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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Aug 15. 2021

레술렉티오

안데르센 <엄지 공주>

 안데르센은 지난 변신술 수업 시간, 비르기트 교수님의 지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등생으로 졸업을 앞둔 그에게 교수님은 성공적인 결과에 대해선 일체 말씀이 없으신 가운데 저학년 시절 배우던 <기본 마법 윤리> 책을 다시 읽어 보라고만하셨던 것이다.


-    안데르센, 뭐 하고 있어? 다들 졸업식 파티 준비로 모이기로 했잖아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안데르센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건네는 프레데릭은 마법학교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동기이다. 그는 졸업 후에 법무부에 들어가 불법 마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범죄자들을 잡는 오러가 되고 싶었지만 성적이 부족해서 다가오는 마지막 학기말 시험에 대한 걱정이 큰 편이었다. 그럼에도 일생에 한 번뿐인 졸업식 파티 준비 모임에는 아주 열성이기도 했다.  


    - 넌 누구랑 졸업 무도회에 갈지 정했어? 난 말이야….


 신나게 떠드는 프레데릭의 이야기가 안데르센의 귀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그가 성공시킨 마법은 레술렉티오[1]였는데,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은 여자아이 인형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고급 마법이었다. 죽은 사람을 좀비로 변하게 하는 마법은 오래전 오슬로 사건[2]이후 엄격하게 금지되었지만, 인형 등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레술렉티오 마법은 전혀 금지 마법이 아닌데, 교수님은 그에게 왜 마법 윤리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던 것일까? 


-    안데르센, 무슨 걱정인데 그렇게 표정이 안 좋은 거야?


 혼자서 신나게 졸업 무도회 이야기를 떠들어 대던 프레데릭은 계속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친구를 보며 약간은 무안해하며 이유를 물었고, 안데르센은 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렇게 불만을 토로하던 동안 안데르센이 잊고 있던 일이 있었는데 바로 자신이 그토록 열심히 생명력을 불어넣은 여자 아이 인형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안데르센은 아주 찜찜한 기분인 채로 기숙사 침대에서 깨어났다. 아마도 어제 교수님께 지적을 받은 것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며 수업에 들어갈 채비를 마치고 서둘러 원형 계단을 따라 강의실로 올라가는 데 아래쪽에서 교수님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안데르센, 어제 그 인형은 지금 어디 있니? 아직은 세상이 낯설고 무서울 텐데 잘 살펴보고 있어야 할 거야  


 아뿔싸! 안데르센은 그제야 무엇이 그를 그토록 찜찜하게 만들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오래 기르던 나이 먹은 고양이가 잠시 사라져도 걱정하던 그가, 자신이 생명력을 불어넣은 인형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작은 인형이 홀로 이 세상에 버려져서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 표정을 본 비르기트 교수님은 그가 마침내 무엇인가를 깨닫기 시작한다는 점을 알아챘고 세상으로 나간 인형을 찾는 방법을 일러주셨다. 안데르센은 교수님의 지시대로 서둘러 실험실로 가서 스페쿨로[3]

를 찾기 시작했다. 스페쿨로에 아파레씨움[4] 마법을 걸면 자신이 원하는 대상을 멀리서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안데르센 한 생명을 만들었다면, 그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창조한 사람의 책임이 있는 거야


 ‘아마도 그 책임감이란 부분 때문에 어제 교수님이 윤리 책을 보라고 하셨던 것이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안데르센은 서둘렀다. 그 상황을 쳐다보던 절친 프레데릭도 안데르센을 돕기 위해 그와 함께 실험실로 향했다. 실험실에 도착한 그들은 각자 역할을 나눠서, 프레데릭은 실험 기기가 놓여있는 선반에서 스페쿨로를 찾기 시작했고 안데르센은 아파레씨움 주문이 적혀 있을 교과서를 찾아 책장을 뒤졌다. 한참을 낑낑대며 실험실을 이리저리 헤집던 끝에 프레데릭은 화장대 거울 모양의 목재 받침대 위에 고정된 커다란 유리를 찾아서 실험실 한가운데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거의 동시에 안데르센도 책을 찾아서 해당 페이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일단 필요한 준비를 했지만 긴장한 탓인지 안데르센은 마법 주문을 외우며 마법 지팡이를 쥔 손을 연신 교복에 문지르고 있다.


 안데르센은 정신을 집중하고 책에 적혀있는 대로 주문을 외웠지만 유리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라도 생명을 갖게 된 인형이 가지 말아야 할 위험한 곳으로 스스로 가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집중을 방해하는 탓일까? 옆에서 지켜보던 프레데릭의 얼굴도 긴장한 기색이 가득하다. 갑자기 교실 천정에서 커다란 입술 모양이 튀어나오더니 비르기트 교수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인형을 불쌍하게 여기지 말고, 입장을 바꿔서 그 인형이 되어야 해.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어떻게 해야 이곳에서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지 상상해봐


 교수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중 갑자기 안데르센의 머릿속엔 고향집 정원에 피어나던 색색의 튤립들이 떠올랐다. 어머님의 손길이 만들어 낸 튤립을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마법이 걸리기 시작하며 투명하던 유리가 뿌옇게 변하고 있다. 뒤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프레데릭의 눈도 놀라서 점점 커지고 있다.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들은 갑자기 유리판 위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동시에 외친다.


