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ously, 'Ever 언제나'?
'공밀레'라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나요? 이건 일명 공대생(기술자/개발자)을 녹여 만든 결과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오래된 속어(slang)로, 근원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에밀레종에서 시작됩니다.
에밀레종의 설화에 종을 만들 때 아이를 공양하여 만들었는 것에서 출발해서 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 때 공대생을 갈아 넣듯 희생시켜 만든 결과물이라는 일종의 비판으로 사용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 대표적인 공밀레의 샘플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 현실에서도 흔히 벌어질 법한 이야기라 더 섬찟한 대화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무책임하고 대책 없는 이야기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짜잔, 시제품이 실제로 나와버렸네요?
무려 $200에 달하는 물건이라 효용가치가 있을지는 제 기준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 신선한 시도긴 하죠?
사실 저는 공밀레 농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책임한 업무 추진에 대해서 옹호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농담으로 단순하게 치부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가치가 그 너머에 숨어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잠깐 다른 예를 들어볼게요
이건 1828년에 그려진 미래를 예상한 상상도예요. 얼추 현실에 있을법한 것들이 많죠? 큰 파이프 같은 건 지하철 같아 보이고, 자동으로 물을 주는 스프링클러에 증기관으로 가는 기차가 아닌 소형 마차(자동차) 등등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 현실에 익숙히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 가득하죠?
아직 1800년대라 상상력의 근거들이 빈약하다 보니 다소 괴리감은 있지만 충분히 과거의 연장선상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을 동의할 수 있게 해 줄 만한 아이디어 들입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잠수함이죠? 사실 최초의 잠수함은 1776년에 등장했긴 하지만 제대로 된 추진기관을 갖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직접 움직이는 완전 수동식의 조그만 잠수정이었어요, 최초로 인력을 벗어난 잠수함은 공식적으로는 1863년에 건조된 프랑스 해군 잠수함 '플론저'입니다. 이것도 제대로 된 추진기관이라기보다는 물속에서 압축공기를 통해서 추진력을 얻는 조악한 방식이긴 하지만요.
그런데 위 그림은 그 이전에 나온 1843년의 스케치로 플론저보다 무려 20년이 빠릅니다, 이건 우연의 일치일까요?
이건 그래도 비교적 최근인 1960년대에 나온 이미지
지금 기준에서야 자율주행이나 1인용 Personal Mobility 수단(이하 PM이동수단)들이 보편화되어서 뭐가 신기하냐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아래 이미지를 봐주세요.
60년대는 50년대부터 이어져온 지금으로 말하면 클래식카의 발전의 연장에 있는 시대였습니다. 자율 주행은커녕 차선 이탈 방지 경보도 2000년 벤츠 트럭에서부터야 나온 개념입니다. PM이동수단들이야 오죽하겠어요?
이쯤 되면 눈치채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곁에 있는 대부분의 제품들은 기술이 먼저 발전하고 뒤따라 그에 상응하는 제품들이 출시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심지어는 우리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까지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늘 족쇄처럼 따라다니는 경구 중의 하나는
From ever follows function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반(Louis Sullivan, 1856~1924)의 건축 미학임과 동시에 독일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기본 교육이념이 되고, 모던 디자인의 정수를 표현한 개념으로 꼽히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개념은 포스트 모더니즘이 대두되면서 비인간성의 문제로 비판받고 현재 우리는 대학에 앉아 이렇게 배우곤 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낡은 대학 캠퍼스 강의실에 처음 앉아 디자인 수업을 들었을 때 교수님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형태는 기능을 따를까요?
아니면 기능이 형태를 따를까요?
저는 늘 스스로에게 질문하곤 합니다. 정말 언제나(ever) 형태가 기능을 따를까? 그리고 과연 형태는 기능(function)만을 따를까?
여기서 제게 이정표가 되어주었던 한 교수님의 이야기를 발췌해 보겠습니다.
디자인이 무엇인가? 이 세상에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 자연이 주지 않는 것에서 인간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 찾아내고(value), 그 가치를 전달하는 기능을 만들고(function), 기능을 구현할 형태(structure)를 찾아내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기업이 항상 하고 있었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최근 기업들은 너무 제품의 형태(structure)에 집중하는 디자인을 하고 있다. 그러나 디자인은 사실 앞서 말한 셋 모두를 아우르는 일이다
김용세 교수
지금의 저는 단연코 형태는 ‘언제나’ 기능을 따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내재된 가치(Value)와 욕구(Need)를 따라 상상하곤 했고, 그 상상을 통해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기능(Function)을 부여하고 그를 따라 현실에 가까운 형태(Structure)들이 갖춰지는 식으로 기술이 발전해 왔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동차, 비행기 심지어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까지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거든요.
그런데 왜 우리는 본문의 가장 첫 이미지와 같은 예시로 농담 삼아 조소 섞인 비아냥에 쉽게 동의해 버리는 걸까요? 저는 이것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현상유지 편향(status quo bias)' 때문입니다.
현상유지 편향은, 행동경제학에서 꼽히는 인간의 본능 중에 하나로, 책임 회피를 위해 더 나은 변화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대안을 버리고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현상을 이야기합니다.
쉽게 말하면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마트에 가면 새로운 샴푸를 써보고 싶다가도 탈모 등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익숙한 브랜드의 제품에 곧잘 손이 가곤 하잖아요? 이건 다른 걸 선택했을 때 후회하는 상황을 책임지고 싶지 않은 심리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샴푸를 고를 때만 이런 현상이 생길까요?
아닙니다, 이건 우리가 일하는 현장에서도 흔히 벌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확신한 방법론에 의존하려 하고, 안정된 결과의 울타리를 쉽게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위해 도전하길 두려워하고 결국 우리가 발견한 사용자의 문제에 대해서도 외면해 버리고 마는 결과를 초래하곤 합니다.
저는 적어도 이 문제는 고객의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해결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UX 디자이너들에게 있어서는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일종의 딜레마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헤쳐나갔으면 바래요.
여러분이 발견하고 만들려는 가치를 동료들과 거리낌 없이 공유하고 발전시켜 나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향해 가치를 논하는 눈동자를 향해 '공밀레'를 되돌려 주지 마세요. 다소 과장되고 어색하고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안에 담긴 가치가 무엇인지를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논하고 실현시킬 방법들을 함께 고민해주길 바랍니다.
조소 섞인 농담에 주눅 들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던 수많은 가능성까지 사장시켜 버리지 말길 바랍니다. 그렇게 여러분의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좋은 서비스로 보답할 기회를 갖기를 바랍니다.
물론, 가치를 논하기 전에 정말 말이 안 되는 기능인지는 수없이 되뇌고 반성하고 회고한 뒤에 말이죠. 엔지니어들도 힘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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