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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Aug 24. 2021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의미

드니 뵐뇌브 감독의 신작 영화 <듄>에 관한 소식을 트위터로 접했는데, <블레이드 러너 2049> 이후에 첫 영화여서 인지 아니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극장의 대형 스크린이 그리웠던 것인지, 이 영화에 대한 영화팬들의 기대가 높은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드니 뵐뇌브란 이름을 들어보니, 그가 작업한 영화들이 보고 싶어 져서  <Arrival - 컨택트>를 찾아봤습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한 모놀리스 이후로 많은 SF 영화 속에서 수직으로 긴 형상의 물체들은 우주에서 날아온 미확인 물체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큐브릭 감독에 대한 오마주로 읽히기를 원하겠지만 대부분은 클리셰가 되고 마는데, 드니 뵐뇌브는 바나나가 서있는 듯한 독특한 형태와 금속이 아닌 듯한 질감의 에지 있는 외계 우주선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합니다. 


드니 뵐뇌브 감독의 미장센은 참 독특하고 뛰어난 편이죠. <Arrival>도 다시 보면서 처음에는 못 봤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에서도 전체적인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장치로 지하의 좁은 굴을 활용한 적이 있는데, 



<Arrival>에서도 좁은 임시 캠프의 통로와 외계인의 우주선을 올라가는 통로 등을 통해 미스터리와 서스펜스의 느낌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좁은 통로에서 앞사람에 가려져 제한적인 시야만 가능한 장면들이 주인공이 갖게 되는 미지에 세계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첫 장면이 시작하면 막스 리히터의 "On the nature of daylight"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고 카메라는 정체모를 평면을 훑어 나가고 있는데, 이 이미지와 음악은 마지막 장면에서도 반복되며, 뒤엉킨 시간의 순서를 소리와 시각을 통해 관객들에게 각인되고 있습니다 그 정체모를 평면은 바로 주인공의 집 천정이었죠. 


집의 실내를 보여주거나, 넓게 트인 전면을 보여주는 등 주인공이 바라보는 일상적인 시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전혀 뜬금없는 그렇기에 처음에는 이 화면이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해 어리둥절하게 되는, 하지만 결국 일상에서 매일 접하는 천정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이 첫 장면은 전체 영화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암시하는 중요한 사전 설정이 되고 있습니다. 외계인을 만나는 첫 순간의 그 두려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신비, 


하지만 모든 문제의 해결은 사실 단순하게 끝나게 되죠. 마음을 열고 미지의 세계와 소통을 하고 그렇게 해결책을 찾게 되는...




영화는 이렇게 미지의 세계와 대화를 통해 답을 얻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사실 원작 소설의 설정이긴 하지만)

언어학자인 주인공을 미국 정부에서 고용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언어학자는 미지의 세계에서 온 정체모를 생명체와 만나서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을 시도하고 마침내 외계인이 그려내는 독특한 문자를 접하게 되는데요, 



오징어의 촉수에서 먹물이 뿜어져 나오듯 흘러나온 검은 연기는 투명한 막 위에 다양한 기호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원작인 <Story of your life>를 쓴 테드 창은 그의 다른 소설에서도 사고와 언어, 소리와 의미 등에 관한 다양한 생각을 스토리에 접목시키곤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각각의 이미지가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표의문자의 개념을 도입시켜 우주인의 언어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외계인의 이미지 문자들을 보고 있노라니, 늘 그렇듯이 뭔가가 연상이 되기 시작합니다


Ugo Rondinone, The Sun 2018


국제갤러리에서도 전시회를 가졌던 스위스의 조각가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입니다.



황금빛으로 불타오르는 나뭇가지들이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원을 그리는 이 작품은 엄청 큰 대작입니다.

(이 작가 작품들이 대부분 좀 크죠 ㅎㅎ)


조금씩 삐져나오는 작은 가지들의 모습이 <Arrival>에서 외계 언어의 의미를 상징하던 특이점처럼 보이기도 하고, 황금색이 예술, 예언, 궁술, 음악, 의술 등 다재다능한 능력을 보유했던 그리스 신화의 대표적인 신 아폴론을 연상케도 합니다. 나뭇가지의 모습에서는 끝없이 지속되는 자연의 생명력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잘라진 가지들이 붙어있는 모습에서 화합과 평화가 읽힌다고 하면 너무 나간 것일까요?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들은 대부분 자연의 모습을 충실히 재현하거나 자연물 그대로를 변형시켜 자연과 인간과의 오랜 관계를 솔직하게 시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자연에서 발견한 바위와 인조의 철판이 어우러지는 조화와 화합을 보여주는 이우환의 조각들과는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닮은 것일까요?





The Sun을 전시했던 국제갤러리의 전시관이 그리 작은 편이 아닌데도 작품의 크기에 비해 공간이 너무 협소하게 느껴졌던 기억도 떠오르네요


이 작가의 작품은 광주시에도 설치되어있다고 하는데



위 사진은 전남일보에서 가져왔습니다. 저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사진을 보면 대략 크기를 짐작할 수는 있을 듯합니다.


이 Mountains 시리즈는 세계 곳곳에 설치되어 아주 유명해진 공공 예술품이죠.



라스베이거스 근교 사막에 설치된 이 <Seven magic mountains>가 크기나 규모 때문인지 가장 유명한 것 같고,  Tate 미술관이 위치한 영국 Liverpool에도 설치가 되어있다고 합니다



왠지 스톤헨지 등에 있는 고대의 석상이 떠오르죠


원시적이고 거대하며 하늘을 숭상하는 이 조각 작품들은 하늘을 주시하는 우리의 본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듯이 보이는데, 쉽게 눈에 들어오게 밝은 형광색을 칠한 것을 보면, 인간이 만들어 낸 인조물의 홍수 속에서 이 조각물을 보고 번쩍 하고 정신이 들어서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소리가 의미를 전달하게 되어 있는 표음문자이죠. 그래서 가끔 같은 발음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들로 인해 의사소통에 오해가 벌어지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이미지로 의미를 담고 있는 표의문자가 인간 사회에서 그 중요도가 점점 더 커지는 커뮤니케이션의 미래에 더 나은 선택지가 되게 될까요? 


복잡한 생각은 여기까지만 하고, 어서 빨리 예전으로 돌아가 영화관에서 신작 < 듄 >을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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