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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Jun 09. 2021

신화를 넘어 은하계 저편까지

최근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에 (특히 마지막 편인 신들의 황혼에) 푹 빠져있던 바람에 그에 관한 생각들을 2편에 걸쳐 올렸는데, 그렇게 신화의 세계를 둘러보다 보니 연상이 이제 지구를 넘어 은하계 저편까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17시간을 넘나들며 엄청난 스케일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펼쳐내는 오페라 역사상 가장 거대한 음악극인 <니벨룽겐의 반지>는 작곡가가 무려 26년간이나 공을 들여 작곡을 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뭔가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26년 동안 이 긴 곡을 작곡하면서 전체 오페라가 음악적인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말이죠


바그너는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라이트 모티브(유도동기)란 아이디어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방대한 서사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등장인물과 주요 사건에 특정 멜로디들을 부여해서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며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 특정 멜로디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스토리의 전개에 따른 음악적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죠.


예를 들어 sword라고 불리는 유도동기는 서야에 해당하는 <라인의 황금>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데 연이어 <발퀴레>에서 지그린데와 지그문트가 만나는 장면에서 무기가 없는 지그문트에게 전설(보탄이 미리 심어놓고 간)처럼 다가오며 이후 지크프리트가 이 칼의 부러진 조각을 이용해 새로 만든 노퉁으로 보탄의 지팡이를 파괴하는, 즉 신의 세계에 종말이 내려지는 장면을 거쳐 지크프리트의 죽음까지 다채로운 이야기 속에 금관을 통해 개성 있는 멜로디를 울리며 등장합니다. 



오페라의 서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들이 이 칼과 연관이 되어 있는데, 이런 연관되는 장면마다 서사의 진행을 돕는 분위기 메이커처럼 이 멜로디를 다양한 형태로 (최초에 등장한 소리 그대로 또는 약간식 변형된 또는 다른 멜로디와 합쳐져서) 등장시키면서 관객들은 은연중에 현재의 장면이 이전의 그 부분과 그리고 다음 편에 등장할 저 부분과 연계되는 것이구나 라는 이해를 하게 되고, 음악적으로도 일종의 주요 주제 부분들이 반복돼서 등장하게 되면서 전체 오페라의 중심이 자연스럽게 잡혀나가게 되는 것이죠


운 좋게도 뉴욕타임스에서 메트의 <링> 공연 실황과 관련된 기사 속에 여러 장면   등장하는 칼의 동기를 멋지게 편집해 놓은 영상을 발견하게 돼서 밑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번 감상해 보시죠 


우선 칼의 동기만을 따로 들어보시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hM5UkVVmxA


링크된 전체 기사의 내용 중에 연결된 첫 번째 동영상이 바로 칼의 동기에 관해 편집된 부분입니다


https://www.nytimes.com/2019/04/23/arts/music/wagner-opera-ring-explained.html





그런데 (물론 오페라는 아니지만) 현대로 오면서 이 <니벨룽겐의 반지>와 전체 구성 요소의 길이나 제작 기간면에 있어 필적할 만한 무엇인가가 등장합니다.


바그너가 인간과 신을 둘러싼 세계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다면 이 작품은 넓은 우주 속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는 우주 서사극인데요


바로 영화 <스타 워즈>입니다.



<스타워즈>의 영화 음악을 담당했던 작곡가 존 윌리엄스는 장대한 시리즈로 구성된 이 영화의 음악을 맡게 되면서 바그너가 만들어 낸 라이트 모티브란 콘셉트를 아주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라이트 모티브란 개념을 영화음악에 처음 적용시킨 것은 존 월리엄스가 아닙니다. 이전에도 소개해 드렸던 여러 선배 영화 음악가들이 이미 시도를 하고 있었고 존 월리엄스도 이 영화가 첫 번째 시도는 아닙니다.


그의 대표작인 영화 <죠스>에 등장하는 무서운 괴물을 연상시키는 음악을 들어보셨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M-mAFarwU18


저음의 관악기가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기운을 조성하면 곧이어 급하게 쫓기는 듯한 템포로 공포를 불러일으키던 이 테마음악은 예전 세대들에게는 여름마다 무더위를 몰아내 주겠다며 등장하던 빙과류 광고 음악으로도 익숙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와 비슷한 멜로디나 리듬만 들어도 등 뒤에서 무언가가 쫓아오고 있다는 두려움이 생겨나곤 하는데요, 


이렇게 라이트 모티브라는 콘셉트를 영화음악에 사용해서 큰 성공을 거둔 존 윌리엄스는 거대한 우주 서사극 <스타워즈>에도 다양한 멜로디들을 주인공이나 특정 에피소드에 연결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새롭게 만들어지는 시리즈 전편에 통일된 음악적 효과를 불어넣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zWSJG93P8


아마도 <스타워즈>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멜로디는 위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는 "제국의 행진(또는 다스베이더의 테마)" 일 텐데요,  영화가 진행되는 도중에 이 멜로디가 흘러나오면 관객인 우리는 곧 제국군 또는 다스베이더가 등장하겠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죠


또 다른 유명 테마곡인 '포스의 테마' 역시 최초에 등장한 이래 지속적으로 속편이나 전편 등에 다양하게 변형된 멜로디로 각각의 시리즈들을 음악적인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통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b2zuegwcwk 





바그너의 음악이 거대한 구조의 서사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전체를 전부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부분적인 음악만을 떼어놓고 본다면 바그너만큼 선동적으로 우리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작곡가도 흔치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바그너의 능력이 잘 드러난 <니벨룽겐의 반지> 중에 가장 유명한 라이트 모티브 증 하나인 '발키리의 비행'을 들어보시죠. 영화팬들에겐 아마도 <지옥의 묵시록>에 삽입된 곡으로 더 널리 알려졌을 것 같은데요, <니벨룽겐의 반지>의 두 번째 작품인 <발퀴레>에서 3막에 등장하는 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eRwBiu4wfQ


하늘을 나는 여전사들이 만들어 내는 시원한 바람을 타고 현실의 답답함을 한번 이겨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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