨어지는 어린이 만화책 같은 평면적인 장면들과 그와는 반대로 입체적이고 아주 현실적일 정도로 생생한 디테일을 묘사한 장면들이 혼용돼서 사용됩니다.


(만화적인 이미지 구성)



(실사 같은 장면들)



이런 시도는 현실과 환상을 뒤섞는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감독은 세밀한 계산을 통해 우리에게 전체 영화의 백그라운드는 분명히 가상적인 세계이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일상의 우리가 만나게 되는 극히 현실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놀랍도록 얄밉고 하지만 그래서 매력적인 영화 속 미스터 폭스는 왠지 저에겐 라블레가 자신의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의 주인공들을 통해 세상에 등장시킨 유머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그  이유는 아마도 영화 속 미스터 폭스가 소설과 달리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범하고 풍요로운 그래서 외견상으로는 만족스러운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으며 또한 이런 삶의 형태와 태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픈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본능적인 욕구 충족을 위해 도둑질을 하다가 가족을 위기에 처하게 만드는 낭만성과 즉흥성 등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능 스포츠 스타이며, 매력적인 남편이고 안정적인 기자인 미스터 폭스는 도대체 왜 새로운 모험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진지함, 약속, 자본(가진 자), 법 등 일견 정의를 묘사할 법한 개념들 속에 들어있는 비윤리성을 가벼움, 직관적 주시, 개성적인  유머와 같은 번쩍이는 재치를 통해 스크린 뒤로 날려버리며 은연중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드는 매력만점  애니메이션 영화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코로나로 잃어버린 웃음을 찾아주는 최고의 영화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넷플릭스 <더 디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