-    야! 저기 있다, 저기, 드디어 찾았어!


 인형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그들은 빠르게 흘러가는 유리판 위의 장면에 집중하느라 완전히 인형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마법 세계의 시간은 바깥세상과는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고 그래서 작은 인형이 바깥세상에 나가서 경험한 1년은 그들에겐 단지 몇일밖에 되지 않았다. 


-    이걸 봐, 안데르센, 노랑과 붉은 꽃잎이 꼭 너네 어머님이 기르시던 튤립 같아 


 그랬다. 안데르센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바로 그 꽃 모양이었다. 화면 속에 보이는 정원의 주인인 듯한 여인은 그 작은 인형을 <엄지 공주>라고 부르고 있었다. 두 친구는 열심히 엄지 공주가 바깥세상에 나가 경험하는 삶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엄지 공주의 모습은 호두 껍데기 속에 놓인 바이올렛과 장미 꽃잎의 우아한 향기만큼이나 아름답게 보였지만, 이 작고 귀여운 눈에 띄는 외모는 곧 인근에 사는 이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중에 아들과 살고 있던 커다란 어미 두꺼비는 엄지 공주가 잠든 사이 그녀의 거처인 호두 껍데기를 자신과 아들이 살고 있는 진흙탕으로 옮겨버렸다. 커다란 수련 잎 위에서 영문을 모르는 채 깨어나 당황스러워하는 엄지 공주를 본 안데르센은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예쁜 인형이 자신 때문에 저 흉측한 두꺼비와 함께 살아야 하다니, 갑자기 그의 머릿속으로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는 주변 시냇가의 물고기들에게 마법을 걸었고 물고기들은 공주가 머물고 있는 잎의 줄기를 갉아 내기 시작했다. 마침내 공주가 타고 있던 잎이 둥둥 떠내려가기 시작했고, 사랑스러운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소녀의 모습에 감탄하며 잎에 내려앉았다. 작은 인형의 얼굴이 다시금 기쁨으로 밝게 빛나기 시작하자, 안데르센도 자신이 이루어 낸 아름다운 광경에 아주 흡족했다. 그런데 태양이 강물에 닿아 주변의 모든 것이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하 던 순간, 지나가다가 그 장면을 본 왕 풍뎅이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그렇다. 안데르센의 의도와 상관없이 엄지 공주의 삶은 다시 한번 왕 풍뎅이의 날개가 만들어 내는 거친 바람의 흐름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최선을 다한 노력에도 다시 작은 인형이 곤경에 처하는 모습에 안데르센은 다시금 자신의 마법으로 상황을 바꾸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시키기 시작했고, 친구인 프레데릭은 그저 안타까운 표정만 지으며 친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순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안데르센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마법 지팡이를 움켜쥐고 무언가 주문을 외우려고 하는데, 실험실 천정에서 다시 입술 모양이 뛰어나오며 비르기트 교수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    안데르센, 계속 마법으로 상황을 모면하게 해 준다고 작은 인형이 너의 바람대로 살 수 있을까? 또 다른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 어떡할래, 모든 것을 마법으로 해결해 줄 순 없지 않을까?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안데르센에겐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시냇가에서 놀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에게 할아버지는 마법을 쓰지 않고, 큰 소리로 팔다리를 저어서 헤엄을 치라고 소리치기만 하셨었다. 다행히 그는 간신히 다리가 닿는 물가로 빠져나올 수는 있었지만 한동안 자신을 마법으로 구해주지 않은 할아버지를 원망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세상의 풍파에서 스스로 빠져나오는 법을 가르치려고 하셨던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법은 어떤 순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순 있어도, 인생의 거대한 흐름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을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마법사들도 스스로의 운명에 맞서 자신의 힘으로 당당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을 그 옛날 시냇가에서 할아버지가 알려 주신 셈이다. 안데르센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그래서 애지중지했던 손주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마법 없이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오도록 가르쳐 주시던 할아버지의 심정이 약간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인형에게 레술렉티오 마법을 걸었지’하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기 시작한 안데르센, 그가 내릴 다음 결정은 과연?



          


[1] 생명이 없는 무생물이 이 마법에 걸리면 일정 기간 동안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2] 북유럽의 검은 마법단이 국제 마법부에 대항하기 위해 오슬로 공동묘지에서 좀비를 만들어 일으킨 테러 사건

[3] 마법에 걸린 대상물을 찾게 해주는 일종의 영상 재생 장치

[4] 스페쿨로로 특정한 대상물을 보기 위해 거는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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