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음반평 전문 잡지인 Gramophone이 요즘 트위터에 자신들이 선정한 유명한 클래식 음악의 대표적인 연주 녹음을 소개해 주는 기획 기사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선정한 명반들을 두루 살펴보는 시간을 갖으려고 하는데요
이번 편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입니다. 소프라노의 독창과 관현악 반주로 이루어진 가곡집이죠.
잡지에서 선정한 주요 녹음 3가지는
1. Soile Isokoski (Sop),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Marek Janowski 지휘
소일레 이소코프스키는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돈 지오반니> 음반에서 돈나 엘비라를 맡았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그 음반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첫 만남에서 받은 인상이 그리 강렬한 편은 아니어서 그라모폰에서 <4개의 마지막 노래> 음반의 첫 번째 주자로 소개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깔끔하고 기술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하지만 그렇게 큰 개성이 느껴지진 않는 목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다시 들어보니, 군들라 야노비츠 보다는 덜 깔끔하지만 반대로 감정이 담겨있는, 슈바르츠코프 보다는 조금 더 드라마틱한 느낌의 그래서 마치 야노비츠와 슈바르츠코프의 모습을 조금씩 닮은 그런 소프라노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곡집의 마지막 곡인 "Im Abendrot"를 들어보면
https://www.youtube.com/watch?v=vlCNhD5D32E
(7분 36초)
아무래도 가장 최근 녹음이어서 그런지 다른 추천 녹음에 비해 템포가 빠른 편입니다. 강약의 대비도 큰 편인데, 기존에 생각하던 거대한 구조의 관현악 반주의 틀에서 벗어나 훨씬 디테일한 부분에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성악 부분도 감정에 메몰 되기보다는 상당히 리드미컬하고 깔끔하게 부르고 있는데 그런 부분이 오히려 음악이 그려내는 이미지를 객관적으로 관조할 수 있게 해주는 느낌입니다.
2. Elisabeth Schwarzkopf,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George Szell
재미있게도 두 번째 추천 음반도 반주를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이 하고 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가장 널리 알려진 명반이죠. 잡지사 입장에서도 추천에서 빼기 쉽지 않았을 듯싶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슈바르츠코프 녹음 중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음반은 아닌데, 슈바르츠코프는 피아노 반주의 가곡이 아닌 오페라에서는 모차르트나 요한 슈트라우스 같은 산뜻하고 경쾌한 리듬의 작품들이 적격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이번처럼 대편성 관현악단의 반주가 함께하는 거대한 구조와 다이내믹의 폭이 큰 작품에서는 부분적으로 실망스러운 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전 시대의 감성 기준으로는 살짝 비음 섞인 호소력 있는 목소리 그리고 여린 피아니시모에서 풍겨 나오는 감정들, 이런 부분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소프라노인데, "Im Abendrot"를 들어보시면 상당히 느리고 거대한 흐름으로 흘러가는 템포에 약간은 힘겨워합니다.
2분 45초경, "Rings sich die Täler neigen"의 프레이즈에서 점점 저음으로 여리게 내려가는 마지막 부분 neigen의 긴 호흡을 견디지 못하면서 감정선이 깨지는 부분 등이 약간은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Ogqu26xrtQ
(총 8분 27초)
3. Jessy Norman, 뉴욕필, Kurt Masur
https://www.youtube.com/watch?v=q_y19ssI6_M
(9분 5초)
제시 노먼은 슈바르츠코프보다도 더 느린 템포로 부르고 있습니다.
쿠르트 마주어는 이 곡에서 기대되는 다양한 감정을 가능한 많이 드러내려는 듯, 아주 느리고 거대하게 오케스트라를 끌고 가고 있는데, 제시 노먼은 본인의 장점인 깊은 저음, 풍부한 성량, 여유 있는 호흡 등을 바탕으로 큰 무리 없이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느리고 장중하게만 흐르다 보니, R. 슈트라우스가 보여주는 다채로운 음색 등이 드러나지 못하고 갇혀버리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렇게만 추천이 끝나버렸으면 개인적으로 아주 아쉬울 뻔했는데, 다행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 음반을 다크호스로 지목하며 4번째 리스트에 올리고 있습니다.
4. Gundula Janowitz, 베를린 필, Herbert von Karajan.
카라얀의 오케스트라는 언제 들어도 화려하고 다채롭습니다. 물론 아주 잘 짜인 팀워크를 자랑하기에 상당히 매끄럽고 세련된 소리를 들려주죠. 물론 이런 장점을 뒤집어 보면 깊이가 덜하고 무게감이 부족하며 음악적 구조에 약하다는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드뷔시나 R. 슈트라우스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그런 카라얀의 개성이 장점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너무도 깔끔하게 흘러가는 야노비츠의 목소리와 딱 떨어지는 템포와 다이내믹의 설정으로 색다른 저녁놀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4KTMzUL3W0
악기 사이의 명확한 경계와 분명한 프레이즈 구분을 통해 음악이 전달하려는 감정을 소리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다시 표현하면 음악 안에 감정을 직접적으로 삽입시키지 않고, 그 음악을 듣는 청중들이 소리를 통해 각자의 경험을 통한 이미지들을 떠오르게 하는 여지를 많이 남기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카라얀과 야노비츠의 연주를 듣다 보면 그 노래와 관현악단의 소리를 통해 직접적으로 감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제시 노먼의 연주가 가장 강하게 불러오는 효과이자 일반적으로 음악이라는 장르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이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멜로디와 가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해 드린 마렉 야노프스키의 지휘도 좀 더 카라얀의 해석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는데, 그가 만들어 내는 관현악단의 소리도 음악적 다이내믹의 대비를 강조하며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가 강하고 카라얀처럼 음색이 밝고 각 악기의 디테일을 더 드러내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4개의 마지막 노래>에서 다른 곡을 뽑아서 비교해 보면 좀 더 다른 느낌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글을 읽는 여러분들 각자의 생각은 어떠실지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