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 and eat!
이름도 부르면 안 되는 자, '볼드모트'. 이 유명한 소설 <해리포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해리포터 팬들 사이에 큰 이슈는 누가 해리를 연기하나 만큼이나 과연 누가 볼드모트를 연기할 것인가 이었습니다.
배우의 커리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란 의견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드디어 등장한 볼드모트는 바로 '랠프 파인즈'였습니다. 처음 등장한 시리즈 이후, 사람들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 후보에 까지 올랐던 이 명 배우의 과거는 지워 버리고, 악의 화신으로 그를 기억하기 시작했을 겁니다.
배우 본인도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기 인생이 사라져 버렸다는 불평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마지막까지 이 배우의 연기는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는 큰 역할을 했습니다.
가만히 이 배우의 출연작을 들여다보니, 자유분방한 영혼, 코믹한 악당, 냉철한 스파이 조직 부서장 등 1000의 얼굴을 가진 듯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쉰들러 리스트>와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통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나쁜 남자 이미지를 볼드모트 역을 통해 정점을 찍은 이 배우에게 터닝 포인트가 된 영화로 저는 <킬러들의 도시>를 꼽고 싶습니다.
마틴 맥도나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이 영화는, 원제목 <In Bruges>에서 알 수 있듯이 벨기에의 아름다운 도시 'bruges'를 배경으로, 감정도 없이 사람들을 죽일 것 같은 킬러들의 내면에 들어 있는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한 블랙 코미디입니다.
여기서 인간 본연의 모습은 킬러지만 착하다던지, 자기가 저지른 과오를 반성한다던지 하는 할리우드식의 자기기만이 아닙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킬러로서의 강인함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실제 그들의 본질은 나약하고 찌질함이 숨어 있는 나약한 인간 군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감독의 후속 작품인 <세븐 사이코>에서도 이런 감독의 의도는 계속됩니다.
랠프 파인즈는 이 영화 <in Bruges>에서 새로운 감각의 조폭 두목으로 나오며 연기 변신을 시도하기 시작해서, 007을 거쳐 2015년 <a bigger splash>에서 대폭발을 합니다.
좌충우돌 즉흥적이며, 사교적인 매니저 역할인데, 이전까지의 영화에서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배우를 찾을 수 있습니다. 1969년 작 <La Piscine - Swimming Pool>을 기본으로 삼은 이 영화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에서 제목을 따온 만큼, 호크니의 작품처럼 풍요롭고, 성적으로 긴장되며, 아름다운 화면을 보여줍니다.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이태리의 한 작은 섬에 숨어 살고 있는 과거의 명 가수를 찾아온 몰락한 매니저와 철없는 그의 딸, 그리고 가수와 결혼한 성공적이지 못한 사진작가 간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들 사이의 긴장감 넘치는 순간들을 잘 포착하고 있습니다. 일순간의 다툼으로 벌어지는 살인과 이후 그 살인이 덮이는 과정, 그리고 알고 보니 매니저의 딸은 17세인 미성년자였고, 모르는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이태리어를 유창하게 하고 있는 점등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고, 숨겨져야 하고, 또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상황들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영화입니다.
여기서 랠프 파인즈가 보여주던 느낌이 좀 더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영화가 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입니다. (연기가 성숙해졌다기보다는 원래 각 영화의 캐릭터 설정이 그러하며, 그것의 차이을 정확히 보여주는 배우의 연기가 무섭기까지 합니다)
그가 연기한 '무슈 구스타프' 역에 조니 뎁이 주요 후보였다는 루머도 있었는데, 조니 뎁이 주연을 맡았더라면, 감독의 주요 의도 중 하나인 funny를 표현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겠지만, 스타일(감독의 가장 큰 장점인)은 보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인기 있는 영화인 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영화입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슈는 왜 제목에 부다페스트가 들어가는가 와 영화에 등장하는 명화(가상의) "사과를 든 소년"입니다. 그다음에는 감독이 영화 크레디트에도 올린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오스트리아 작가인 것 같습니다.
물론 영화 세트 전체를 관통하는 'Jugendstil' 인테리어 스타일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일단 부다페스트에 대해 생각해 보면, 감독이 영감을 받아서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소개한 "슈테판 츠바이크"부터 연결이 시작될 듯싶습니다.
1. 우리에게는 오스트리아 작가로 알려진 슈테판 츠바이크가 태어난 당시에는 오스트리아는 사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었습니다. 이 헝가리의 수도가 부다페스트입니다.
