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iden Nov 29. 2022

아는 만큼만 이해되는 세상

UX를 외쳐놓고 정작 우리 서비스를 안 쓰는 건 아니겠죠?

예전에 TV를 보다가 예능에 자주 나오던 연예인이 한동안 얼굴을 안 비쳤다가 오랜만에 출연해서 하는 이야기는 '공황장애를 앓았다.'

요즘 이야기에 '연예인 걱정하는 게 아니다'라는 것처럼 전 저것들이 배가 불러서 헛소리를 하는구나 싶었죠.


그러던 2020년, 저도 회사에서 처음 쓰러진 일이 있었습니다. 일시적인 건 줄 알았는데, 그 이후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불안감, 식은땀에 호흡곤란. 어느 날은 운전하다 갑자기 일렁이는 어지럼에 운전대를 붙잡고 운 적도 있었습니다. 모든 게 엉망인 거 같았고 제 삶은 끝장났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서 일을 하더라도 대접받고 중요한 자리에 앉아 윗사람들 기대는 한 몸에 받던 저였는데, 이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점점 최악의 생각까지 하던 차, 친한 형님과의 술자리에서 이런 고민을 나누다 그거 병이라고, 병원 가보라는 이야기를 계기로 지금까지 약을 먹고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 뒤로 전 엄살떨지 말라고 속으로 욕했던 그 연예인에게 굉장히 미안했어요. 겪어본 적도 없으면 함부로 상상하고 아픔을 재단해서 헛소리했던 과거의 자신을 가장 크게 반성했습니다.


머릿속에 꽃밭이면 세상 모든 게 꽃밭으로 보일 겁니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 외에도 실제로는 우리는 실무에서 같은 일들을 수없이 반복하곤 합니다. 가용성 편향(Availability bias), 넛지(Nudge)를 읽은 분들께는 입수 가능성 편향이란 표현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수도 있겠네요.


이건 쉽게 생각하면 내가 아는걸 기준해서 뭔가를 판단하려 하는 경향 같은 거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험한 편향 중에 하나이기도 한데, 위의 공황장애 예를 생각해 봅시다.


제가 그 병을 앓기 전에는 제 머릿속에 존재하는 공황장애는 단순한 심리적인 부담감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꾀병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병을 앓고 나서, 제 머릿속에 더 많은 경험적 지식이 늘어난 뒤에는 결코 저 병을 단순 압박감에서 오는 꾀병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게임 회사 직원인데 게임을 몰라?


다른 예로, 게임을 모르는 게임사 직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직군마다 어느 정도 차이는 있기에 게임을 속속들이 알 정도로 플레이해보고 경험하고 빠삭하게 파악해야 하는 건 아니더라도 적어도 우리 게임을 좋아하는 고객의 니즈를 이해할 정도는, 아니 더 나아가서는 동종 업계와 경쟁사에서는 어떤 특장점으로 고객들을 사로잡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만약 저 우측의 댓글이 말하는 바가, 게임 자체를 직접 플레이하지는 않더라도 각 담당 영역에서 분야에 맞는 이해를 갖출 수만 있다면 직접 플레이는 해보지 않더라도 괜찮지 않나 정도면 동의해 줄 수 있겠지만, 저런 식의 반론은 글쎄요...


사막에 서서 혼자 좋은 날씨라고 우기면 뭐가 달라지나요?


실제로 일하다 보면 이런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스스로는 운전면허조차 없고, 운전할 생각도 없는데 모빌리티 서비스를 이해한다고 하는 사람이나, 전혀 트렌디하지도 키치 하지도 않은 사람이 트렌디한 패션 커머스를 만지는 사람이나, 난 젊고 건강하고, 자잘한 병환도 앓아본 적 없는데 헬스케어를 한다고 달려드는 사람 등등이 말이죠.


적어도 주행 중에 타이어에 펑크 나본 사람만이 해당 상황의 고객의 심리와 시나리오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만이 고객의 UX에 부합하는 긴급출동 서비스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경험적 이해도 없이 휘황찬란한 용어를 들먹이며 고객/사용자를 이해한다고 주장하는 멋들어진 프레젠테이션?


차라리 하지 마세요.

되려 올바른 길로 가야 할 조직을 눈 가리고 방황하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우리 서비스를 모두 알아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적어도 고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도는, 아니 어떻게 느끼면서 쓰고 있는지는 알아야 할거 아닙니까? 그런 기본적인 자세도 되어 있지 않은데 UX? User Experience는 누군가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개념이 아닙니다.


화나고, 당황하고, 즐겁고, 만족하고, 아픈 모든 경험은 당사자가 되어보는 것만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과유불급, 써본 놈이 왕이라면 이런 글을 쓰진 않았겠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