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훈수의 왕 Feb 28. 2021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다크>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과 현대 물리학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다크>는 이제까지 많이 접하지 못했던 탓에 한국의 시청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독일식 드라마가 만들어 내는 색다른 분위기를 통해 시간을 둘러싼 다양한 미스터리 속으로 우리를 흠뻑 빠져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양자역학, 타임 패러독스, 평행세계 등 SF 물을 좋아하는 팬들의 기호에 딱 들어맞을 법한 소재들을 사용해서, 우연한 계기로 윤회되는 삶의 틀 속에 들어가 버린 주인공이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이들의 운명 속에 지속되는 삶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미지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가 드라마의 중심 테마인데요



Der Unterschied zwischen Vergangenheit, Gegenwart und Zukunft ist nur eine Illusion, wenn auch eine hartnäckige...                                     (Albert Einstein)


'과거, 현재, 미래의 구별이란 고질적인 환상일 뿐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의 시간에 대한 언급을 보여주며 시작되는 <다크> 시리즈는 인간의 오만(원자력)으로 인해 서로 다른 시간을 연결하는 문이 생겨나 주인공들을 둘러싼 시공간이 엉키는 과정에서 어지럽게 꼬여가는 문제들을 관객들에게 던져놓고, 주인공들이 이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인류사에 등장하는 주요 테마(종교 정치 등 )의 기원과 사유에 적용시켜가며 시청자들이 시간과 기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근래 보기 드문 수작입니다.




요즘 TV  드라마들을 보면 오프닝 시퀀스에서 드러내는 이미지를 통해 전체 시리즈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 데요, 이 <다크>역시 독특하고 색다른 시각적 이미지를 오프닝에 등장시키며 시청자들에게 극의 진행방향을 무의식적으로 지각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숲 위로 떠오르는 일출 광경을 상당히 원거리로 촬영해서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이 아주 작게 보이는 오프닝 장면입니다.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일출광경은 보통 새로운 출발, 미지의 세계가 열리는 전조, 보이는 곳 너머에 숨겨진 지혜 등을 암시하는 기호로 사용되곤 하는데, 그렇기에 보통은 화면을 검은색으로 가득 채운 상태에서 오렌지빛의 작은 점이 암흑 사이로 떠오르면 그 오렌지색 점을 클로즈업하며 점차 커지는 이미지를 연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 <다크>는 해의 위상이나 모양의 변화 없이 오히려 해가 비추는 숲의 형태를 점점 더 확대해 가는 독특한 장면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하나하나 부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아닌 전체를 조망하는, 그렇기에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피안의 세계에 대한 암시 등이 엿보입니다. 


바로 이런 프레임의 구조가 저에겐 사진작가 Andreas Gursky의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던져주고 있는데, 현존하는 사진작가 중 가장 비싼 경매 낙찰 기록들을 가지고 있던 Andreas Gursky의 작품들을 한번 보시죠.


Rhein II (1999)


라인강의 전경을 찍은 위의 사진은 강변의 모습들을 수평적으로 구분시키는 미니멀적인 이미지를 통해, 자연의 흐름이 갖는 거대함과 영원함, 우리의 시각 너머에 존재하는 순수성 등을 표현한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 촬영된 이미지에는 아주 작은 크기의 사람들이 강변을 거니는 모습이 들어있다고 하는데요, 자신의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완성시키기 위해 후작업을 통해 사람들과 애완견들의 이미지를 전부 삭제하였다고 합니다. 얼핏 보면 그냥 강변의 작은 일부를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거대한 풍경을 한 장의 사진 속에 담아낸 작품입니다.



Los Angeles (1998) 


LA의 야경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 작품이 아마 제가 <다크>의 오프닝에서 이 작가가 연상된다고 이야기한 이유를 이해하기 좀 더 적절한 예로 보이는 데요, 


수많은 사람들의 관계들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현상과 에피소드들이 거대한 도시를 차지하고 있겠지만, 그 전체를 조망한다면 그 모든 것들은 이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기 위한 작은 파편들일뿐일 거라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바로 이런 느낌이 <다크>의 일출 장면에서 카메라가 숲을 광각으로 넓게 보여주는 장면에서 받게 되는 감정과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며 저희가 작가의 작품에서 받게 되는 감정을 좀 더 확실하게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I read a picture not for what's really going on there—I read it more for what is going on in our world generally.” – Andreas Gursky.

나는 사진을 통해 그 특정 장소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진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일반적으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좀 더 알고자 한다.





드라마의 스토리를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눈에 뜨이는 또 다른 독특한 관념이 있습니다.


A moment in Time


시간 속의 순간들이라고 정의해 보았는데요, 순간들이 모여서 일정한 주기의 시간들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시간이 시곗바늘을 따라 회전을 끝내면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게 됩니다. 


이렇듯 드라마가 보여주는 시간들을 회전하는 시곗바늘로 이미지화해 본다면 영원히 같은 시계판 위를 회전하며 반복하고 있는 시간들은 하지만 그 주기마다 미세한 서로 다른 떨림들이 각 회전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런 영향들이 쌓이며 전체 회전주기가 묘하게 조금씩 벗어나게 되는 것 같은, 그런 형이상학적인 관점으로 이야기들을 끌고 나가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어떻게 아담과 이브가 되어가는지, 원자력이 만들어 내는 시간의 틈새, 각기 다른 시간에 존재하는 평행세계 등 어떻게 보면 아주 거대하게 보이는 소재를 가상의 독일 시골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소수의 몇몇 사람만을 등장시켜서 그들 사이에 만들어지는 작지만 복잡한 관계를 통해 그려내는 <다크>


독일극의 전통이 만들어 내는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연출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드라마는 엔딩에 가까워질수록 전개과정에 제기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스탤지어와 사랑이라는 도구들을 꺼내 들고 있습니다. 


'부재에 대한 그리움' 즉 사랑하는 이들이 어찌 되었는가를 알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 고통인 노스탤지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사랑(시간과 공간을 초월한)이 필요하다고 암시하고 있는데요,  


과연 드라마가 그려내는 서사인 '내가 사랑한 것들이 존재하던 시간과 그에 대응하는 나의 실존이 존재하는 시간상의 불일치가 만들어 내는 근원적인 그리움'을 바탕으로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의 총체적 본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어떻게 사랑으로 승화시키며 막을 내리게 될까요?





"모든 것은 하나다"라고 외치고 있는 드라마 <다크>를 통해 과연 개개인의 삶이 만들어 내는 작은 파편들이 어떻게 전체의 운명을 구성해 나가는지, 그 거대한 서사의 수수께끼를 향해 한 걸음씩 함께 나가 보시죠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퀸스 갬빗>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