이 부다페스트는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상당히 최근에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도나우강을 중심으로 서쪽에 위치한 부도와 구(old) 부도 그리고 동쪽에 위치한 페스토가 합쳐져 만들어 지죠. 감독이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을 우연히 읽고 나서, 작가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그러면서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는데, 왠지 작가에 대한 연구를 해 나가다가 이 오래된 느낌을 가진 새로운 도시 이름이 신기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느 영화 평론가 분이 '이 도시가 구세력 유럽을 의미하지 않나'라고 생각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감독 역시 그런 구세력(무슈 구스 타파의 세계)의 메타포로 부다페스트를 집어넣으면서, 풍자적인 의미를 더 담아 본 것 같습니다.
또한 미국 사회에서 유럽의 문화에 대한 향수는 사실 19세기 전후의 미국에 이식된(이민으로 인해) 유럽식 문화라는 생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순수의 시대라는 소설 또는 영화를 한번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우리에게 이태리 파스타라는 것의 의미가 실제 이태리에서 팔고 있는 authentic 한 파스타가 아니라 한국에 들어와 우리식으로 변형을 거친 한국식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19세기에 만들어져서 실제로 구세력을 상징하기 쉽지 않지만, 그러나 헝가리 이외의 대부분 영화 관객들에게 아주 오래된 역사를 지닌 도시의 이미지를 연결시킬 수 있는 '부다페스트'란 이름이 이런 부분에 대한 풍자로 적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실제로 부다페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각 지역은 상당히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2. 부다페스트는 합스부르크 왕가 시대에는 빈 못지않게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습니다. 단지 현재의 모습이 헝가리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의 수도라서 우리에게 그런 이미지를 가져오지 못하지만, 오히려 이런 미지의 신비함이 영화 속에 표현된 유럽 문화에 대한 감독의 풍자를 숨길 수 있는 좋은 배경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영화에서 주된 소재로 사용되는 <사과를 든 소년>과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표현된 이 명작(?)에 대한 설명을 보면
"a quintessential product of the Czech mannerist, Habsburg high Renaissance, Budapest neo-humanist style"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매너리즘은 르네상스에 시작된 새로운 사조(Manner 또는 style)를 유지 발전시키겠다는 후기 르네상스 시대에 시작된 미술 사조입니다. 이태리 및 독일 그리고 네덜란드 등으로 전파된 방식인데 이걸 체코와 연결시킵니다.
합스부르크 르네상스는 이 그림의 작가와 관련 있습니다. 인터뷰에서 밝힌 감독의 머릿속에 들어있던 작품의 원형이 되는 그림은 'Hans Holbein'의 작품들입니다. 독일 출신의 르네상스 화가는 영국 헨리 8세의 궁전 작가로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는데요, 이 독일의 위대한 르네상스 작가를 부다페스트와 엮어서 만들어 낸 단어인 것 같습니다.
Holstein 작품에 등장하는 모델들은 대부분 서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그림은 앉아 있는 모델이 나오며, 홀스타인의 그림에는 위대한 역사적 인물 모델이지만 영화에 그림은 무명의 소년인 대비 효과도 감독의 재미있는 풍자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 네오-휴머니즘은 너무나 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는 무슈 구스타브에 대한 풍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네오 휴머니즘은 다시 스테판 츠바이크로 연결되는 고리가 되는데, 그의 대표작에 <Ungeduld des Herzens> 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연민>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요, 이는 아마도 이 작품의 영어 번역본 제목이 <Beware of pity>인 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끔 번역서들을 보면서 변역 된 책의 제목이 선입견을 가져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소설의 내용은 연민이 아닌 마음의 불안함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위해 만들어진 Manner라는 태도의 기술과 현실에서 실제로 상대방을 인식하는 현실적 인지 사이에서 벌어지는 오류가 만들어 내는 마음의 혼돈이 책의 정확한 내용 아닐까 싶습니다. 길이도 길지 않고 한국인의 심리와도 잘 맞아떨어집니다. 독일어 제목은 영어로 직역하면 Impatience of the heart 정도인데, 그렇다면 '불안한 마음' 정도가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이야기가 옆으로 많이 나갔는데, 다시 네오-휴머니즘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면 감독은 스테판 츠바이크가 투시하고 있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감독의 투영을 무슈 구스타브에게 드러내기 위한 암시 일 것 같습니다.
