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말 오랜 연구 끝에 드디어 화면에 소리를 동기화시키는 방법이 실용화되는데, 당시로는 매우 혁신적인 이 기술은 영화 산업을 새로운 단계로 업그레이드시킵니다.
화면에 대화가 접목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전까지는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 피아노 연주자가 영화 화면에 맞춰 생음악으로 즉석 반주를 하던 배경음악도 영화의 장면에 맞게 작곡된 전용 음악으로 업그레이드되며 영화가 만들어 내는 드라마의 감정에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극적 효과를 더해주게 되는데, 때마침 미국으로 이주해 온 유럽 출신 음악가들은 자신들이 배운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이 담고 있던 서양 고전음악의 전통적 기법들을 새롭게 출현하는 영화음악의 작곡에 적용하며, 영화음악의 선구자로 역사에 기리 남게 되었습니다.
흔히 맥스 스타이너, 에리히 코른골트 등을 영화음악의 선구자로 꼽고 있는데, 이번 편에서는 그중에서 맥스 스타이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G9OTPwvxVA
(맥스 스타이너의 대표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메인 테마곡)
바흐가 '고전음악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것처럼, 맥스 스타이너는 '영화 음악의 아버지'로 종종 불리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라이트 모티프라고 불리는 유도동기를 영화음악의 작곡에 광범위하게 적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Leitmotif(유도동기)는 오페라나 교향시 등의 악곡 중에서 특정의 인물이나 상황 등을 묘사하기 위해, 전체 곡의 진행에 반복되어 사용되는 짧은 멜로디로 특정되는 음악적 주제나 동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단순히 동일한 멜로디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화성과 대위를 통해 변주 및 전개되면서 최초 제시된 음악적 주제가 묘사하는 극의 서사를 직접적으로 또는 상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며 궁극적인 전체 음악의 통일을 가져오는 방법으로 바그너가 그의 후기 오페라들을 통해 완성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런 개념은 훗날 토만스만등에 의해 문학 등에서도 차용되고 있습니다.
리들리 스콧이 감독한 <프로메테우스>의 오프닝에서 웨이랜드 회장과 AI인 데이비드가 나누는 창조에 대한 대사의 끝부분에 데이비드에게 피아노를 연주하라고 청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바그너의 오페라 <라인의 황금> 중에 <The Entry of the Gods Into Valhalla>를 한번 들어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b80Jw8MuZxo
바그너가 창조한 이 음악적 기호는 이렇듯 현대의 영화에서도 그 의미를 유지하며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니 이해가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은데요, 사실 영화음악의 예를 보면 훨씬 이해가 쉽게 되실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jolKdtJEtU
유명한 영화 <죠스>의 테마 음악입니다.
'두~둥'하는 저음의 관이 두 번 반복되는 소리가 점차 리듬과 음 높이를 달리하며 오케스트라 총주로 확장되어 나갑니다. 이 멜로디는 영화 <죠스>를 좋아했던 팬이라면 언제 어디서 들어도 식인상어와 바다가 만들어 내는 공포에 사로잡히게 될 듯한데요, 이렇게 드라마의 스토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특정 음악(멜로디)을 통해 영화는 관객들에게 영화 속 서사를 환기시키고 감정적인 동화를 이루어냅니다.
지난번 다른 편에서 소개해 드린 버나드 허먼의 음악하고 비교하시면 차이점이 쉽게 발견되는 데요, 버나드 허먼은 각 장면마다 자연스럽게 그 분위기에 휩싸이게 만드는 묘사적인 음악이 장점이라면, 그와 반대로 존 윌리엄스의 영화음악은 그 독특한 멜로디들이 언제 어디서 들어도 영화 속의 특정한 장면이나 이야기를 떠오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버나드 허먼 다시 읽기 https://brunch.co.kr/@milanku205/775
존 월리엄스 등 현대의 많은 영화 작곡가들이 만들어 내는 음악들이 바로 맥스 스타이너가 바그너로부터 빌려온 유도동기라는 작곡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앞에서 들려드렸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그 유명한 테마 역시 이 영화의 팬이라면 언제 들어도 항상 멜로디가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머리에 떠오르게 됩니다.
유도동기를 사용한 이러한 작곡법은 현대의 영화음악에 까지 지속적으로 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많은 평론가들이 맥스 스타이너를 영화 음악의 아버지로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가 영화 음악사에 남긴 또 다른 기여로 유도동기 이외에 Original Music을 들 수 있는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음악을 담당하게 된 그에게 영화사는 유명한 고전음악을 사용하라고 종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맥스 스타이너는 관객들의 귀에 익숙한 유명한 멜로디들은 오히려 영화가 전달하려는 독창적인 서사나 감성이 관객에게 도달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주장하며 영화만을 위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냅니다.
영화 <스팅>의 주제곡으로 유명한 Scott Joplin의 <The Entertainer>입니다.
한국에서는 워낙 영화로 인해 유명해진 덕분에 많은 분들이 영화를 위해 작곡된 오리지널 곡으로 알고 계시지만 이곡은 사실 1902년에 Ragtime이라는 재즈곡의 형태로 작곡된 Scott Joplin의 명곡입니다. 이 Ragtime이라는 음악 형태의 가장 큰 특징이 독특한 당김음의 리듬이라 대반전이 벌어지는 영화의 스토리가 선형적인 리듬이 아닌 off-beat를 가지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보다 워낙 1900년대 초에 유행했던 음악이라 이렇게 이미 많은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영화의 특정 장면에 삽입된다면 관객들은 영화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보다 멜로디가 자신의 경험 속에 녹아든 특정한 기억을 회상할 우려가 높고 그런 것들은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게 될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WxfjWnuEno
맥스 스타이너의 그런 영화 음악에 대한 통찰력 덕분에 현대의 관객들은 각자가 좋아하는 어떤 영화의 특정 장면들이 전달하는 이야기와 감정이 만들어 낸 바로 그 소리들에 대한 추억을 갖게 되는 것 아닐까요?
19세기의 유럽 고전음악 전통을 20세기 미국으로 옮겨와 현재의 우리들에게 영화음악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어 준 맥스 스타이너는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빛낸 진정한 영화 음악의 선구자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TFTmqlatu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