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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y Lee Jan 31. 2020

결혼식 하루 전, 아버지에게 쓰는 일기

2020년 1월 23일,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참 열심히 살아온 아버지의 삶이었다. 꺾이지 않는 강한 고집, 뭐든지 직접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새벽같은 부지런함, 투철한 위법정신(주차 딱지가 수시로 날아 오곤 했다), 끔찍한 가족사랑이 아버지를 대변할 수 있는 표현들이다. 우리는 참 유별난 인간, 벌금형 인간이라고 말하곤 했다. 아버지의 베풀기 좋아하는 성향 덕분에 자라면서 주변사람들에게 많은 수혜를 받은 나다. 대다수 가정의 아버지들과 같이 자식에 대한 기대치는 높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나의 결정에 대해서 항상 믿어주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전 날 워크맨을 사달라고 졸라댔던 날. 비싼 가격에 당황한 아버지는 다음에 사자고 나를 달랬고, 실망한 난 하루종일 토라져 있었다. 당시 재학 중이던 학교는 유명한 사립이었는데 대부분 부유한 집안의 자식들이어서 심한 비교가 되었다. 수학여행을 출발하는 버스에서 아직 뚱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며 친구의 워크맨을 나눠 듣고 있을 때, 갑자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창문 밖에서 워크맨을 들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일반적인 가게는 문도 열지 않는 이른 시각에 출발하는 일정.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그런 걸 해내고 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 기억은 항상 아버지의 사랑을 피부로 느끼게 해 준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사고를 쳤던 바람에 학교에 항상 불려다녔던 아버지이지만, 단 한 번도 그 일로 나를 더 혼내거나 하시지는 않았다. 이미 잔뜩 기죽어 있던 나를 위해 앞장서서 선생님들을 되려 혼내곤 했다. 군대에서 외박이나 휴가를 나올 때면 항상 복귀할 때 부대 앞까지 태워줬고, 성인이 되어 회사에서 야근을 할 때도 종종 데리러 오곤 했다. 술 마시다 차가 끊겨도 전화 한 통이면 달려 나왔고, 수시로 지갑에 현금이 떨어지면 몰래 채워주곤 했다.

참 유별난 사람이지만 고통도 많았던 사람이다. 젊었을 때 바이러스로 몸이 안좋아져 큰 수술을 수 차례 받았고, 죽을 고비를 넘겼던 적도 많다. 이식 수술로 면역억제제를 복용 했기에 건강 문제는 항상 따라다녔다. 중학교 때는 통풍으로 걷기도 힘들어 병원에 업고 다녔던 기억도 있다. 때문에 원망도 많았다. 꿈꾸던 대학 진로도 바꿔야 했고, 내가 세운 계획은 아버지의 건강으로 인해 틀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다시 이해하고 극복해야 했다. 그 누구도 본인이 원해서 아픈 사람은 없으니까.

마지막 큰 수술을 치르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암이 재발했다. 이제는 더 이상 몸이 버티지 못한다는 신호다. 눈 앞에 다가온 결혼식에 어떻게든 참석하기 위해 본인 스스로도 많이 노력했다. 펜벤다졸이 항암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얘기를 듣고 회사 대표에게 부탁해 구해놓기도 했다. 설 연휴가 끝나고 한 번 먹어보는 것이 좋겠다며 희망을 갖고 있던 순간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고, 그 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고통이 많았던 아버지의 삶이기에 이제 더 이상 아프시지 않다는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나와 가족이 느끼는 고통보다 본인이 느끼는 고통은 훨씬 더 컸을테니까. 많이 울었지만 그래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이 순간 만큼은 아버지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게 느껴진다.

결혼식 하루 전, 미치도록 보고 싶은 얼굴과 목소리가 있어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통화를 하고 싶은데 받지 못할 걸 알기 때문에 차마 누르지 못하고 보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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