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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Jan 28. 2019

My way in Sideways

와인 한잔이 생각날 때

 와인을 따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따야 할 일이 생겼다는 건 셀러 안에 있는 테이블 와인 중 하나를 꺼내는 것과는 좀 다른 상황입니다. 이것저것 고려하다가, 오랫동안 묵혀 놓았던 paul jaboulet aîné hermitage la chapelle 2004년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 와인은 좋은 빈티지에서는 와인의 역사를 여러 번 썼던 와인입니다.

로버트 파커가 3번이나 100점 만점을 주었다는 역사가 있습니다. 물론 제가 가지고 있던  2004년은 그런 역사적인 빈티지는 아닙니다. 오히려 90년대 이후 무너져 버린 와이너리의 슬픈 역사로 인해 명성에 비해 많이 저렴한 편이었습니다. 오너가 바뀐 후 2003년부터 반등을 시도해 현재는 다시 예전의 명성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와인책에서 말하는 재미있는 궤변 중 하나가 보통의 와인은 뛰어난 빈티지를 사는 게 좋고, 위대한 와이너리의 와인은 나쁜 해를 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와인의 좋은 빈티지는 구입하기가 힘들지만, 가격이 상대적으로 착한 나쁜 빈티지의 와인에서도 이들이 그런 명성을 얻게 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째건, 제가 가지고 있던 와인들 중에 가장 좋은 것을 열었으니, 시음 소감을 주변에 자랑 좀 했는데, 그런 통화 중에 한 지인이 강남역에 와인바 '사이드 웨이'를 가보라고 합니다.   아직 가보진 않았는데, 이 제목이 재미있습니다. 사실 sideway라는 이름을 와인바에 쓰려면 이 영화를 모르고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바로 'Sideways'란 와인 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한국에서는 '사이드 웨이'로 알려져 있고요, 재미있게도 이 영화의 빈티지는 2004년입니다. (한국 개봉은 2005년입니다)


 한 친구의 결혼을 앞두고, 두 남자가 총각으로서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로드무비입니다. 캘리포니아의 vineyard를 배경으로 두 남자의 방황 그리고 여행 중 만난 여자들,  또 다른 실패, 그로 인해 한 명의 인생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고. 이런 줄거리를 가진 영화입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답게 현지에선 나름 인기가 꽤 높았는지, 영화 출시 이후에 캘리포니아에 피노누와 열풍(?)을 불러왔다고 합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메를로는 별로라고 하고, 피노누와를 더 높이 평가하는 바람에 캘리포니아 와인업계에 포도 수확량까지도 변화가 생겼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신대륙을 대표하는 미국은 구대륙 와인의 복잡함으로 생기는 와인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나의 품종을 위주로 한 와인을 많이 생산합니다. 프랑스도 부르고뉴 지방은 레드 품종으로는 피노누와를 고집하지만, 보르도는 다 품종에서 만든 와인을 서로 블렌딩 해서 최종 상품으로 만들어 내지요. 


 아 그렇다고 신대륙의 단일 품종 와인이 그 유명한 DRC의 와인들처럼 monopole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켄달잭슨의 경우 5군데의 빈야드에서 카베르네이 쇼비뇽 품종을 경작을 하며, 각각의 빈야드에서 수확한 와인으로 1차 와인을 생산하고, 이후 이 5개의 같은 품종인 하지만 다른 빈야드에서 만들어진 와인을 매년 상황에 맞춰 서로 블렌딩 해서 gran reserve와 vintner's reserve로 나누어 출시를 합니다. 예전에 켄달잭슨이 주최하는 와인 블렌딩 체험 및 시음회에 참가한 덕에 좀 더 와인 만들기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는데요, 솔직한 켄달잭슨측의 표현에 의하면, 블렌딩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최고의 상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최고의 효율을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A밭에서 나온 와인이 올해는 양이 적은데 반해 품질은 엄청 높고, B 밭에선 무난한 품질과 무난한 양이 또 C밭에선 이렇게 저렇게 나오게 되는 것을 무조건 품질 위주로만 블렌딩을 할 경우에 loss가 많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물론 훈훈한 마무리로 자신들이 운영하는 포도밭은 최고의 입지라서 어느 밭에서 나오는 포도이던지 상급의 베이스 와인을 만들어 낸다는 마케팅적인 발언도 잊지는 않더군요. 


 이렇듯 블렌딩은 하지만 보통 단일 포도 품종을 가지고 하는 이유는 네이밍이 편하기 때문인 마케팅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프랑스 와인들은 레이블에서 보이는 브랜드를 가지고 어떤 포도인지를 추정하는 게 쉽지 않은데, 이런 것들이 오랜 역사 동안 자연스럽게 학습된 유럽의 와인 애호가들과 달리, 미국, 호주 및 아시아처럼 신생 시장 소비자에게는 암호 해독기가 필요할 정도로 어려울 때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산 와인들은 (대부분의 신대륙 와인은 미국 스타일을 따라 하고 있는데요) 메이커 그리고 포도 품종 그다음에 등급 정도를 간단하게 보여주는 네이밍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얘기한 켄달잭슨을 예를 들면 '켄달잭슨 그랑 리저브 카베르네이 쇼비뇽' 이렇게 상품명을 정하게 되는 거지요.


