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를 읽는 데 푹 빠져서 광역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길이 즐거워지고 있습니다
왜 여태 몰랐나 싶기도 한데, 지난 며칠은 도서관에서 빌린 R. Frost의 <Fire and Ice>를 읽는 중입니다.
아마도 제목을 보고 < 왕좌의 게임> 드라마 시리즈가 떠오르신 분들도 계실 텐데, 드라마의 원작이 조지 RR 마틴이 쓴 <얼음과 불의 노래>였나요?
페이지를 넘기며 계속 읽어가던 중에 아래의 시에서 갑자기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하나가 번쩍하고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먼저 프로스트의 시를 소개해 드리면
By Robert Frost
The people along the sand
All turn and look one way,
They turn their back on the land,
They look at the sea all day.
As long as it takes to pass
A ship keeps raising its hull;
The wetter ground like glass
Reflects a standing gull.
The land may vary more;
But wherever the truth may be-
The water comes ashore,
And the people look at the sea.
They cannot look out far.
They cannot look in deep.
But when was that ever a bar
To any watch they keep?
모래사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돌아서서 한쪽을 보고 있다.
육지 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다.
하루 종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지나가려면 배는
그 선체를 띄워 올리고 있어야 한다.
젖은 바닥은 유리처럼
서 있는 갈매기를 비춘다.
육지가 한결 더 변화가 있을 것이다.
진리가 어딘가 있기는 있겠지만 ㅡ
물결이 바닷가로 밀려오고,
사람들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멀리 보기 못한다.
그들은 같이 보지 못한다.
허나 그게 언제 방해물이기나 했던가
그들이 견지하고 있는 바라봄에?
민음사판 <불과 얼음> 중 (정현종 옮김)
시인은 일상의 보편성 (바닷가 모래밭에 서서 몰아치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는 평범한 군중들의 모습)을 통해 아이러니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려고 하는 듯 보입니다.
쉽게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육지의 모습과 달리 거대한 대양 아래 벌어지는 일은 우리가 실제로 보기 힘들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답을 찾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인간들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과연 우리들에게 진실과 마주할 용기가 있을까요?
마치 시의 제목처럼 "더 멀리 그리고 더 깊게" 진정으로 고민하고 탐구하고 사색할 용기가 있을까요?
일상에서 직면하게 되는 현실의 실상을 무시하고 외면하려는 우리의 본성...
맹신, 가식, 지적 허영, 맹목적인 추종 등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 군상의 문제점들
시인은 독자에게 아주 단순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들 앞을 가로막은 고난과 역경을 넘어 진정으로 진실에 다가갈 의지가 있는지를 반어적으로 말이죠
이런 질문을 받고 보니 과연 우리가 무엇인가를 찾고는 있는 것인지?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는 알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어디서 그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는 알고 있는 것인지?
시인의 통찰력을 통해 끝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되던지게 됩니다
우리 앞에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향해 마치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또는 그것을 찾은 것 마냥 꾸며내는 행동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떠올리게 되지 않나요?
이 시의 첫째 연에서 그려내는 이미지인 모래사장 위의 모든 사람들이 한 방향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에서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에드워드 호퍼의 한 작품이 연상됩니다
<People in the sun> ( oil on Canvas, 102.6 x 153.4 cm, 1960)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해가 지는 방향을 향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정장 차림으로 말이죠.
기웃기웃 저물어 가는 해의 고도는 거의 우리의 시선과 맞닿게 될 텐데, 제일 뒤의 사람은 눈이 부셔 글자를 읽기 힘든 상황에서 책까지 펴 들고 읽는 시늉을 하는 듯 보입니다.
우리 앞에 들이닥친 현실을 맹목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바라보는 군중들, 그나마 나는 깨어있는 자라고 드러내고 싶은 책을 들고 있는 사람, 모두 다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진실로부터 자신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호퍼 그림이 늘 보여주는 아주 깔끔하고 정돈된 구도와 색채이지만 그림에서 풍겨 나는 분위기에서는 왠지 모를 혼돈과 방황, 그리고 나만 홀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책을 향한 시선) 군중 속의 고독 같은 것들이 감지됩니다
깔끔한 그림 속 주인공들의 의상은 역설적으로 부자연스러움을 더 해주고 있고, 아무런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인물들의 표정은 빌딩 숲으로 가득 찬 도시의 잿빛 하늘만큼이나 무감각하고 답답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대자연의 풍광 앞에서도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도시인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이렇게 완고하고 경직된 표정이 아닐까요?
나만 소외될까 두려워 진실을 향하지 못하고 대중을 향하는, 대중들의 관심에만 귀를 기울이는...
반어적으로 고독을 노래하는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중 12곡 고독(Einsamkeit)> 을 들으시면서 함께 시를 감상해 보시면 어떨까요?
Wie eine trübe Wolke 어두운 먹구름들이
Durch heit're Lüfte geht, 맑은 하늘을 흘러가듯
Wenn in der Tanne Wipfel 소나무들 위로
Ein mattes Lüftchen weht: 덤덤한 미풍이 불어올 때
So zieh ich meine Straße 그렇게 내 길을 그려나간다
Dahin mit trägem Fuß, 느려진 발자국들의
Durch helles, frohes Leben, 밝고 즐거운 인생들 사이로
Einsam und ohne Gruß. 홀로 반겨주는 이도 없이
Ach, daß die Luft so ruhig! 아, 공기는 그토록 고요하고
Ach, daß die Welt so licht! 아, 세상은 이토록 밝구나!
Als noch die Stürme tobten, 폭풍우가 그토록 분노하던 동안에도
War ich so elend nicht. 난 이토록 비참하진 않았다.
(번역은 독일어 원문이 아닌 영역된 시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gky0e8wNs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