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너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가곡 음반이 출시되었습니다.
이미 유럽 투어를 거쳐 2019년 국내 공연도 함께 했었던 두 연주자였는데요, 이번 녹음에는 바그너 피츠너 그리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곡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평소 조성진의 스타일을 생각해 봤을 때, 바그너의 <베젠동크 가곡>과 음반의 타이틀로 사용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 중 "Im Abendrot"를 어떻게 연주했을까 무척 궁금했는데요,
특히 바그너의 <베젠동크 가곡>은 원래 피아노와 여성 성악가를 위한 곡으로 작곡되었다고 하지만 보통은 펠릭스 모틀의 관현악 편곡 버전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Wagner: Wesendonck Lieder, WWV 91 - III. Im Treibhaus>
https://www.youtube.com/watch?v=MShcLo86ikM
여성을 위한 가곡을 남성 바리톤이 그리고 다채로운 색감으로 편곡된 관현악 반주를 고요하게 침잠하는 스타일인 조성진의 피아노로 듣는 경험은 상당히 독특했습니다.
고전음악 전문 스트리밍 앱인 IDAGIO에서 찾아보니, 바그너 스페셜리스트인 Kirsten Flagstad가 지휘자로 주로 활약한 Bruno Walter 그리고 가곡 전문 반주가였던 Gerald Moore와 각각 함께 연주했던 음원이 있어서 비교하며 들어봤는데요,
https://www.youtube.com/watch?v=aSq_47ba7HM
가장 대표곡인 3번째 곡 "Im Treibhaus-온실에서"를 들어보면 (5분 58초 경부터 시작하는) 발터는 명지휘자답게 아주 폭이 넓고 감각적인 리듬으로 피아노를 끌고 나가는 반면, Gerald Moore는 본인이 주로 했던 슈베르트 가곡의 반주처럼 아주 단순하고 간결하게 처리하고 있는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성진은 이 두 명이 보이는 장점을 다 드러내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뛰어난 연주 기술을 바탕으로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반주자의 감정이입이 되는 것을 제한함으로써 바그너의 스케일 큰 가곡을 오히려 섬세하게 부르고 있는 마티아스 괴르너의 의도에 잘 부응하고 있습니다.
음반의 타이틀 곡이자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Im Abendrot>는 특히 반주 부분의 관현악이 아주 매력적이라 노래가 시작되기 전의 관현악 부분만 따로 떼어내서 영화 배경음악 등으로도 사용되곤 하는데, 이 부분의 조성진의 해석도 아주 독창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절절하게 진행되는 보통의 관현악 연주와 달리 첫 소절부터 낭랑하고 힘차게 상쾌한 바닷바람이 오렌지색으로 변해가는 저녁노을을 시원하게 어루만지는 느낌으로 시작하다가 바리톤의 음성이 노래를 시작하면서 좀 더 사색적이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변해가면서 점차 음성의 빈자리를 교묘하게 메워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무래도 피아노란 악기 하나로 관현악단이 묘사하는 전체적인 느낌을 묘사해야 하니 소리의 성격을 변화시키며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MzpRBEW_uc
쇼팽 콩쿠르란 큰 왕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발견하기 위해 다양한 길을 걷고 있는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