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 엘리엇의 <황무지> 중에서
시간은 흐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작년 4월 1일에 만우절에 관한 글을 쓴 기억이 마치 엊그제 같은데 1년이 흐르고 또다시 4월 1일이 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milanku205/146
작년에 썼던 글을 읽어보니, T.S 엘리엇의 <황무지>에 관한 소개가 잠깐 나오는데, 시작 부분에 등장하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에 가사를 차용한 부분에 대한 언급이었습니다.
T.S 엘리엇은 시를 통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성들을 경험하게 한다는 느낌이 강한데, 작년의 경우에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통해서 귀로 즐기는 청각적 심상이 강하게 느껴졌다면, 올해에는 코로 느끼는 후각적 심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먼지 한 줌에 담긴 공포를 보여드리죠.
신선하게 불어오는 순풍은
집으로 향하네
오, 아일랜드의 소녀여
너는 어디에 있는가
"일 년 전 당신은 나에게 히아신스를 가장 먼저 주었지요"
"사람들은 저를 히아신스 걸이라고 부르곤 했죠"
-그러나 우리가 히아신스 정원에서 돌아온 뒤에
당신의 팔 그득히, 머리카락은 젖은 채로, 나는 차마
말을 할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없었던, 나는 마치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
빛의 한가운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침묵을
바다는 고요하고 잔잔하도다
(제가 한 시 번역이 마음에 안 드신다면, 시인 황동규 선생이 번역하신 <황무지>의 부분과 해설을 다음 기사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뭐 해설은 제 생각과는 많이 다른 편입니다만)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I&nNewsNumb=202004100052
이른 봄 아내가 히아신스 구근을 사다가 화분에 심었는데 탐스럽게 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면서 온 집안에 히아신스 향기가 가득 찬 경험을 하게 되었던 것이죠.
국내에서는 그리 흔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지만, 영국에서는 이 히아신스 꽃향기가 봄을 알리는 징표로 아주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위의 시구절에 등장하는 일 년 전 가장 먼저 히아신스를 주었다는 표현은 새봄을 가장 먼저 알려준 꽃향기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히아신스와 히아신스 걸은 절망을 뚫고 다시 솟아오르는 새로운 희망의 향기를 상징하는 것일 텐데, 안타깝게도 그 풍부한 향기는 시에서 과거 시제로 표현되며, 기억 속에 저장된 회상으로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시의 구절 중에 빨간색으로 표기되어 있는 부분이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나오는 "젊은 선원의 노래"중 일부분입니다.
조선일보 기자분께서 아마도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전혀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기사에 보면 3막에서 나오는 부분이라고 쓰셨는데, 사실 이 부분은 오페라의 1막 전주곡이 끝나면서 곧바로 등장하는 1막 제일 첫 부분입니다.
아일랜드의 공주 이졸데는 콘월의 왕 마르케와 정략혼인을 맺기 위해 아일랜드에서 배를 타고 콘월을 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배에 타고 있는 젊은 선원이 부르는 노래 속에는 풍랑이 거센 바다로 나아가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안전한 귀향을 희망하는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시가 인용한 부분은 그러니까 고향(과거)에 대한 향수를 청각적으로 떠오르게 하는 장치였던 것이죠.
<황무지>가 발표되던 당시의 문단과 예술 애호가들 그리고 지성인들 사이에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어마어마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으니 (현재 상황에 비유해 보자면 BTS의 노래 가사를 어떤 시인이 시에 삽입한 것으로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시를 읽다가 가사를 발견하는 순간 우리 머릿속으로 노래의 멜로디와 분위기가 청각적으로 정확하게 각인이 되고 있겠죠) 이 시에서 독일어 가사를 읽는 순간 독자들의 머릿속으로는 낭창낭창한 테너가 부르는 아일랜드 민요풍의 이 노래 멜로디와 리듬이 곧바로 떠올랐을 것입니다.
(동영상에서 10:30 부근 부터 들어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SF4zN-Okonc
그러니까 제가 인용한 부분의 시 구절을 보면, 황폐해지고 참혹해진 사회의 현실을 황무지에 비유한 시인이 황무지에 가득한 먼지 속에 담겨 있는 침울한 역사를 언급하고 나서, 그 이전의 시대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희망 등이 묻어나는 구절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 따뜻하고 풍요롭던 (히야신스의 향기가 가득 찬 희망의 봄날) 시절 자신들(인간)이 미래에 다가올 참혹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음에 대한 후회가 드러나 있는 것이죠.
이렇게 보면 T.S 엘리엇은 저 짧은 시구 속에 동경과 희망, 절망과 회환 그리고 향수라는 다양한 감정을 멜로디와 리듬 그리고 향기를 통해 표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왜 이 시인이 그토록 대단한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나이를 먹었는지, 제가 팔로잉하는 트위터의 글 중에 만우절의 농담보다는 엘리엇의 시구가 더 눈에 들어오네요. 오늘 저녁엔 오랜만에 제가 제일 사랑하는 오페라 3편 중의 하나인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천천히 감상해볼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