복잡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썼는데, 사실 영화는 이런 것보다는 재미있고 예쁘게 즐길 수 있는 요소가
훨씬 더 많이 들어 있습니다.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제작진이 유튜브에 요리법을 밝힌 그 유명한 멘델 케이크와 공간의 분할, 색의 대비, 유럽풍 일러스트 만화 방식을 가미한 화면 구성 등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요소가 다양하게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 Jugenstil이라는 아르 누보풍의 화려한 인테리어,
멘델 케이크는 또 다른 감독의 재치가 들어간 풍자인 것 같습니다. 영화의 주요 장면이 촬영된 독일의 Görlitz의 유명 bakery에서 탄생시킨 이 케이크는 chou à la crème이라는 프랑스식 디저트를 독일식 cake decoration으로 마무리한 감독 방식의 유럽풍(유럽의 다양한 요소를 조합한)인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x5lZkpDxnc
영화를 위해 케이크를 만들어낸 파티시에가 비밀을 밝힌 동영상입니다.
위의 맛있는 장면은 드레스덴의 한 매장에서 촬영되었다고 합니다. 독일 여행을 하다 보면 그들의 화려함에 많이 놀라게 됩니다. Bauhaus란 이미지가 독일에 너무 강하게 붙어 있기 때문에 독일에 대한 선입견은 항상 실용적이며 검소하다는 것인데, 사실 낭만주의를 창조해낸 독일이라면 꼭 실용적인 디자인만 있으란 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드레스덴은 그 유명한 마이센 도자기를 만드는 마이센을 다스리던 작센 제후의 중심 도시이기도 하죠. (이런 이유로 독일의 앤틱 샵을 방문하시면 생각보다 무척이나 화려하고 예쁜 소품들을 많이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가 촬영된 Görlitz는 독일과 폴란드가 붙어있는 경계 부분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이 곳이 중요 촬영장이 된 주된 이유는 그곳에 있던 오래된 백화점 건물 때문인데요, 영화에서 호텔의 내부 풍경으로 이 백화점의 내부가 사용됩니다. 이 백화점 건물과 내부 인테리어가 위에서 설명드린 Jugendstil 스타일로 지어졌습니다.
2차 대전 중에 연합군의 폭격으로 독일 내 대부분의 주요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데, 다행히 이 백화점 건물은
전쟁 중에 살아남아서 오리지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백화점으로 사용되던 건물이 영업 종료가 되어 폐쇄된 후 감독의 눈에 띄어
이런 이국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게 되는 거죠.
영화에서는 과거의 영화로운 시절 호텔의 모습과 영화 속 현재 시점으로 바라보는 낡고 오래된 호텔의 모습이 번갈아 등장합니다.
그중에서 화려한 과거의 호텔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데요,
엘리베이터 내부의 모습입니다.
유광의 Red 배경과 호텔 직원들 유니폼의 퍼플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데요, 이런 멋진 색상의 조합이
실생활과 연관된 인테리어에서도 가능할까요?
유사한 색계열을 사용한 영화 <싱글맨>의 세트 장식입니다.
유사한 색상으로 마감을 한 인테리어 예를 인터넷에서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영화에서 보여준 색상의 조합을 이용해 실제 인테리어에 적용할 경우, 강한 색들의 조합이기에
Matte 한 마감이나 소재를 선택한다면 의외로 다양한 느낌의 인테리어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 Red는 grand, luxury 그리고 exotic을 보여주는 메인 색조로 사용됩니다.
붉은색이 투우장에 올라온 황소만 흥분시키는 건 아닌가 봅니다.
Red carpet이 쭉 깔려 있는 호텔의 메인 로비는 게스트로 하여금 마치 스타가 되어 레드 카펫을 걸어가는
듯한 환상을 갖게 할 만한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계단 위로 컨시어지가 있고 계속해서 옆으로 뻗어 있는 계단이 마치 천국을 향한 우리의 욕망을 실현시켜 주는 듯합니다.
웨스 앤더슨은 영화 속에서 자연광과 인공광이 오버랩되는 이미지를 참 잘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위의 사진은 오른쪽 창으로 자연광이 비치는 가운데, 복도의 천장에 연이어서 상당히 현대적인 조명을 사용하고 있는데, 백색의 인공조명이 레드톤과 어우러져 도어나 몰딩의 노란색톤을 훨씬 블링블링하게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붉은 계열로만 가득 찬 공간에 다크 한 느낌의 소파로 분위기를 중화시켜 줍니다.
로열 텐넨바움의 세트 인테리어 모습입니다. 여기서도 자연광이 들어오는 가운데 인공조명들이 사용되면서 벽면의 색상 등을 좀 더 부드럽고 은은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몇몇 장면들을 통해 다양한 인테리어의 아이디어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장면 장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쁜 컵케익들을 준비하고 베르가못 오렌지향이 은은하게 풍겨 나는 얼그레이 홍차를 곁들여서 천천히 다시 한번 음미해 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