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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Jun 14. 2021

소리로 확인하는 연애의 감정-1

 위대한 명작들, 우리를 감동시킨 작품들의 중심에는 남녀 간의 절절한 감정, 즉 사랑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부분 그 기본을 신화나 문학작품에서 가져온 오페라 역시 예외가 아닌데요, 이번 편에서는 우리에게 눈물과 감동을 전해주는 오페라 속 사랑의 순간들을 살펴볼까 합니다. 


1. 베르디 <오텔로> 중 "Gio nella notte densa" (이제 밤은 점점 깊어가고)


베르디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바탕으로 여러 편의 오페라를 작곡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오텔로>는 사랑과 배신 등을 소재로 한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만들어 내는 극적인 선율 때문에 가장 인기가 좋습니다


테너가 맡게 되는 '오텔로'역은 격한 감정 표현이 많다 보니 드라마틱한 목소리의 가수들이 주로 부르게 되는데 데스데모나와 오텔로의 첫 번째 이중창인 "Gio nella notte densa" 는 1막의 오프닝에서 폭풍우를 뚫고 등장하는 오텔로와 개선장군을 열렬한 환호로 맞이하는 시민들의 격한 모습을 뒤로하며 사랑하는 남녀가 오랜만에 재회하는 순간이 독특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오페라에 등장하는 사랑의 순간들이 보편적으로 서로 간에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며 점점 감정에 몰입하게 만드는데 반해 이 이중창은 주인공들이 처음 만난 순간을 회상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이렇게 함께 하고 있는 현재의 순간까지를 연결시켜 관객들로 하여금 두 주인공 사이에 진정한 사랑이 존재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목격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랑의 목격자가 된 우리는 이후에 벌어지는 배신과 질투 등의 장면에서 훨씬 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드라마틱한 테너의 목소리에 맞게 울림이 있는 느린 템포로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멋진 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Z1a7JEwxz8


1994년 프라하에서 열린 실황 공연인데요, 당시 막 유럽 음악계에 신성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안젤라 게오르규가 절정의 시기를 맞고 있던 플라시도 도밍고의 파트너로 선택돼서 멋지게 이중창을 부르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0SUvzLcUgA


첫 번째 공연에서 12년이 지난 후 도밍고가 당시 최고봉에 올랐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와 베를린 발트뷔네 음악제에서 같은 곡을 부르는 장면입니다. 전성기를 지난 테너와 전성기에 오른 소프라노의 이중창이 전성기의 테너와 막 정상을 향해 발돋움하던 소프라노의 이중창과 비교해서 어떤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베르디의 극적인 사랑의 순간을 들어보셨는데요 이번에는 모차르트의 위트가 느껴지는 달달한 유혹의 순간을 들어보시겠습니다



2. 모차르트 <돈 지오반니> 중 - la ci darem la mano (그대의 손을 나에게 주오)


그림에 감정을 담고자 했던 위대한 화가 마크 로스코는 모차르트가 보여주는 형식미와 위트에 반해서 그의 오페라를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전해지며 그중에서도 이 <돈 지오반니>를 가장 좋아했다고 하는데, 오페라의 어떤 모습에서 그가 위트를 느끼고 있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로스코의 생각을 알 수는 없지만 제가 느끼는 <돈 지오반니>에서 보이는 위트는 일종의 음악적 반전입니다.


주인공 '돈 지오반니'는 세기의 호색한 카사노바의 스페인 버전인 돈 후안을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실존인물이라고 알려진 카사노바와 달리 돈 후안은 전해져 내려오던 전설이 모여져서 완성된 이야기인데요 그렇다 보니 단순한 방탄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를 벌하는 신의 심판이 이야기에 포함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인기 있는 스토리를 바탕으로 작곡된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에 부여된 음악적 특징이 상당히 독특합니다.


