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진 삶의 그림자

by 훈수의 왕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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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nst A. Heiniger , Bahnhofplatz, Zurich, 1933


스위스의 사진작가인 에네스트 하이니거의 취리히 기차역 광장입니다.


광장에 면한 높은 탑 위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본 장면인데,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사진 작품들을 볼 때면 종종 콜럼버스의 달걀이 떠오르는데, 작품을 보면 아!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라고 이해가 되지만 막상 직접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볼 때면 새로운 구도를 잡는다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각자의 발에 달라붙은 검은 이미지들, 죽는 순간까지 벗어던지지 못하는 운명처럼 우리를 따라다니는 형체 없는 분신, 막대저울의 길이가 길수록 추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처럼, 길게 늘어진 그림자의 형상이 무한하게 커지는 운명의 무게를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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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줄에 의지해서 험난한 산을 넘고 있는 사람들을 찍은 작가의 또 다른 사진 역시 인간의 시간, 운명 등에 대한 또 하나의 메타포일까요?



높은 곳에 올라가, 내 삶을 내려다보면, 사진 속의 그림자들처럼 온 거리에 질질 끌려가는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 각자의 삶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다른, 아니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그림자처럼 지연된 시간의 잔상만을 남기고 방황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고 난 순간, 사진 속의 그림자들이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을 떠오르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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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느다랗고 길어진 자취에서 위태로운 일상의 고독과 외로움이 느껴지는 것은 저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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