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여성작가들 특히나 쉬르레알리즘 사조의 작품을 남긴 작가들에 대한 소개가 많이 늘고 있습니다. 단순히 선언과 투쟁으로만 이루어지던 남녀평등을 향한 흐름이 특정한 단어에 대한 인지로서만 머무르던 단계를 지나 이젠 점차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인식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과정에서 여성이라서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해 잊혀 있던 작가들에 대한 재발견과 또 코로나를 통해 다시 부쩍 인기를 끌고 있는 쉬르레알리즘에 대한 재인식이 시기적으로 잘 부합된 듯 보입니다.
며칠 전 Tate 갤러리의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Dorothea Tanning의 <Eine Kleine Nachtmusik>이 소개되었는데
1943, Oil 40.7 × 61 cm
오래된 저택의 2층 복도에 서있는 두 소녀 옆으로 시들고 있는 거대한 해바라기가 누워있는 아주 독특한 광경을 묘사한 이 작품에 대해서 작가는 어린이들의 꿈처럼 불길하고 순진한 어리숙함이 담겨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재미있게도 그 제목을 모차르트의 인기곡인 <세레나데 13번>에서 따오고 있었습니다.
2악장에서 흘러나오는 현의 선율이 무척이나 아름다운데요, 그렇기에 작품이 드러내는 밤의 이중성이 더욱더 강조된 느낌 아닌가요?
옷이 다 풀어진 채 힘에 겨워 벽에 기대고 있는 첫 번째 소녀와 마치 식물로 변하려던 모습의 두 번째 소녀 그리고 그들 앞에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무엇인가로 변해서 소녀들을 괴롭혔을 듯한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해바라기가 만들어 내는 3이란 기호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린 시절 나의 꿈속에 등장했던 검은 형체, 너무 두려운 나머지 미처 그 형태도 확인하지 못한 채 그저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기만 했던 기억인데, 그림 속의 소녀들은 용감하게 자신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과 마주 서고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이 곡은 또 다른 유명한 작품 속에서도 밤의 고요함이 두려움으로 바뀌어 갈 것이라는 암시를 주기 위해 사용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선율이 깔리고 정막이 감도는 우주선의 정경이 펼쳐지는 중에 리플리(시고니 위버)가 선장을 찾습니다. "Where is Dallas?" 그 순간 선장은 우주선에 탑재되어 있는 탈출용 셔틀 나르시스 안에 누워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영화의 어두운 결말을 암시하는 이 순간과 <EIne Kleine Nachtmusic>가 묘하게 어우러지며 밤의 적막과 무의식 속에 담겨있는 제어할 수 없는 두려운 악몽을 동시에 표출시키고 있는 멋진 장면이네요
테이트 갤러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는 중에 미술관이 그녀의 대표작으로 소개하고 있는 <Birthday> (1942)가 눈에 들어옵니다.
마치 거울에 비쳐서 증폭되는 모습처럼 열린 문이 지그재그로 계속해서 뻗어나가고 있고,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고 있는 주인공은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앨리스를 떠오르게 합니다. 스스로를 모델 삼아 그렸다고 하는데, 자연으로 또는 최초의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여성의 모습은 문명을 벗어던진 채 알몸이 되어가고 있고 동시에 나무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에즈라 파운드의 시 <A Girl>이 떠오르네요.
A Girl
The tree has entered my hands,
The sap has ascended my arms,
The tree has grown in my breast -
Downward,
The branches grow out of me, like arms.
Tree you are,
Moss you are,
You are violets with wind above them.
A child - so high - you are,
And all this is folly to the world.
아무리 되풀이 읽어도 도무지 어떤 형상도 떠오르지 않던 이 시를 도로시아 태닝의 그림을 통해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