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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Feb 13. 2021

<퀸스 갬빗>

최근 인기를 끄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발견되는 특징들 중 하나는 코로나로 인해 변화 중인 라이프스타일에 부응한다는 점입니다. 


<브리저튼>이 집콕에 지쳐버린 사람들에게 가상여행과 화려한 소셜 라이프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편에 소개할 <퀸스 갬빗>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격리되고 있던 전 세계에 새로운 체스 열풍을 불러왔습니다.




드라마의 제목인 '퀸스 갬빗은 가장 오래된 체스의 정석중 하나를 일컫는 이름입니다.

체스라는 게임에 익숙하진 않지만, 좋아하는 영국의 형사드라마 시리즈인 <인데버>의 한 에피소드 덕분에 제목을 보는 순간 체스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체스 말의 움직임을 표시할 때 체스판을 가로와 세로로 나눠서 각각의 자리를 알파벳과 숫자를 합쳐 부르게 되는데, 영국 형사 드라마 <인데버>의 시즌 4,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은 살인사건과 연관된 3개의 라커룸 키 (각각의 번호가  E4, E5, F5)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의 옆을 지나던 체스에 능숙한 동료 경찰이 그의 수첩에 적힌 기호들을 보고 '킹스 갬빗'임을 알려줍니다.


체스 게임의 초반 시작 부분에 적용되는 '킹스 갬빗'과 마찬가지로 '퀸스 갬빗' 역시 체스의 시작 부분에 해당하는 정석이라고 하며, 그 유래가 15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아주 오래된 하지만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실전에 적용되는 수라고 합니다.  체스에 천재성을 발휘하는 여주인공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이번 드라마의 스토리를 설명할 제목으로 딱 들어맞는 느낌인데요, <퀸스 갬빗>은 1983년에 쓰인 동명의 소설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원작 소설의 작가인 월터 테비스는 체스에 꽤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했던 미국 출신의 그랜드 마스터인 로버트 피셔와 그의 소련 라이벌들 간의 게임 등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두뇌게임인 체스를 소재로 한 드라마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캐릭터는 천재로 설정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까지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가 당연하게 남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었던 것과 달리 이 드라마의 주인공에는 여성이 선택되었는데, 남성 위주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좋은 샘플인 체스의 세계에 천재 여성을 등장시킨 것은 단지 가상의 스토리를 통해 남녀평등을 주장하기 위해서 만은 아닙니다 이미 20세기 초 남성들이 주름잡던 세계 체스계의 최상위 토너먼트에 러시아 출신의 영국 체스 플레이어인 베라 멘칙이 참가하고 있었는데요, 그녀는 세계 최초로 그랜드 마스터와 겨룬 여성 플레이어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으며, 2011년 '월드 체스 홀 오프 페임'에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드라마는 남성 위주의 사회체제 속에서 여성의 천재성이 그 차별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심도 있게 보여주기 위한 한 방법으로 역사 속에서 잊혀간 천재 여성 화가에 대한 존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1822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9세기의 마지막 해에 생을 마친 프랑스 화가 Rosa Bonheur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1848년 처음으로 Paris Salon에 작품이 전시되기 시작한 19세기 최고의 여류 화가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현재 미술사의 중요한 자리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인상파 화가들조차 전시회에 참가하기 쉽지 않던 보수적인 파리 예술원이 여성에게 기회를 줄 정도로 당시에는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동물 등을 소재로 한 회화와 조각에서 두각을 보였다고 합니다. 




미국의 여성 미술사학자인 린다 노클린이 1971년 에세이인 "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등을 통해서 예술가로서 천재성을 보였던 여성 화가들의 성적 차별에 대한 연구 등을 통해 재 부각되기 시작한 Rosa Bonheur의 이름은 원작 작가가 "여성의 천재성에 대한 오마주"로 소설의 한 장면에 삽입하면서 드라마에서도 에피소드 2편의 시작 부분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하먼이 처음 양부모와 살 집에 들어서는 장면입니다.


  



Shepard in the Pyrenees (1888) 



 Wild Cat (1850).

   

    

이 비운의 천재 여성 화가와 드라마 속 주인공 하먼은 홀로 된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그녀들을 둘러싼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치열하게 자신들의 천재성을 드러내고자 노력해 온 공통점이 있는데, 과연 <퀸스 갬빗>의 주인공 하먼은 앞서간 선배들의 불운을 극복하고 그녀가 가진 재능을 드라마 속에서 꽃 피우게 될까요?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주연을 맡은 애니아 테일러 조이의 뛰어난 연기를 통해 새롭게 써 내려간 현대 여성들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발견할 수 있었던 <퀸스 갬빗>이었습니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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