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덕분에 지상파 방송에 올라온 멋진 영상 광고 한 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LG OLED TV Evo의 광고인데요, 검색을 해보니 영국 광고회사에서 제작을 한 것으로 나오는데,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메테를링크의 <파랑새>등을 통해 이제는 하나의 문화원형으로 자리 잡은 서사구조를 광고의 시작과 마무리에 사용하고 있고, 다양한 현대 미술의 요소들을 이미지 메이킹에 접목하며 아주 예술적인 화면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몇 년 전 ssg가 광고를 만들며 에드워드 호퍼를 차용했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화면의 구도나 주요 컬러 스킴 (Color Scheme-색상 배합)등을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서 가져왔을 뿐이지, 작가가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는 미학은 거의 고려되지 못한 약간은 어설픈 차용이었죠.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광고의 이미지와 호퍼의 작품을 비교하며 왜 광고 제작진들의 호퍼 작품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고 이야기한 것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아마도 이런 비교가 호퍼 작품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반면에 이번 LG tv 광고는 광고 집행 측에서 전혀 어떤 아트 작품의 이미지나 개념들을 오마주하고 있는지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전체적인 완성도도 높고 각각의 아트 작품에서 가져온 이미지들을 병치시키며 자연스럽게 쉬르레알리즘(병치라는 단어가 무의식적으로 쉬르레알리즘을 떠오르게 하지 않나요?)적인 진행을 통해 광고에서 소구 하고자 하는 서사를 멋지게 구현해 내고 있습니다.
일단 링크를 통해 전체 광고를 한번 보시고, 각 부분의 이미지들과 연결되는 아트 작품과 작가 설명을 드리면서 제목처럼 광고를 꼼꼼하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30초 풀버전 동영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dnF66iooM0
잘 보셨나요? 그럼 처음부터 프레임별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장면은 항상 어딘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문이 열리는 느낌이 들곤 하죠.
길게 뻗은 호텔의 hallway의 이미지와 함께 미스터리와 서스펜스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
영화 <샤이닝> 이후 우리는 이런 긴 복도의 이미지에서 초자연적이고 불안한 미래를 상상하곤 합니다
영화 <샤이닝> 중
다양한 기술이 등장해서 저마다의 장점을 외치며 미래의 TV를 광고하는 현 상황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도대체 어떤 TV를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지 불안할 수밖에 없죠.
그렇기에 이 광고의 초반 시작은 시선을 잡아당기는 미스터리 한 이미지들을 통해 관객에게 불안감이 조성되게 하고 있습니다
어라! 그런데 복도가 갑자기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변해 버립니다.
점점 크기가 작아지는 네온빛의 사각형이 보여주는 복도의 끝에는 어딘가 새로운 세상으로 연결되는 문이 있을 것 같지 않나요?
Neon은 사실 광고의 목적을 갖고 업장의 간판 등에 사용되던 장치였죠.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지를 향하던 대중들의 시선이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경쟁으로 인해 고개를 들고 머나먼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이런 시선의 이동은 당시 사회 전반에 다양한 사고의 변화를 불러오는데, 팝 아트 등과 맞물리며 Neon, 즉 빛이 미술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는 Dan Flavin 등을 들 수 있는데요,
사각형의 불빛이 상징하는 새로운 세계를 향하는 portal(gate 문)의 이미지, 다양한 빛의 색을 교차시키며 연빛이 가진 영속성을 드러내는 이미지 등, Dan Flavin은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사상을 향한 당시 사회의 욕구를 새롭고 다양하게 형상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영상은 이런 Neon Art가 담고 있는 미학을 광고의 내러티브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스토리를 진행시켜나갑니다.
네온이 이끄는 곳에 도착해서 도어의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고 있는 주인공, 이제 앨리스처럼 신비한 나라로 출발하게 되나요?
도어의 손잡이는 가장 직관적인 새로운 세계로의 연결을 의미하는 기호로 사용되지요.
