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Royal Academy에서 트레이시 에민과 에드바트 뭉크의 전시회가 열린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물론 현재 영국의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전시회는 중단되었지만 RA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들과 그녀가 직접 고른 함께 전시될 에드바트 뭉크의 작품들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전시회의 전체적인 주제는 '슬픔'과 '외로움'입니다. 네온을 이용해 사랑과 관계 등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예술로 승화시켜왔던 트레이시 에민은 하지만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 사랑과 관계들이 던져주는 아이러니를 외로움과 슬픔이라는 감정으로 치환시키고 있습니다.
Tracey Emin,I am The Last of my Kind, 2019. Acrylic on canvas. 182.3 x 120 x 3.5 cm.
Traped, Afraid, Survive, Last, End of me 같은 단어와 구절들이 Love, Trust들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자화상인 듯 보이는 여성의 누드는 고개를 떨군 채 자신의 몸을 지탱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이는 그녀의 머릿속을 짓누르는 의심과 불확실성들이 세상 무엇보다도 무거운 무게를 지녔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무거움'과 '가벼움'
이렇듯 머릿속에서 나의 에고가 만들어 내는 관념적 단어들이 가지는 폭력성, 그로 인한 환청과 소음이 불러오는 고통은 뭉크의 <절규>에서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울려 퍼지는 고통의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귀를 감싸 보지만 과연 머릿속을 울리는 절규를 막을 수 있을까요?
You Kept it Coming, 2019. Acrylic on canvas. 152.3 x 152.3 x 3.5 cm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난 빈자리를 그리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요, 트레이시 에민은 그 부재를 사랑의 행위와 엑스터시가 이미 지나간 과거임을 선언하는 방식을 통해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에게 황홀감을 선사해준 그 상대가 더 이상 내 곁에 없는 외로움과 안타까움,
뭉크 역시 자신의 실패한 사랑을 아이러니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The Death of Marat, 1907 Oil on canvas. 153 x 149 cm
이 그림은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 Jacques-Louis David가 그린 1793년작 <Death of Marat>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는 역사적 내용에 기반한 회화작품으로 유명한데요, 이 그림은 프랑스혁명 당시 리더였던 장 폴 마라를 지롱드 당의 지지자인 샬롯 코르데가 마라의 욕실까지 들어가 암살한 사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신념으로 살인이 벌어진 현장을 다시 그린 뭉크는 칼에 찔린 마라가 마치 여인에게 상처 받은 자신과 같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In The Dead Dark of night I wanted you 2018, Acrylic on canvas. 122 x 122 x 3.5 cm
트레이시 에민이 그린 이별 이후에 홀로 남겨진 모습에서 제목이 암시하듯 죽음의 냄새가 풍깁니다.
인생에 있어서 사랑과 이별의 교차점은 삶과 죽음이 갈라놓는 교차로와는 얼마나 유사하고 또 얼마나 다른 지점일까요?
202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루이스 글룩의 시가 그것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Crossroads
By LOUISE GLUCK
My body, now that we will not be traveling together much longer
I begin to feel a new tenderness toward you, very raw and unfamiliar,
like what I remember of love when I was young –
love that was so often foolish in its objectives
but never in its choices, its intensities
Too much demanded in advance, too much that could not be promised –
My soul has been so fearful, so violent;
forgive its brutality.
As though it were that soul, my hand moves over you cautiously,
not wishing to give offense
but eager, finally, to achieve expression as substance:
it is not the earth I will miss,
it is you I will miss.
교차로
나의 몸이여, 이제 우린 더 이상 함께 나아갈 수 없는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너를 향한 너무나 원초적이고 익숙지 않은 낯선 가해들
마치 기억 속에 자리한 어린 시절 사랑의 파편들처럼
사랑은 아주 자주 자신의 목적에 관해 바보스러웠지만
그러나 결코 스스로의 선택과 강렬함에 대해선 아니었지.
너무 많은 것들이 미리부터 요구되지만, 그중엔 약속조차 할 수 없는 것들 역시 많구나.
나의 영혼은 이제껏 두려움과 공포에 잠겨 있었다;
그 잔인함을 용서하자.
마치 이것이 바로 그 영혼인 듯, 내 손은 조심스레 너의 위로 움직인다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길 바라지만
마지막으로 간절히 본연의 모습을 보고 싶구나
내가 그리워할 것은 이 세상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