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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Jan 23. 2019

뼛속으로 봄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Winter is coming

 오랜만에 동네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방학이라 그런지 빈자리 없이 사람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간신히 비어있는 소파 하나를 찾아서 겉옷을 벗어 두고, 옆의 서가로 눈을 돌리니 분류 번호 '100' 대의 철학책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리저리 서가를 둘러보다가 눈에 들어온 책은 '철학하는 철학사 세상을 알라'였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도 모르게 팔이 뻗어나가 집어 든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던 중, '장미의 이름'이란 편이 중세철학 분류 밑에 들어 있습니다. 갑자기 흥미가 생겨서 책장을 넘겨 해당 페이지를 펼쳐 보았습니다. '유명론'에 관한 설명을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유명론'적인 관점에서 설명을 하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이 책의 저자는 '유명론'을 설명하는 챕터의 제목으로 '장미의 이름'을 쓰는 것 같습니다. 단순한 철학사가 아닌, 철학사를 연대기적으로 따라가면서 각 철학 사조에 대한 작가의 견해와 해석이 들어 있는 독특한 방법이 마음에 듭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이야기를 바로 며칠 전에 올렸는데 다시 이렇게 '장미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니, 최근에 읽은 제 '0'호가 또다시 떠오릅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걸리는 표현이 하나 있었습니다. '뼛속으로 봄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여자 친구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는 표현인데, 스토리 흐름에 해골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과 연결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 표현은 저한테는 많이 억지스러워 보였는데, 사랑은 혈관을 타고 흘러가는 게 아니던가요? 사랑에 빠진 피 끓는 청춘들에게 뼛속이란 단어는 좀 이상합니다. 젊음도 열정도 다 혈관 안에서 벌어져야 하는 감정들 일 텐데, 왜 이렇게 썼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의 맥락상, 무솔리니의 해골 이야기와, 봄이 된 소설 속 계절의 변화 이런 것들도 그 이유였겠지만, 논리적인 에코의 입장에서 사랑이란 걸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는 것은 우리 몸에 생겨난 어떤 신호가 뇌에 전달되고 그걸 통해서 사랑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면, 신경물질이 통과하는 뉴런들은 척수에 들어있고, 척수는 바로 뼛속을 통해서 뇌까지 연결이 되고 있는데 이런 것을 고려해서 쓴 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에코의 묘사가 더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그리 합리적인 건 아니라는 생각에 저는 그래도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게 마음에 듭니다.


 여하튼, 저에게는 뼛속이란 말을 들으면  봄보다는 겨울이 먼저 떠오릅니다. 작년 12월 예년과 달리 갑작스레 추웠던 어느 날 모임을 위해 밤늦게까지 밖에 있었다가, 아주 오래전 스코틀랜드에서 겪었던 추위가 생각났습니다. 


 때는 1990년대 후반 어느 해 2월이었습니다. 배낭여행을 하던 중에 무모하게도(England 사람들 생각에 의하면) aberdeen까지 꾸역꾸역 올라갔던 저는 저녁 5시가 지난 쯤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뼛속까지 얼어붙는 느낌이었는데, 여분의 아우터를 꺼내서 2벌의 다운재킷을 껴입고 있었음에도 몸으로 스며드는 한기의 느낌은 정말 말로 표현이 어려웠습니다.


 이때의 경험이 묘사된 것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요, 이 뛰어난 작가는 어떤 마법의 생물체의 특징을 이 추위 속에서 발견한 듯이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해리포터'에 나오는 '디멘터'입니다. 디멘터에 둘러 싸여 있을 때의 묘사를 보면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움과, 희망과 행복이 사라지는 절망감'이라고 나오는데, 작년 12월 한국의 추위나, 그 옛날 aberdeen의 추위도 저에겐 딱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왠지 그 시간이 영원히 멈춰진 것 같고, 이대로라면 절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


 스코틀랜드의 겨울은 우리네 겨울과는 좀 다릅니다. 차갑고 습한 바람이 두꺼운 겉옷을 지나서 옷과 제 피부 사이로 자리를 잡고 온 몸을 결박한 후, 뼛속으로 서서히 두려움을 밀어 넣습니다. 아마도 그네들도 이런 추위에는 해답이 없지 않았을까요? 그러다가 나온 것이 모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wool은 보온 효과 외에도 습기 제거 효과도 뛰어난 편이니, 습기 찬 추위 속에 wool로 짠 옷을 입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었을 겁니다.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스코틀랜드는 wool제품으로 아주 유명했었고, 현지에서 만난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 들은 이유는 그 유명한 추위와 좋은 물 덕분이라는 대답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이 사람들은 위스키도 그래서 스코틀랜드산이 세계 최고라고 하더군요. 현지에선 얼음이 아니라 얼음만큼 차가운 물과 위스키를 섞어서 많이 마신다고도 합니다.


 wool제품을 이야기하다 보니, 비슷한 특징을 가진 하지만 조금 더 고급스러운 cashmere가 떠오릅니다. 

 cashmere는 특히나 요트를 즐기는 유럽의 리치들에게 사랑을 받던 아이템이었는데요,  습기를 머금은  차가운 바닷바람 속에서 cashmere로 만들어진 니트들이 활동성과 보온성에서 적합할 테고, 또 이 소재들로 만들어진 옷감은 그 고급스러운 단색의 질감으로 유명한데, 그 또한 리치들의 취향을 정확이 저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cashmere니트로 유명한 이태리 브랜드 'Loro piana'는, 그래서인지 소유주가 항상 요트에 대한 사랑을 엄청나게 흘리고 다니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우리에게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이 브랜드는 한 때  Fortune 지에서 뽑은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한 유지될 극강의 3대 브랜드에 뽑힌 적이 있습니다. 

 무슨 무슨 브랜드인지 궁금하시다고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잡지에서 뽑은 3개 브랜드명은 이 글의 끝에 알려 드릴게요.


 소제목을 제목에 들어있는 봄의 이미지에 반어적으로 붙여봤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겨울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붙이고 나니 많은 분들이 '왕좌의 게임'을 떠올리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솔직히 저도 제목을 쓰면서 '왕좌의 게임'에 winter is coming이란 대사가 떠올랐거든요. 드라마 속 북부 사람들이 계속 반복적으로 많이 쓰는 대사인데요, 장벽의 바로 아래에 있는 이 북쪽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잉글랜드 북부 사투리를 많이 사용합니다. 제 추측에는 드라마를 만들던 제작팀이 극의 배경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그리고 저 멀리 스페인과 지브롤터를 넘은 북부 아프리카를 염두에 두고 연출을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유럽 지도를 꺼내 들고,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과 장소를 한번 비교해 보시길.




그럼 이제 3 브랜드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바로 샤넬, 에르메스, 로로 피아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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