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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Aug 15. 2021

트랜스-매치스. 12_1845, 구출작전

안데르센 <성냥팔이 소녀>

 우주선의 메인 모니터에 표시된 정보는 이곳 행성의 날씨가 지독히도 춥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단스크 행성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눈이라는 대기 중의 습기가 살짝 언 상태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납치된 공주가 있는 이곳 행성의 자전 주기를 분석해 보니, 곧 태양이 저물어 밤이 될 예정이었다.  


구조선의 선장인 안데르센은 부선장과 1등 항해사 그리고 과학 장교를 불러 공주 구출 작전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    착륙선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    선장님, 하필 이 행성은 현재 범우주 산타 네트워크의 관리 하에 있습니다. 그들이 쳐 놓은 보호 에너지 펄스 망을 뚫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괜히 산타 네트워크의 신경을 건드리는 건 더 위험합니다.

-    그 빨간색 옷을 입은 뚱뚱보들은 참 멀리까지 다니는군.

-    전 우주의 아이들이 그 뚱뚱보들을 기다리잖아요. 부선장님도 어릴 땐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지 않으셨나요?


안데르센 선장은 중요한 임무를 앞에 둔 회의 중에 이런 농담을 하고 있는 그의 팀이 답답했다. 손에 들고 있던 에테르 주스[1} 잔을 일부러 테이블에 세게 내려놓으며 쨍하는 거친 소리로 주위를 환기시킨다.  


-    이런 상황에서 공주님을 안전하게 함선으로 모셔올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부선장?


우주물리학을 전공한 부선장은 현재 구조선의 승무원들 가운데 가장 과학지식이 뛰어난 편이다.


-    현재로는 트랜스-매치스[2]를 통해 구출하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 같습니다


 트랜스 매치스는 아주 작은 발광 소자가 대상자의 눈앞에서 빛을 발하는 동안 그것을 바라보는 대상자의 의식과 기억을 전송하는 기술로 이렇게 먼 외계에서 더군다나 행성의 괘도를 돌고 있는 우주선에서 시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시각을 통해 주변을 인지하는 종류의 우주 생명체들은 대부분 밝은 빛이 시야에 들어오면 무의식적으로 그 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일종의 반 최면 상태에 들어선다. 트랜스 매치스 장치는 대상의 뇌파를 감지해서 긴장이 풀리는 순간, 빛의 세기를 조정하며 뇌파에 드러나는 의식과 기억을 다운로드한다. 이 트랜스 매치스는 단스크 행성의 뛰어난 심리과학 기술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불안하긴 하지만 선장의 머릿속에도 그 방법 말고는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그들이 타고 온 우주선은 단스크 행성에서 개발한 최신 모델이었지만 그래도 산타 네트워크의 보호 에너지 펄스 망을 이겨 내긴 힘들 것이다. 한 번도 아니고 왕복으로 버텨내야 공주님을 무사히 탈출시킬 수 있는 것이니까. 물론 트랜스 매치스도 쉽지 않은 방법이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스스로를 지구인이라고 여기고 있을 공주에게 원격으로 조정되는 트랜스 매치스 불빛을 가만히 보고 있어야 당신의 의식과 기억이 전송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릴 수 있겠는가


-    트랜스 매치스로는 의식과 기억밖에 전송할 수 없는 것 아닌가?

-    그렇습니다. 하지만 단스크 행성에는 공주님의 DNA가 보존되어 있으니, 클론을 만들어서 저희가 의식과 기억을 전송하는 순간의 공주님의 물리적인 육체를 재현해 낸다면 본인은 자신이 의식과 기억이 전송되어 새로운 신체로 들어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할 겁니다.

-    하지만 국왕폐하와 왕비마마가 그런 방법을 허락하실지…


 단스크 행성은 수십 년 전 스페이스 바이킹들의 습격을 받아서 온 행성이 전쟁에 휩쓸렸었다. 모든 단스크인들이 일치단결해서 간신히 바이킹들을 물리쳤지만 그들은 단스크 행성에서 후퇴하기 직전 막 태어난 아기 공주를 납치했고, 머나먼 지구로 데리고 와서 훗날을 기약하는 중이었다. 오랜 시간 공주의 행적을 찾던 스페이스 트라이앵글[3]부대는 공주가 어느 행성에서 살고 있는지 찾아내었고, 단스크 행성의 최고 수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미래 예측 통계 수학이 보여주는 결론은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공주의 생명은 며칠 남지 않은 상태였다. 대부분의 바이킹은 지구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었고 마지막 남은 바이킹 노파가 공주를 데리고 있는데, 새로운 행성에서 생활이 쉽지 않던 노파는 공주를 이 추운 날씨에 음식을 구해오도록 시켜서 공주는 뭔가 작은 상자들을 들고 도시를 헤매고 다니는 것이 관측되었던 것이다.


