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주말을 맞이해서 가족들과 함께 드라이브를 나갔습니다. 계속 집에만 있으려니 어딘가를 가고 싶은 욕구는 점점 커지는데, 그렇다고 날로 심각해지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 밀폐된 공간에 갈 수는 없고 해서 집 근처 패스트푸드점의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해 간단하게 먹거리를 마련한 후, 사는 곳 인근에 잘 놓인 간선도로를 따라 차를 타고 이리저리 유랑을 다녔습니다.
다행히 수도권 주변 도로는 차가 그리 많지 않아서, 한가롭게 멀리 보이는 풍경들을 보며 가족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차에, 갑자기 뒷자리에 앉은 아내가 "어 터너의 하늘이다"라고 외치며 먼 하늘을 가리킵니다.
하늘을 좋아하는 아이는 얼른 차창을 내리고 구름 사이로 저녁놀이 지는 독특한 모습을 사진 속에 담으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나 봅니다. 그래도 우리는 예전에 런던에서 보았던 터너 그림에 대한 서로의 생각들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오래간만에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이튿날도 같은 방법으로 답답함을 해소하자고 다시 차를 타고 또 다른 드라이브 스루에서 먹거리를 사서, 전날과 비슷한 코스를 따라 또다시 호젓한 드라이브를 즐기기 시작하는데, 잠시 가다가 뒷자리의 아내가 이번에는 "어, 모네의 하늘이다"라고 외치더군요.
모네의 작품들은 아이와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술작품 중 하나이다 보니, 마찬가지로 다양한 곳에서 보았던 모네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그렇게 오랜만에 온 가족이 흥겨운 주말 드라이브를 즐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터너의 하늘과 모네의 하늘은 과연 뭘까?
주말에 서로 간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터너의 하늘에 대한 정의는 아마도 경계를 나누기 힘든 하늘의 형상, 구름과 지는 석양 등이 뒤섞인 묘한 느낌 이런 것들이었고, 모네의 하늘은 반대로 석양의 모습이 좀 더 선명하고 하늘 전체에 걸쳐 그 오렌지빛이 지배적으로 드러난 모습이었습니다.
시간과 날씨의 영향이 동일한 하늘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분장시켰고, 각기 다른 얼굴의 하늘빛은 그만큼이나 다른 서사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Sea and Sky> 1825~30, Watercolour and gouache on paper, 34.5*48.6cm, Tate 소장
<margate, from the sea> national Gallery 소장
터너의 하늘은 불투명 수채화와 수채화가 섞여서 번지고 퍼지며 만들어 내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 속 하늘은 무엇인가 새로운 스토리가 시작되려고 하는 순간을 잡아 낸 것 같은 모습입니다.
불완전하고, 불확실하고 그렇기에 무슨 이야기가 시작되려는지 확실치 않은 하지만 그래서 더욱더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Yellow가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주도적인 색으로 사용되지만 그렇다고 노랑에서 갖는 선입견인 화사하고 천진무구한 느낌은 아닙니다.
터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그림이 만들어 내는 작은 혼란이 마치 내 앞에 놓인 미래, 뿌옇게 흐려진 인생의 앞날처럼 느껴져서 일까요
Claude Monet, Sunset on the Seine in Winter, 1880
Claude Monet, The Seine at Bougival in the Evening, 1869
모네의 하늘은 보다 선명하고 지배적이며 상당히 직접적으로 이미지 안에 보는 이의 감정이 투영되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그림 속의 하늘과 비슷한 모양의 하늘을 보았던 바로 그 순간 내가 가지고 있던 또는 그 순간 내가 느끼던 감정들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모네의 그림 속 하늘이 꼭 푸르스트의 소설 속 마들렌과 같이 느껴집니다.
여러분들에겐 터너와 모네의 하늘이 어떻게 다가오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