손잡이를 등장시켜 래빗 홀을 열고 있는 이미지가 사용된 예술작품을 떠올려보니 도로시아 태닝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문을 열고 새로운 세계로 뛰어 들어간 주인공의 눈앞에는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펼쳐집니다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안을 헤엄치고 있는 야광물고기들
스스로 빛을 내는 OLED 소자를 설명하기 위해 스스로 발광하는 야광물고기들의 이미지와 불 꺼진 자동차들을 병치시켜 쉬르레알리즘 아트를 떠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적인 사고 속에 스스로 발광하는 OLED의 의미를 각인시키려는 것일까요?
새로운 세계가 보여주는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 이미지를 지나면 거리의 한 복판에 신비한 lighting cube가 등장합니다.
어딘가 다른 차원 또는 다른 세계에서 온 듯한 묘한 정육면체의 형상, 그리고 공간에 생겨난 계단들
이 모습은 사실 두 명의 예술가를 떠오르게 하는 데요,
우선 제임스 터렐의 Afrum I (1964)을 한번 보실까요?
빛의 효과를 이용해 마치 물리적인 육면체의 조각이 우리 눈앞에 존재하는 것 같은 효과를 부여하는 제임스 터렐의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인식과 지각에 대한 새로운 차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LG의 광고도 이처럼 소비자들이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나타니엘 레코위"의 아래 작품들처럼
다른 차원 또는 다른 세계에서 온 듯한 새로운 기술이 현재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자연스럽게 화합하는 느낌을 주고 싶은 것일까요?
어느 쪽을 의도했던 또는 어느 쪽으로 해석을 하든 광고의 내러티브가 만들어 내는 스토리텔링은 완성도 높게 결론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라이팅 큐브에 빠져들어간 주인공,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보니, 스스로 불을 밝히는 붉은색 등이 무한히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너무나 유명한 야요이 쿠사마의 Infinity Mirror room을 떠오르게 하죠
거울의 반사효과를 이용해, 끝없이 뻗어나가는 이미지를 형상화해내고 있는데요,
이렇게 놓고 보니, 위에서 소개해 드린 도로시아 태닝의 <Birthday>가 그려내는 내러티브가 다시 한번 중복되어 겹쳐지는 모습입니다. 손잡이를 돌리니 도어의 이미지가 계속 반복돼서 끝없이 이어지던 그림, 바로 조금 전에 보여드렸었죠
무한히 윤회하는 업(반복되는 인간의 행위)을 그려내는 인피니티 미러 룸에서 문뜩 정신을 차리고 눈을 돌리니, 어렴풋이 새로운 희망이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도대체 저렇게 반짝이는 저 새로운 희망과 미래를 어떻게 손에 잡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눈치 빠른 분들은 메테를링크의 희곡 <파랑새>가 떠오르실 것 같습니다.
그 결론이 혹시 생각나시나요? 그들이 파랑새를 찾은 곳은 과연?
그렇죠 많은 모험을 겪은 후 집에 돌아온 주인공은 자신이 그토록 찾던 파랑새가 자신의 집에 계속 있었음을 (우리가 찾고 있는 행복은 멀나 먼 환상의 세계가 아닌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겠죠. 환각이나 환락은 어떤 행복도 전달해 주지 못할 것입니다) 발견하게 되는데, 광고 속 주인공도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반짝이던 미지의 물체가 바로 자신의 집 거실에 놓여있는 TV 속 OLED 소자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TV광고 한편을 아주 다양한 문화와 예술 코드를 활용해 또는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 낸 제작자들의 창의력이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광고는
세상의 한가운데 홀로 서있는 나무 한그루로 막을 내리고 있는데요,
이 명호 작가의 사진작품들이 떠오릅니다.
작가는 우리가 잊고 사는 주변의 많은 사물들이 지니고 있는 진정한 가치를 새롭게 부여하기 위해 가장 흔하게 보이는 나무를 주요 소재로 사진 작업을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광고 역시 소비자들이 잊고 있는 TV의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마지막을 이 명호 작가의 사진작품 같은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이 광고를 통해 소구 하고자 하는 진정한 핵심이 아주 궁금해집니다.
꿈 보다 해몽이라고, TV 광고 한편을 제 마음대로 읽어 봤는데, 앞으로도 이런 재미있는 광고를 찾아서 그 속에 숨겨있는 문화 예술의 다양한 기호들을 들춰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