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괄식은 부장님도 춤을 추게 합니다
우리가 대화를 할 땐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결론을 앞에 던지고 이유를 뒤에 제시하는 두괄식(頭括式)
2. 근거를 앞에 늘어놓고 결론을 나중에 던지는 미괄식(尾括式)
라고 쓰면 요즘엔 한자어 자체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있으니 쉽게 예를 들어드릴게요.
가끔 친구들 모여서 뭐 먹을까 정할 때 이런 사람이 종종 있죠?
친구 1 : 야 오늘 기분도 꿀꿀하고 뭔가 허전한 느낌인데, 약간 꽉 차면서도 뭔가 후회 없는 그런... 뭔가 그런 거 먹고 싶은데
나 : 야이 씨, 뭘 먹고 싶은 거야 인마 똑바로 말해
친구 1 : 고기 괜찮냐?
생각만 해도 짜증 납니다. 이건 미괄식.
반면 이런 친구도 있죠
친구 2 : 야 오늘 고기 먹자, 기분도 꿀꿀하고 배도 허전한 느낌인데, 꽉 차고 뭔가 후회 없고 그런 거 아닐까?
나 : 그래 저기압일 땐 고기 앞이지, 적당히 삼겹살 씹으러 가자
요건 두괄식, 참 쉽죠?
우리는 이렇게 가까운 사이에서도 미적대며 본론을 뒤에 늘어놓는 친구들을 보면 위 예시처럼 바로 혈압이 튀어 오르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물론 예외의 상황은 있는데, 상대방과의 대화 자체가 아주 행복한 마치 연인끼리나 아니면 부부끼리나 아니면 그에 준하는 애정관계에 속하는 상대방과의 대화는 두괄식이나 미괄식이나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저 상대방의 성대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가 마냥 즐거울 테니까요.
자, 하지만 보세요? 우리가 앉아서 일을 하는 곳은 어디죠? 애정 하는 대상이 없는 서늘한 그곳 회사입니다.
저는 사내 연애(와이프가 제 사수였습니다)로 결혼까지 한 사람이긴 합니다만 연애를 해도 업무 관계에 있어서는 늘 한결같았습니다. 두괄식으로요.
심지어는 현대가의 걸출한 인물, 2001년 현대카드가 생겼을 때 카드 시장 점유율 1.8%의 저 바닥에서 지금은 업계 3,4위를 다툴 정도로 키워낸 인물입니다. 이 양반은 더 극단적으로 비즈니스 화법엔 두괄식인지 아닌지로 구분할 정도입니다.
두괄식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는 소리죠.
어떻게 보면 대화를 하는 입장에서, 대부분은 보고를 올리는 입장에서 보면 의사 결정권자도 제대로 된 근거를 들은 뒤에 결론을 들어야 더 정확한 판단을 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동의하기가 힘들 겁니다.
하지만 이런 커뮤니케이션 또는 보고 방식을 기피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의사결정권자의 식견을 무시하는 행동 + 시간낭비
먼저 여러분이 보고를 하는 대상은 못해도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론을 먼저 접하더라도 그게 생산적인 것인지 헛소리인지 반 직관적인 영역 내에서 판단이 가능합니다. '오 그래? 흥미롭네 계속해봐'
그리고 매우 바쁜 사람들이기 때문에... 상사들을 보면 늘 담배 피우고 노는 거 같아 보이지만 사내외 정치에 유관부서들의 관계 정리부터 조직운영관리 등 머리털 빠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물리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지 않다 해서 바쁘지 않다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그런 분들을 붙들고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으라는 건 굉장히 실례되는 이야기입니다.
전화 예절에도 그런 게 있잖아요? '용건만 간단히'
만약 실력도 출중하고 바쁜 상사에게 여러분이 미괄식으로 보고를 하고 있다면 대뜸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이 자식이 바쁜 사람 붙들고
뭐 하자는 거지? 날 무시하나?
2. 인간의 순간 인지능력을 고평가 = 못 알아들음
그리고 이게 더 중요한 이유인데요,
미괄식으로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뭘 말하는지 파악하는 것조차 힘듭니다. 대부분의 정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니까요. 결론을 알고 나면 그 이야기엔 이 근거가 맞아 틀려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근거만 줄줄이 늘어놓을 땐 대체 이걸로 뭘 하자는 소리지?
그런 두루뭉술한 근거들을 머리에 가득 담아놓은 뒤 결론을 듣게 되면 보고를 받는 사람은 그제야 결론이라는 기준에 맞춰 근거들을 다시 판단해야 합니다. 그걸 기억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결국엔 근거도 모르겠고, 결론도 이게 왜 말이 되는지를 설득할 기회조차 버려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대화에서만 생기는 현상은 아니기도 합니다. 문서, 보고서에서도 빈번하게 트러블이 있는 영역이기도 해요. 보고서를 예로 들어볼까요?
제가 컨설턴트 경력이 있다 보니 프레젠테이션 양식으로 먼저 쓰긴 했는데, 저건 일반적인 PPT양식이라고 생각을 해봅시다.
보통 PT 보고 자료에는 한 장표에 구성되는 내용 구성은 보통 좌측의 이미지와 같이 구성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전체 내용을 포괄하는 1.Main Sentence로 이 장에서 이야기하려는 주제를 명료하게 전달합니다. 어떻게 보면 한 장표 안에 있는 내용의 결론부터 1. 항목에 넣어두는 두괄식이라고 보면 되죠. 그러고 나서 왜 1이어야 하는지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을 2~5로 차근히 설명하면서 달아줍니다.
그리고 우측은 일반적인 문서형 보고서에 들어가는 양식 중 하나인데, 대체로는 상단에 요약 부분을 넣어줍니다. 그런 뒤에 이 요약에서 주장한 내용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B~에서부터 증명하는 두괄식 형식이죠.
좋은 분석력과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결국 전달하지 못하면 그뿐입니다. 1인 기업이라면 모를까 우리는 협업을 해야 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소통이란 게 단순히 터놓고 말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는데 전혀 아니에요. 그런 건 자기만족일 뿐 듣는 사람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를 배려할 줄 아는 게 진정한 소통입니다.
읽고 보니 이게 UX랑 뭔 상관이냐고요? 잘 봐요? 실컷 분석하고 연구해서 가설도 증명하고 그럴싸한 방법론을 찾아가면 뭐할 겁니까? 애당초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설득해서 이해하게 만들어주지도 못하면서, 자료를 다 보면 될 거라고요? 다들 그렇게 한가하지 않아요. 여러분들에게 시간을 기꺼이 내줘도 되는 동료직원이나 상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무리 실력 있는 UX 디자이너도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하면 아무것도 안 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는 거고, 스스로는 자의식이 넘쳐나고 미괄식으로 대화해도 참고 들어주는 사람들이 어쩌다 한 번꼴로 있어서 내가 실력이 있는 것처럼 증명된 이력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더더욱 여러분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는 동료직원이나 상사에게 실망해서 이 조직은 틀렸다 내가 바꿔야 한다 생각할지도 모르죠.
헛소리입니다.
틀려먹은 건 인간이 어떻게 사고하고 어떻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지 생각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러분의 고집이 틀려먹은 거란 걸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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