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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Dec 02. 2022

MVP 접근법의 한계

칼은 어디를 잡고 휘두르느냐에 따라 유용하거나 위험해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차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어릴 적 꿈이 WRC(World Rally Championship) 선수였을 정도로요.


WRC의 매력을 조금만 느껴보세요


뜨겁게 쏟아지는 배기 엔진음에 미친듯한 출력,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와일드한 주행, 젊음을 모두 불태워 버린다는 느낌의 치열한 경쟁. 어릴 때 컬러도 제대로 안 나오는 브라운관 TV에서 우연하게 접했던 사막 랠리 경기 중에 뒤집어져 불타는 자동차를 본 그 순간부터 모든 게 다 좋았어요.

아쉽게도 지금은 다른 직업으로 다소 얌전하게 살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동차에 대한 꿈은 버리지 않고 지금은 Bimmer(BMW 차량 오너들의 별칭) 이기도 합니다.


매번 UX 관련 글을 쓰다 뭔 헛소린가 싶으시겠지만, 바로 이 이미지 때문에 어릴 때 꿈을 꺼내봤습니다.

Minimum Viable Product의 대표적 예시


MVP 접근법에서 대표적으로 꼽히는 이 이미지를 보면서 저는 늘 생각했어요.


난 차가 좋은데,
킥보드나 자전거는 줘봐야
거들떠도 안 볼 거 같은데


말꼬리 잡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실제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어떻게 보면 저 MVP라는 접근방식을 피상적으로 이해한 업체들에서 많이 벌어지는 일이기도 한데 예를 들어볼게요.


한 회사에서 요즘 영상 커머스가 떠오른다고 하니 뭔가 새로운 UX엣지를 가미한 영상 커머스 서비스를 하나 준비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사업성 검증은 아직 제대로 된 상태는 아니지만 빠르게 시장의 반응을 볼 수 있는 MVP 접근이라면 시장성 테스트도 해보면서 고객 니즈를 담아 서비스를 확장하는데 도움이 될 거 같아서 추진해 봅니다.


회사의 자원은 한정되고 예산도 넉넉한 게 아니기에 좋은 판단이라며 조직원들도 수긍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부터 시작됩니다. 처음 고객에게 내놓을 '스케이트 보드'가 우리한테는 어디까지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도 회사의 비전은 영상 커머스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쇼핑몰 기능을 외부 프레임웍을 빌려 빠르게 구축하고 최소한의 영상 컨텐츠 영역을 붙여서 테스트해보기로 합니다.


몇 달을 고생하며 최초의 프로토타입이 나옵니다.. 만, 시장의 반응이 애매합니다. 쇼핑몰에 영상으로 상품을 소개해 주는 거나, 라이브 커머스는 이제 흔한 시대이기도 하고, 그리고 신규 서비스는 아무래도 인지도도 부족하고 컨텐츠나 경쟁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반응도 크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 몇몇 고객의 불편사항을 들어 다음 '킥보드'를 만들며 같은 사이클을 지속해서 수행해 보지만 점점 처음에 생각한 '자동차'와는 뭔가가 벌어지는 느낌입니다. 그동안 회사는 재정 악화로 힘들어지고 조직원들도 지쳐갑니다.


킥보드로 테스트 해봐야 자동차는 절대 나올 수 없습니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실제 많은 스타트업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스타트업이 사라지기도 했죠.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1. MVP 각 실행 단계마다 흘러나오는 고객의 피드백이 늘 생산적이지 않다는 점

고객은 자신의 욕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차를 좋아하는 제게 스케이트 보드를 내밀어 봐야 '이걸 갖고 뭐하라고? 장난치는 거야?'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단 소리죠.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뭘까요?


2. MVP로 확인해야 하는 건 우리가 가진 UX엣지에 대한 가설을 검증하고 이를 통해 만들어야 할 자동차의 형태를 고민하게 되는 '인사이트'여야 한다는 점

테스트는 대답을 얻고자 함이고, 대답은 질문자가 가설로 검증하고 싶은 기준을 세웠을 때에야 가치가 있습니다.


A. 새로운 영상 커머스 서비스 어때? > 뭔가 좀 불편해

B. 제품의 상세한 부분을 사용자 요청에 따라 자세히 보여주고 설명해주는 영상 커머스는 어때? > XX 한 점은 좋은데, 요청이 많을 땐 대기가 길어져서 불편해


A/B 두 케이스의 차이는 '질문의 기준이 있느냐 / 검증하고자 하는 가설이 무엇이냐'입니다. A의 케이스는 아무것도 배울 게 없습니다. 시간과 자원만 낭비한 거죠. 하지만 B는 '고객 요청에 따라 상품 디테일한 정보를 보여주면 좋을까?'라는 기본 가설은 충분히 검증하고 나아가 뭘 개선해야 할지도 알아낼 수 있죠.


사실 이 가설이 존재하느냐는 우리가 만드려고 하는 서비스의 철학, 지향점이 존재하느냐와도 같은 말입니다. 이 기준이 존재해야 고객의 목소리가 가치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준이 없는 상태라면 저 위의 1. 에서처럼 고객의 피드백 자체가 생산적이지도 못한데 해석할 가치도 없어지는 거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껍데기뿐인 애자일(Agile)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MVP에서 저 그림만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게 뭔가를 빠르게 한다는 과정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얼마나 노력해서 움직이면 고객이 만족할까?

저라면 MVP 대표 예시 이미지 가설을 이렇게 해석해 볼 겁니다. '어느 정도의 노력으로 움직일 때 고객이 만족할까?' 이런 가설이라면 일단 뛰는 것보단 조금 나은 스케이트 보드부터 그 뒤에 중심을 좀 더 잡기 쉬운 킥보드, 힘들 좀 덜 들여도 되는 자전거 이렇게 순차로 발전해나가면서 고객의 만족도를 측정하는 게 말이 되죠.


어떻게든 탈걸 주고 나서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서 발전시켜 나가겠다? 그 끝은 절대 '자동차'가 아닐 겁니다.

이런 잘못된 MVP 접근방식은 조직에도 독이 될뿐더러 만약 정상적으로 결과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시간을 들여 전통적인 방법으로 일을 했을 때 보다도 더 많은 중복 지출로 낭비를 해왔을게 뻔합니다.

그리고 조직원들은 목소리를 높여 말하겠죠. 'MVP 그거 해보니 오히려 효율이 안 좋아요, 그냥 원래 하던 대로 합시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라는 옛말이 다시 새롭게 다가옵니다.

세상 모든 도구는 올바른 쓰임새로 쓰일 때에나 효용가치가 생기는 법입니다. 애자일이나 MVP나 모든 방식론들은 목적을 온전히 이해하고 이용할 때나 가치가 있지 그렇지 않게 되면 손잡이를 거꾸로 쥐고 휘두르는 칼만큼이나 위험한 물건이 됩니다.


그리고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는 고객을 이해하고 호흡하면서 가치 있는 서비스/제품을 만든다는 기본이 중요한 것이지 어떤 도구를 쓰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런 방법론 없이도 제대로 고객을 이해하고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은 잘합니다.


그러니 방법론 자체에 함몰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해내야 하는 건 사용자를 이해하는 것이지, 방법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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