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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Nov 22. 2022

사람은 미루어 짐작하는 동물입니다

왜 일일이 읽으라고 합니까? 괴롭히지 마세요

인간은 글자를 판독할 때 음소(Phoneme)나 음절(Syllable) 단위로 정교하게 형태를 '읽고'나서 '이해'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뭔 헛소리냐 싶은 분들도 있겠지만 실제 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를 배웠던 친구들이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 수도 있을 거예요.


솔직히 읽기 쉬운 책은 아닙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정교하게 현상을 풀이한 책으로는 프랑스의 신경학자 스타니슬라스 드앤(Stanislas dehaene)이 쓴 '글 읽는 뇌'라는 책이 있으니 궁금한 분은 책을 읽어보셔도 좋을 겁니다. 하지만 저 책이 워낙 읽기가 어려운 책이기도 하고 바쁜 와중에도 제 똥글을 읽어주러 오신 여러분에게 상냥한 사람이기에 개괄적으로 내용을 요약해 드리면,


인간의 눈이 글자를 인식해서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되면, 문자의 서체나 크기 차이 그런 건 모두 무시하고 전체의 윤곽 같은 핵심 형태만 파악해서 의미를 이해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사랑해'라는 단어를 읽을 때 인간은 '사. 랑. 해'라는 글자 단위로 개별 인식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랑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는 형태(shape)를 보고 의미를 이해한다고 해야 할까요? 즉, 디테일한 판독보다는 형태를 보고 미루어 짐작한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 연장선상에서 우리가 익히 형태를 알고 있는 단어들은 문장 속에 숨어 있을 때(형태의 연속으로 이어질 때) 글자 순서를 약간 뒤집거나 해도 크게 이질감 없이 의미를 알아챌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저는 이 원리가 단연 글자에만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정보를 작은 범위부터 점차 확대해서 깔때기로 정보를 습득하듯, 주의를 기울일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좌) 텍스트로만 구성된 화면 / 우) 아이콘이 포함된 화면

저는 왼쪽 같은 화면을 구성해 오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주곤 합니다.


야이 설명충아!
너 왜 사용자 괴롭혀!


우리는 여러 정보를 소비할 때에 익숙한 형태, 메타포(metaphor)를 기준으로 정보를 미리 짐작합니다. '아 이런 컨텐츠겠구만, 이런 데이터겠구만?' 그리고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쓸모가 있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정보를 선택적으로 심화 탐색하게 되죠.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진즉에 미쳐버렸을 겁니다.


화면에 항상 박혀있는 UI 컴포넌트들에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광고들 일일이 이 모든 걸 뇌가 처리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상상만 해도 숨이 막혀옵니다. 그러니 인간은 자기 보호의 일환으로 정보를 접할 때 직관적인 짐작으로 쓸모를 파악하고 구분한 뒤에 내가 신경을 써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걸 구분하게 되는 거죠.


유사 현상을 닐슨 노먼 그룹에서도 연구한 결과가 있는데, 이건 광고가 보이면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회피해버리는 '배너 블라인드니스(Banner blindness)'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내게 쓸모없는 내용이라고 짐작되는 건 애당초 시선조차 안 가도록 정보를 선택적으로 취득한다는 사실


그럼 다시 위의 저 설명충 화면을 보세요. 똑같은 무드에 똑같은 비중, 똑같은 문자로만 구성된 국어책 같은 구성, 심지어 요새 국어책은 삽화라도 있어서 이것보다는 재밌을 겁니다

저 중에서 사용자는 대체 내게 필요한 정보가 뭔지 어떻게 직관적으로 알 수 있을까요? 일일이 저 내용을 판독해 보기 전에는 모를 겁니다. 그리고 판독 결과가 실망스럽다면, 내게 쓸모 있다 판단이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거고요.


그렇기에 전 오른쪽의 예시가 훨씬 사용자 친화적이라고 봐요. 적어도 글자를 판독하기 전에 익숙한 아이콘으로나마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충분히 짐작케 해주니까요.


은유적 메타포? 구시대적인 스큐어모피즘에서나 먹히던 거 아닌가요?


허나! 인간은 반항의 동물, 분명 학생들 중에도 이렇게 가르치다 보면 반론을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아니, 디자인 트렌드도 변한다면서요,
지금은 가장 심플하게 사용하는
모던/플랫 스타일이 대세 아닌가요?


예, 분명 예전에 그런 글을 쓴 적은 있습니다.


분명 아이콘과 같은 메타포가 갖는 한계는 우리가 스큐어모피즘의 몰락으로부터 충분히 배워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다시 아이콘으로 돌아가라뇨? 하지만 이건 너무 극단적인 생각입니다.

최근엔 다시 뉴 스큐어모피즘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아이콘이란 게 적어도 안정된 학습성을 가진 형태라면 마다할 이유는 없거든요, 실제로 마테리얼 디자인 킷에도 아이콘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위의 예시를 들었다고 해서 정보의 위계를 통해 사용자에게 시선의 흐름과 중요도를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장치가 아이콘 뿐일 이유도 더더욱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더 길어질 듯 하니, 화면에서 사용자의 시선을 올바르게 유도하고 피로도를 덜게 하는 방법은 다른 글에서 찾아뵙도록 하고,


오늘은 이것만 기억해 주세요.

모든 정보를 균일하게 해서 사용자를 일일이 해석하도록 괴롭히지 마세요.

빠르게 직관적으로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싶어 하는 기대를 배반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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