 바이킹족과의 우주 전투에서 많은 성과를 올린 안데르센은 이젠 단스크 스페이스 부대에서 행성 구조대를 책임지는 장군이 되었고, 이번 구조선의 선장에 임명되었다. 모든 단스크 인들은 안데르센이 그들의 납치당한 공주님을 무사히 구조해서 돌아오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    선장님 단스크에서 통신 전통이 왔습니다. 국왕 폐하의 영상 메시지입니다


 안데르센 선장과 상급 선원들은 모두 모니터 앞에 모여서 국왕의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국왕은 어떤 일이 있어도 공주를 구출해야 하며, 최악의 경우 그녀의 의식과 기억만이라도 회수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현재 단스크 행성에서 공주의 DNA로 클론이 제작 중이라는 언급과 함께 말이다. 그렇다면 트랜스 매치스를 실행할 전략을 세워야 했다. 또 클론에게 주입될 의식과 기억이 동일한 육체 나이에 동기화되어야 할 테니, 정확한 행성 간 시간에 대한 정보도 우주선의 메인 프레임에 입력되어야 한다.


이번 구조작전에 참가한 대부분의 인원은 과학자나 수학자가 아니라 특전부대와 수색부대 출신의 경험 많은 군인들이었다. 안데르센은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좀 더 많은 수학자를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스페이스 바이킹들에 대한 단스크인들의 두려움은 선장의 의견과 달리 전투에 잔뼈가 굵은 정예 멤버 위주로 구조대를 꾸려지게 하였던 것이다.  


구조선의 메인 모니터는 멀티 창으로 나누어져서 다양한 정보를 보여주고 있고 모두는 자기의 임무에 맞는 모니터 화면을 열심히 주시하고 있다.


- 어! 선장님 여기 좀 보세요


갑자기 정찰팀 대원들이 소리쳤다. 화면은 공주를 비추고 있었는데, 기력을 거의 잃고 쓰러지기 직전의 공주가 자신이 가지고 다니던 작은 박스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서 조그만 불빛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화면 속의 공주는 자기가 만들어 낸 약한 불빛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불빛은 곧 자취를 감추었고, 주위는 이내 컴컴해졌다. 안데르센 선장은 그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 선장님 공주님이 다시 불빛을 만들어 냅니다.


그 순간 선장의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부선장, 저것 좀 봐봐. 저 불빛들을 말이야, 공주가 자기가 만들어 낸 불빛을 저렇게 뚫어지게 보고 있으니, 저 불빛이 꺼지는 순간에 얼른 트랜스 매치스를 원격으로 작동시켜서 공주님이 계속 멍하니 불빛을 바라보게 할 수 있을 것 같네.

- 안 그래도 저도 그 생각 중이었어요. 선장님


부선장도 선장의 말에 동의를 하고 얼른 장치의 조작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모니터로 공주가 다시 불빛을 만들어 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선장실로 돌아온 안데르센 선장은 그동안의 긴장이 풀리며 한꺼번에 몰려오는 피로감에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마무리해야 할 보고서 작업이 남아있었다. 국왕과 의회에 보낼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은 선장은 문득 이 행성에 남겨진 공주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모니터를 조작해서 남겨진 공주의 모습을 찾았다.


모니터 가득 확대하니 미소 짓는 입술과 붉은 뺨의 어린 소녀가 보였다. 불빛을 바라보던 마지막 순간 그녀의 육체와 정신은 현실 속의 고통을 모두 잊고 새로운 세상으로 달려가는 꿈을 꾸었으리라. ‘공주님 이젠 새로운 육체와 함께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또 다른 생을 누리시게 되실 겁니다’ 순간 선장은 단스크 행성에서 새로 태어날 그의 손녀에게 해줄 재미있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모두가 즐거워할 행복한 크리스마스의 이야기 말이다.



          


[1] 은하수를 원료로 만든 은하계 최고의 인기 음료

[2] 작은 발광체 모양을 한 장치로 생명체의 시신경에 접속해서 의식과 기억을 확보하는 장치

[3] 스페이스 바이킹의 침략으로 우주 미아가 된 단스크 행성인을 찾기 위해 결성된 특수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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