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iden Nov 15. 2022

장례식을 다녀왔어요, 그리고 떠올린 Prospect이론

선조들의 지혜, 생활 속의 UX

지난주에 아는 형님과 예전 회사 직장 동료(지금은 친구처럼 지내는)의 아버지가 공교롭게 같은 날 돌아가셨다며 부고를 받았습니다.


이제 저도 나이가 있다 보니 주변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서 드문일은 아닌데 이렇게 갑자기 같은 날 연락을 받으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거기에 우연의 일치로 그날은 차를 가지고 출근한 날이라 야근을 하다가 바로 회사 서랍에 넣어둔 검은 넥타이만 매고 장례식장으로 향했죠.


한 곳은 수원, 한 곳은 인천

두 군데 모두 들러 조의금을 내고 상주에게 위로의 인사를 건네고 잠깐씩 앉아있다 집에 와보니 새벽 3시가 되었더군요. 운전하고 올 땐 졸려웠지만 집에 막상 오니 잠도 깨고, 와이프 몰래 책상 속에 숨겨뒀던 위스키를 꺼내서 한두 잔 기울이며 부모님을 떠올렸습니다(오해 마세요 저희 부모님은 정정하게 잘 계십니다)


바로 생각난 건, 제가 사회생활을 처음 할 때 아버지께서 이것만은 꼭 지키라면서 해주신 말씀


어디 가서 경사(慶事)는 못 챙기더라도
조사(弔事)*는 꼭 챙기거라


* 조사는 실제 표준어는 아니라고 합니다만, 너그러이 넘겨주십시오.

이유를 여쭙자 사람은 기쁜 일에는 서운해도 오래가지 않지만 슬픈 일에는 아쉬움이 오래가는 법이라고, 누군가를 향해 진심을 다할 땐 꼭 힘든 일만큼은 위로를 놓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땐 그냥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지키겠노라 말씀드리고 넘겼던 이야기가 왠지 새로웠어요.


실제로 영어 속담에도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라는 말이 있기도 하잖아요? 지구 반대편 나라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거 보면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한가?' 싶다가 불현듯 이건 어떤 심리에서 생기는 현상일까가 궁금했어요.


프로스펙트 이론(Prospect Theory)의 가치 함수

생각해보니 이 현상을 정확하게 풀어주는 이론이 있더군요. 행동경제학에서 곧잘 언급되는 프로스펙트 이론(Prospect Theory / 한글로 직역하면 전망 이론 정도로 이야기하는데 자주 사용하는 용어다 보니 어색해서 부득이 영문 발음으로 쓰겠습니다) 역시 경제학 분야의 이론이다 보니 기획재정부가 그래프도 가장 이쁘게 그렸네요. 세금은 엄청 뜯어가는 놈들이...


뭐 이론 자체는 단순하게 설명하면, 1,000원을 얻었을 때 느끼는 즐거움보다 1,000원을 잃었을 때 슬픔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똑같이 가치(Value)는 1,000원으로 같은데 감정의 폭이 달라진다는 게 이상하죠? 원래 행동경제학이 태동하기 전에는 이 가치가 거의 동등하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하지만 이 이론을 함께 발표한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과 동료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는 2002년 노벨경제학상도 받았거든요. 심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상을 받은 거죠. 그렇단 건 이 이론이 상당히 현실적이고 타당한 이론이라는 방증 아니겠습니까?


덕분에 경사는 못 챙겨도 조사는 꼭 챙기라는 말씀이 왜인지 수월하게 납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이론이 재미난 점은, 가치 함수 P의 곡선을 보시면 손실 값이나 이득 값이 커지는 것에 대비해서 인간이 느끼는 가치가 정확히 비례하여 성장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이건 뭐냐면 어느 정도 기준치를 넘어서는 이익을 얻거나 손실을 당할 경우에는 감정의 폭이 더디게 반응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제 이 이야기가 헛소리가 아닌 거 같죠?


그래서 전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지나치게 과하게 내지 않습니다. 가치가 증가된다고 해서 고마움이 비례하여 늘어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돈을 많이 벌지도 않습니다. 노력 대비 행복이 무한정 커지지 않으니까요...라는 핑계를 대봅니다.


사실 이 이론은 마케팅 분야나 서비스 설계에도 널리 사용되기도 합니다.

단적인 예로는 게임 등 여러 서비스에서 유료 영역에서 장애가 발생하면 실제 과금 금액보다 더 많은걸 보상으로 쥐어주어서 고객의 불만을 상쇄시키도록 하는 경우들이 있고...


좀 더 좋은 예로는 캐시백 혜택 같은 건데, 마침 딱 좋은 예시가 네이버에 있네요.


프로스펙트 이론을 잘 응용한 네이버의 컨텐츠 설계


위 이벤트를 보세요, 통장개설 5,000원, 머니결제 30,000원 , 체크카드 발급 10,000원, 체크카드 결제 10,000원을 주는, 총합 최대 55,000원 혜택의 이벤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굳이 퉁쳐서 55,000원으로 홍보하지 않고 하나하나 쪼개서 보여주고 있죠?


왜냐? 위 그래프의 가치 함수 P를 다시 보세요, 이득이 마냥 증가해도 인식하는 가치가 비례해서 커지지는 않잖아요? 그러니 혜택들을 쪼개서 고객이 저마다의 가치 함수 P를 별도로 인식하게 해서 상대적으로 더 큰 혜택을 받는다고 느끼도록 유도하는 겁니다.

네이버가 이렇게 무서운 놈들입니다.


반대의 개념으로는 페널티나 손실이 있다면 개별 항목으로 보여주기보다 뭉쳐서 보여주면 손실의 증가폭보다는 가치 인식이 덜 성장하기에 그나마 실제 손해보다는 덜 속상해하기도 하는 거죠.

마치 놀이동산에 가서 한번 크게 지출하는 자유이용권을 구매하는 게 놀이기구 하나하나 별도 결제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덜 아깝고 더 행복한 것처럼요.


결혼식은 못가도 장례식은 꼭 갑시다


'경사는 못 챙겨도 조사는 꼭 챙기라'는 말씀이나 아니면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라는 이야기를 볼 때, 사실 옛날 사람들은 동서양을 구분하지 않고 이 심리현상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비록 그럴싸한 이론으로 다듬어서 노벨상은 타지 못했지만 말이에요.


이렇듯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사실과 경험들이, 어쩌면 우리가 사용자를 대할 때 아주 중요한 단서들이 되는 경우들이 제법 많습니다. 그러니 UX라 해서 거창하게 세미나 챙겨 다니고, 멋들어진 애자일 방법론 실행하느라 형식적인 스크럼 보드 만들고 그럴 시간에 인간 그 자체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주세요.


UX가 뭐 별거인가요. 인간의 본능이라 뭉뚱그리는 행동 원리를 이해하고 하나하나 허들을 없애주는 작업일 뿐인걸요.


그런 의미에서 잘 정리된 행동경제학 책은 어떠세요?


위 서적의 출판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순수히 경험적/지식적 측면에서 추천하는 바이며.. 출판사님들 부디 아량을 베푸셔서 노후를 위해 저의 똥글을 모아 출판이라도 해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