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님이 나를 갈아서 만두를 만들어 먹겠다고 했다.

일하다 만난 사람들

by 다하리온

2016년 10월 말, 인턴으로서 첫 출근하던 날!

돈을 번다는 생각에 '나 이제 좀 어른이 된 것 같아.'라는 설렘과

'나 진짜 어른이 된 건가?' 하는 걱정이 함께 소용돌이쳤던 날이었다.


당시의 나는 좋은 대학교를 나왔던 게 아닌지라 대기업은 꿈꾸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세운 전략은 중소기업에서 점프업하며 나의 몸값을 키워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중소기업 위주로 인턴 지원서를 제출했었다.


그렇게 나의 첫 회사가 된 광고 마케팅 대행사-

아무래도 첫 회사다 보니, 내겐 기준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이걸 어떻게 견뎌냈지?' 하는 순간이 정말 많다. 그래서 내가 써 내려갈 이야기는 내가 만난 사람들이자 내가 만난 빌런 상사에 대한 이야기다.



"야 인마, 짱구를 좀 굴려라"

이 말은 바로 내 위의 상사, H차장님께 들었던 말이다.


인턴시절 내 자리는 저 끝 구석에 창문을 바라보는 자리였다. 모니터는 전 직원을 향해있었고 오직 나만 창을 바라보는 자리. 야구로 따지면 내 컴퓨터 모니터는 포수, 나는 투수 자리였다. 그만큼 처음 마운드에 발을 올린 투수로서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당연히 직장생활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인턴이었기 때문에 극 초반에는 중요한 일은 잘 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3개월이 흐른 시점, 나는 미친 듯 많은 일을 하는 인턴이 되어 있었다.

내 바로 윗 상사 H차장님은 많은 일을 내게 맡겼다. 그의 업무 스타일은 딱 군대식이었다.

너 이 shake it, 뭐 하냐 빨리 일 해, 빨리 안 움직이냐, 야 인마 짱구를 좀 굴려라.

수없이 다양한 모욕을 들으며 빨리빨리 일처리를 해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엔 저 차장님은 정말 무서운 분이라고만 생각했지 저 말과 행동이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너무 거지 같아서 내가 피드백을 줄 수가 없다."

이 말도 H차장님께 들었던 말이다.


야근 수당도 없던 회사에서 자발적 야근을 하며 차장님이 시킨 일을 끝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PPT 자료를 만드는 거였다. 메일까지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차장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심장이 요동쳤다. '나 뭐 잘못했나?'


네- 정답입니다!

차장님은 "야. 니가 한 게 너무 거지 같아서 내가 피드백을 줄 수가 없다. 너 이걸 표라고 만들었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죄송하다는 거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사연 있는 사람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며 걸었다.



"하... 이 녀석, 갈아서 만두로 만들어 먹어 버릴라"

당연히 H차장님이 한 말이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저렇게 창의적인 말을 들어 본 사람이 있으려나? 아마 내가 유일할 듯싶다. 저 말은 어떻게 해서 나왔냐면...


NGO 단체인 클라이언트를 만나던 날이었다. 비딩을 따 낸 이후, 그들의 사무실에 가서 어떤 논의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서류를 빼먹고 온 게 아닌가! 차장님은 그 사실을 알고 클라이언트였던 대리님과 사원님을 앞에 두고 내게 갈아서 만두를 만들어 먹겠다고 했다. 하지만 저 말을 들은 클라이언트 사원님은 "대리님, 우리 회사에서 저런 말하면 바로 인사팀 면담 아니에요..?"라고 했다. "그렇죠ㅎㅎㅎ"

그들은 이런 대화를 나눴고 그 와중에도 나는 이게 대단히 잘못된 말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타격도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잘못한 게 맞으니까! 저 말은 아직까지도 나의 뇌리에 박혀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큰 상처를 받았다거나 그래서 사내에 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어떤가 내 상사의 어록?

하지만 그를 마냥 욕할 수 없는 것은, '거지 같은' 표를 이제는 잘 만들 수 있게 됐고 일하는 법을 정말 많이 배웠다. 문서를 작성할 때는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도록 보기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서식을 잘 맞춰야 완성되어 보인다는 것, 하루의 체크리스트를 관리하며 일을 빼먹지 않고 해내는 것 등 기본적인 것들을 빠르게 배울 수 있었다.


아래는 입사 3-4개월 차 인턴의 투 두 리스트다.

스크린샷 2024-10-16 오전 6.40.06.png 당시에 썼던 에버노트

이것도 H차장님이 본인의 에버노트를 보여주며 할 일을 관리해야 한다고 하길래 그를 따라서 써 본 거였다. 그는 누구에게 언제 전화를 받았고 전화 내용까지 요약을 하는 사람이었다. 꼼꼼했던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그의 언행은 배우지 않았다. 아니지, 배웠구나.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를 알려 준 분이었다.


지금 잘 지내시나 모르겠다, 만두 차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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