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보여준 이미지

by 훈수의 왕

맑고 정갈한 음악을 틀고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한 두 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가 다시 눈을 열어 시를 읽습니다


최근에 제가 시작한 명상 대용의 마음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명상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고, 본체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것을 잘 못하는 타입이라 많은 분들이 명상을 해보라고 추천을 해주셨지만 쉽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명상을 배우기 위해 사람들과 섞이는 것도 저 같은 성격엔 쉽지 않은 일이라 저 나름대로 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 하는 방법이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얻은 점은 그동안 잘 몰랐던 '시'의 세계에 조금씩 마음이 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 며칠 동안 읽던 시중에 Hilda Doolittle의 <The Pool>에서 갑자기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기 시작하더군요




The Pool

By H.D. (Hilda Doolittle)


Are you alive?

I touch you.

You quiver like a sea-fish.

I cover you with my net.

What are you—banded one?



웅덩이


살아있는 거니?

널 만지니

바닷물고기처럼 펄떡거리는구나

내 망으로 널 가린다

줄무늬의 넌 무엇이지?







처음 읽을 땐 sea-fish 란 단어에서 바다가 연상되면서 제주도의 원담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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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갔을 때 신기하게 보았던 돌로 만든 천연 그물입니다.

바닷물이 들어올 때 같이 헤엄쳐 왔던 물고기들이 썰물에 물이 빠질 때 미쳐 같이 나가지 못한 채 이 돌 그물 안에 잡혀 있는 것이죠


원담은 사람이 일부러 만든 것이지만 바위가 많은 바닷가를 걷다 보면 커다란 바위에 움푹 파인 부분에 썰물이 되면서 물이 남겨져 있는 웅덩이들을 발견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시의 화자도 아마 이런 경험을 시로 쓴 것이 아닐까 가 일단 첫 느낌이었죠


그 안에 갇혀 있던 물고기들을 손으로 만지면 펄떡거릴 것이고 태양이 중천에 뜬 시간이라면 내 몸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가 마치 그물처럼 웅덩이 위를 가리는 효과가 생기게 될 테고요


그렇게 그림자가 드리워진 웅덩이 안에 갇힌 물고기를 바라보는 시인이 떠오르더군요.




좀 더 반복해서 읽다 보니 그다음엔 그 웅덩이에 갇힌 불안에 떨고 있는 대상이 시를 이야기하는 화자의 마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인가에 두려움을 갖고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은 자신의 자아, 생기를 잃고 방황하는 그렇기에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면 뭍에 올라온 물고기 마냥 뭔지 모르는 불안감에 온 마음이 떨리고 있는, 그 위로 드리워지는 근심이라는 그물






그렇게 생각이 미치기 시작하자 다시 한 그림이 머릿속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1200px-John_Everett_Millais_-_Ophelia_-_Google_Art_Project.jpg


슬픔에 정신을 잃고 노래를 부르다가 물에 빠져 죽은 "오필리아"


찾아보니 이 오필리아에 관한 셰익스피어의 묘사는 <햄릿>의 4막 7장 에 등장하는 거투르드 왕비의 대사 속에 포함되어 있더군요,



QUEEN:There is a willow grows aslant a brook,
That shows his hoary leaves in the glassy stream.
Therewith fantastic garlands did she make
Of crow-flowers, nettles, daisies, and long purples,
That liberal shepherds give a grosser name,(185)
But our cold maids do dead men's fingers call them.
There on the pendant boughs her crownet weeds
Clambering to hang, an envious sliver broke,
When down her weedy trophies and herself
Fell in the weeping brook. Her clothes spread wide(190)
And, mermaid-like, awhile they bore her up;
Which time she chaunted snatches of old lauds,
As one incapable of her own distress,
Or like a creature native and indued
Unto that element; but long it could not be(195)
Till that her garments, heavy with their drink,
Pull'd the poor wretch from her melodious lay
To muddy death.





시냇물 위에 누워있는 오필리아는 이미 죽은 것일까? 가늘게 뜬 눈, 살짝 벌려진 입술, 그리고 아련하게 수면 위로 솟아있는 가냘픈 두 손,

살짝이라도 손을 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그저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하는 우리의 눈 앞에는

시냇가 위로 드리워진 버드나무 가지들이 물결 위로 만들어 내는 잔영들,




도시의 정글속에서 주변의 상황이 만들어 내는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자신들의 생존에 대한 고민을 노래하며 거리를 방황하는 젊은 주인공들도 Alive를 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더 긍정적이고 자신에 찬 에너지가 느껴지는 시나 그림과는 대조적인 이미지입니다.


시를 읽다가 갑자기 생뚱맞게 떠오른 노래인데 한번 들어보시죠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중에서 비지스가 부른 "Stayin Alive"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NFzfwLM72c






국내 번역된 것을 찾아보질 않고 제 마음대로 붙인 제목이라서 시를 찾아보실때 <웅덩이>로 검색하시면 이 시가 나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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