 사실 영화에서는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하면서 주인공이 피노누와에 집착하고 있는 걸 보여주는데, 피노누와는 껍질이 얇고 알이 작은 포도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보다는 좀 더 시원한 워싱턴이나 오레곤의 피노누와가 유명합니다. 그런데 워싱턴주나 오레곤주를 배경으로 영화를 구성하긴 좀 힘들었겠죠. 


 그게 아니면,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이 주인공을 위해 적절치 못하지만, 결국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서 그것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캘리포니아의 피노를 선택한 걸까요?


 이렇듯 영화는 묵묵히 나의 길 (My way)을 걷는 한 명의 남자를 보여주기 위해 그가 인생에서 빠져버리는 여러 샛길들(Sideways)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생각하다 보니, 또 다른 두 명의 남자가 여행을 떠나는 영화가 떠오릅니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트립 투 이태리'입니다.  최초에는 BBC에서 미니 시리즈로 제작한 것을 편집해서 영화 버전으로도 출시했습니다. 1편은 영국 국내, 2편은 이태리 그리고 3편은 스페인 이런 식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극 중의 설정은 '옵서버'지로부터 영국의 시인 셸리와 바이런의 자취를 따라 이태리 여행기를 의뢰받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영화 속 두 주인공은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맛있는 이태리 음식을 먹으며, 영국의 유명 배우들을 흉내 내고, 영국식의 블랙코미디를 수행하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비행기 사고로 눈 덮인 산맥에 조난당했을 때 부상을 당해 죽어가는 사람밖에 없다면 그 사람을 먹을 수 있겠냐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그 부상당한 사람이 영국의 유명한 육상선수라면 그 다리는 기꺼이 먹겠다는 한 주인공의 폭탄선언에 상대방은 만일 육상선수가 아니고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라면 어떻겠냐고 합니다. 어떤 대답이 나왔을까요? 궁금하시다면 직접 한 번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여행의 출발은 'Piemonte'지방에서 시작합니다. 6일 동안 6끼를 먹는 식도락 영화의 첫 번째 레스토랑은 바를로의 중심지 Monforte에 위치한 Trattoria della Posta입니다. 



 토리노를 중심도시로 하는 이 피에몬테 지방은 이태리 와인의 왕이라 불리는 'Barolo'의 고향입니다. 또 한국에서 인기가 높은 모스카토 다스티가 바로 Asti지역을 중심으로 나는 청포도를 가지고 만든 스파클링 와인입니다.

 지도에서 보이듯이 알프스 산에서 내려오면서 바다에 접한 제노바 위까지의 지역인데, 한국의 전라도가 그러하듯이 산과 바다가 만나는 곳답게 다양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미식의 중심으로 유명합니다. 거기에 마치 부르고뉴 지방처럼 작은 단위의 포도밭을 중심으로 한 최상급 바롤로까지 와인 여행을 떠나기에 무척이나 적합한 동네입니다. 한국에도 들어온 이태리의 유명 식료품점 브랜드인 'Eataly'도 바로 이 토리노에서 그 첫 매장을 열었고요. 이태리의 한 친구에 의하면, 원래 토리노에 유명한 식료품 장터가 있었는데 eataly의 창업자가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한 거라는 말도 하더군요. 


 사실 eataly는 역사가 그리 오래된 식료품점은 아닙니다. 이태리 전역과 글로벌 확장 전략 덕분에 우리에게도 친숙해진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데, 이태리에서 유서 깊고 유명한 식료품점으로 'Peck'이 있습니다. 많은 미식 관련 매체에서 'the temple of Italian gastronomy'로 소개되고 있는데, Gourmet란 종교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면 꼭 한번 성지 순례로 들러 보실 만한 곳입니다. 밀라노에 위치한 메인 매장 건너편에는 레스토랑도 직접 운영하고 있어서 상당히 독특한 메뉴들을 접해 볼 수 있는데요, 제가 방문했을 때는 야생 토끼 요리가 오늘의 스페셜 메뉴였습니다. 육류이지만 고기의 색이 white이기 때문에 Dry 한 white wine이 잘 어울린다고 추천을 받아서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 peck도 한국에 들어와 있는데요, 작년 초에는 펙 매장에서 와인을 사면, 플러스 차지 없이 옆에 있는 펙 카페에서 마실 수 있게 해주는 프로모션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프로모션이 계속된다면, 와인 좋아하시는 분들이 한번 들러볼 만한 곳 아닐까 싶습니다.


 위에서 피에몬테의 모스카토 다스티를 말씀드렸는데, 사실 이태리 역시 구 대륙의 와인 강국답게 유명한 Red 외에도 다양한 마실만한 white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베네토 지방에 가셔서 로컬 레스토랑에 들릴 기회가 있으시다면,  맛있는 이태리 젤라토에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을 부어주는 디저트를  꼭 경험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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