아주 부도덕한 여성 편력가인 주인공 '돈 지오반니'에게 부여된 음악적 성격은 독선적이며 음침한 느낌의 바리톤인데 극 중에서 서사를 발전시켜 나가는 다양한 중창에선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드러나지만 솔로 아리아인 "세레나데"와 체를리나와 함께 부르는 지금 소개할 이중창인 "그대의 손을 나에게"에선 아주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로 유혹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결혼을 앞둔 순진한 시골 아가씨를 본 돈 지오반니는 본능적으로 그녀를 농락할 생각에 새신랑을 멀리 보내버리고 달콤한 감언이설로 유혹을 시작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qPcb1nKZYg


베이스 바리톤인 브라이언 테어펠은 90년대 초 아바도의 지휘 하에서는 '레포렐로'를 그리고 몇 년후 솔티의 런던 라이브 녹음에서는 '돈 지오반니'를 부르고 있는데 지휘자들의 해석에 따라 한 가수가 이렇게 두 역을 다 소화하게 되는 상황이 가능한 점에서 바로 모차르트의 위트가 느껴집니다.


일반적인 해석에서는 테어펠의 목소리는 '레포렐로'에 더 잘 어울리지만 이 오페라를 두 번 녹음한 솔티는 두 번째 녹음을 위해선 좀 더 활기차고 유들유들한 '돈 지오반니'캐릭터를 선택했고 그렇게 테어펠은 처음으로 '돈 지오반니'를 리코딩하게 됩니다. (이후 실황에서는 레포렐로보다는 돈 지오반니를 훨씬 더 많이 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래 러시아 베이스인 호브로스토프스키가 부르는 좀 더 전통적인 스타일의 '돈 지오반니' 목소리와 비교해 보시면 이해가 쉬우실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1r0M7weCQg 


'돈 지오반니'로 유명한 체사레 시에피의 전통적인 해석은 두 번째 영상 같은 느낌이 강합니다 

이런 스타일의 목소리는 전체적인 오페라 서사를 이끌어 가는 부분에 있어서는 좀 더 설득력이 강하지만 이 이중창과 독창만을 떼어놓고 보면 첫 번째 동영상의 주인공 같은 목소리가 훨씬 더 잘 어울린다고 볼 수도 있죠.


이렇게 다양한 해석과 연기가 가능하게 오페라를 만든 점이 바로 모차르트의 위트라고 느껴지는 부분이라는 것이죠. 


독창인 "세레나데"도 한번 들어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n6dXiybqMpo


이런 식으로 음악적 성격에 반전을 주는 것은 등장하는 다른 주인공들에게도 부여되는 특징인데, 멍청하고 우스꽝스럽기만 할 것 같은 하인 '레포렐로'는 자신이 모시는 주인인 '돈 지오반니'의 엽기 행각을 아주 교활한 톤으로 설명하는 "카탈로그의 아리아"를 부르고 있고,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내야 하는 돈 오타비오는 오히려 가벼운 테너 레체로가 맡아서 기교 넘치는(?) 맹세를 관객들에게 들려주게 만들고 있습니다.    





소개한 두 곡의 이중창은 사실 보편적인 연애의 감정을 드러낸 이중창이라고 부르기에는 거리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사랑에 눈먼 두 남녀가 외치는 달콤한 본능의 소리를 소개해 드리죠.


이런 사랑의 감성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는 역시 푸치니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의 대표작 <라 보엠> 1막에 나오는 유명한 사랑의 이중창입니다


3. 푸치니 <라 보엠> 중 - “O Soave fanciulla” ( 오 사랑스러운 그대여)



https://www.youtube.com/watch?v=WRGRxtVdvWI


춥고 배고픈 가난한 예술가들, 난로에 넣을 장작이 없어서 그림을 그리던 캔버스와 시를 써 놓은 원고지를 땔감으로 삼아 그럭저럭 견디던 시인의 방에 새로 옆집에 이사 온 여인이 잠시 찾아옵니다. 우연히 마주 잡은 차가운 손에 놀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시인에게 호감을 느끼는 여인 "제 이름은 미미"라며 답을 하는 이들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순간 세상은 두 사람만의 공간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 순간의 감정을 아주 낭만적으로 그려내는 사랑의 이중창인데요, "그대의 찬 손"만을 떼어서 보면 파바로티를 선호하는 분들이 더 많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이 이중창이 드러내는 감성은 역시 호세 카레라스가 최고인 것 같습니다.


파바로티가 부르는 "그대의 찬 손"입니다.

낭창하게 뻗어나가는 고음의 감동은 역시 파바로티인가요?


https://www.youtube.com/watch?v=OkHGUaB1Bs8


카레라스가 소리로 보여주는 연기력은 어떨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eiTHjfmSyQU



파바로티의 목소리와 카레라스의 표현력 여러분은 어느 가수의 편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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