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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Aug 04. 2021

브람스를 좋아했더랬습니다

영국의 음악잡지  그라모폰은 매년 전년도에 출시된 음반들을 대상으로 그라모폰 어워드를 선정하는데, 올해도 이제 슬슬 때가 되어 가는지 후보자들을 정하고 열심히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2014년 'Recording of the year '에 선정된 브람스 교향곡 전곡을 애플 뮤직과 함께 무료 감상 이벤트를 펼치고 있어서 궁금함에 정말 오랜만에 브람스를 들어봤습니다. (이미 애플 뮤직 구독 중이라 무료란 말이 평소와 달리 그렇게 흥분되게 다가오진 않았지만)



(앨범 재킷에 등장하는 샤이의 몸짓이 제 호기심을 자극하더니 이런 이미지를 떠오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청중들의 마음을 읽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자비에 교수와 비슷한 저 손동작이 의미하는 것은?



휴대폰에 음원을 다운로드하여서 이동 중에 열심히 듣기 시작했습니다


학창 시절 내 꿈이 뭔지 알 수도 찾을 수도 없던 그 어둠 속에서 홀로 앉아 부르던 멜로디 교향곡 3번의 3악장이 오랜만에 잊고 지냈던 감정들을 되살리고 있었습니다.


그 순진하고 천진난만하던 시간들, 그렇다면 브람스는 그 오랜 세월 순수함과 순진함 그리고 천진난만함을 지닌 때 묻지 않은 청년의 감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한 살 한 살 더 나이를 먹어가며 브람스는 제가 듣던 레퍼토리 리스트에서 점점 사라져 갔는데요, 학습된 감정이라고 자꾸만 느껴지던 익숙한 시스템 그렇기에 이것이 과연 최선일까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던 때문이었을까요?


그래도 길을 잃고 힘들어하던 대학 초년 시절의 나에게 다시 일어서게 하는 용기와 격려를 주는 것이라고 느꼈던 교향곡 4번의 1악장을 다시 들으니 중년의 위기가 닥친 현재의 나 자신을 다시 천천히 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이윽고 이 1악장을 지나 차분하게 전개되는 느린 2악장이 뒤를 따르는데,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는 견고한 혼, 혼을 감싸고 덮어나가는 품격 있는 리듬, 브르크너의 질풍노도와 같은 그리고 연주자마다 안정감의 편차가 많은 움직임과는 많이 다르죠.




학습된 감정이라고 자꾸만 느껴지던 브람스의 어딘지 익숙하고 편안한 멜로디들, 그렇기에 과연 그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음악일까 하는 그간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흘러나오며 점점 돌아서는 내 감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갑자기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는 것인지, 얼마나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는지와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왜 브람스는 감정을 이처럼 직접적인 시선을 통해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해석하고 있을까요?


편안한 리듬 감성적 멜로디 거슬리지 않는 형식 친절한 화음, 적당한 규모  도무지 싫어할 수 없는 지루해하기도 미안한.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가끔은 덜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브람스를 오랜만에 즐겁게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교향곡 4번은 다행히 클라이버의 연주가 유튜브에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_pEzvKwGAM


교향곡 3번은 듣기 쉽지 않은 푸르트벵글러의 실황이 올라와 있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fRQTYE1dyQc



이 두 지휘자의 해석 방향은 사실 샤이의 라이브 레코딩과는 약간 다릅니다. 훨씬 후대의 지휘자이지만 샤이는 오히려 브람스에 관한 올드스쿨 스타일의 정돈된 선율을 들려주고 있고, 클라이버와 푸르트벵글러는 잘짜여진 음악적 구조를 세련되게 재현한다기보다는 좀 더 생생한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애플 뮤직이나 여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구독 중이시라면 샤이의 녹음과 비교해 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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